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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패션, ‘Different Nice’로 글로벌과 공감

양적 팽창과 포텐셜은 확실… 디테일에 투자할 때

- 글로벌 아티스트 협업과 스토리텔링으로 스코프 확대해야

- 지속가능성=SCM, 신뢰 있는 소싱 네트워크 구축해야


요즘 서울을 찾는 해외 소비자들에게 한국패션, 일명 K패션은 어떤 의미일까? 한남동이나 성수동에 위치한 K패션 플래그십숍이나 팝업스토어 앞에서는 뜨거운 한여름 날씨에도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이 익숙하다. 또 도쿄와 싱가포르, 방콕 등 해외 핫플에서도 K패션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최근 해외 패션마켓에서 K패션이 주목받는 배경은 무엇이고, 이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스트릿 패션 감성을 대표하는 패션인들이 모였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K패션의 본질을 파헤쳐보고,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6월 18일 오후 DDP에 위치한 하이서울쇼룸에서 진행됐다.

(사회: 정인기 디토앤디토 대표)

K패션의 본질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논하기 위해 모인 4인 대표. (좌부터) 이계창 supy 대표, 홍선표 히어로랩 대표, 정인기 디토앤디토 대표, 최경호 서울디자인하우스 대표,

사회(정인기): 사실 이번 간담회는 얼마 전 한 사석에서 홍선표 대표가 던진 화두에서 비롯됐다. 홍 대표는 90년대 NIX, STORM을 성공시키며 한국 캐주얼마켓의 마이더스로 평가받았다. 이후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KAPPA, UMBRO 등을 정상급 브랜드로 올려놓는데 일조했다.

그런 그가 한국시장으로 복귀하며 던진 화두는 “다들 ‘K패션’을 얘기하는데, 과연 K패션 본질은 뭐고, 글로벌마켓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은 뭐냐?”였다. 그래서 시작은 ‘K패션 본질’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먼저 화두를 제기한 홍 대표에게 외부에서 바라본 K패션 현주소에 대해 듣고 싶다.


# 정체성과 품질, 스토리부터 제대로 정립해야

K패션의 레전드라 불리는 홍선표 히어로랩 대표

홍선표: 20년 만에 복귀했지만, 대략 3~4개월마다 한국을 찾았고 올 때마다 시장조사는 빠뜨리지 않았기에 국내 패션시장에 대해서는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작 패션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인상적인 브랜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무엇보다 퀄리티가 아쉬웠다. 기업들은 경기와 소비자들이 싼 것만 찾는다는 핑계를 대며 여기에 집중하고, 소비자는 싸구려에 질려 외면하고 있다. 소비자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도 아쉬웠다. 브랜드들은 혼자서 자기 얘기를 떠들며 애쓰고 있는 것 같은데, 소비자들은 “그냥 너네 거 안 입어”라며 외면하고 있다. 한동안 광저우 제품을 갖다 팔면서 재미를 본 온라인 쇼핑몰 브랜드도 많았지만, 이것도 쉬인(SHEIN)과 같은 진화된 BM이 득세하면서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사회: 홍 대표는 지금의 상황을 카오스(chaos), 즉 혼돈스러운 상황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K패션만의 경쟁력을 만든다면, 먹을 수 있는 파이도 크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나.


홍선표: 그럼에도 해답은 소비자에게서 찾아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 소비자들도 이제는 명품도 어느 정도는 입어보고 경험해 봤기 때문에 ‘좋은 것’에 대한 나름 기준이 생겼다. 무조건 유명하다고, 화려하게 광고한다고 쉽게 이끌려가는 시기는 지났다. 좋은 것은 소비자가 먼저 알아보기 때문에 브랜드도 진정성 가지고 접근하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 품질에 진심이라면 소비자는 인정할 것이다. 인터넷과 SNS로 인한 폐해도 많지만, 진정성 있는 소통 측면에서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사회: 이계창 대표는 명동 중심가에서 200여 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로만 구성된 편집숍 ‘SUPY’로 매일 글로벌 소비자를 만나고 있다. 성수동에서 출발한 SUPY가 지난해부터는 명동으로 터전을 옮겼는데, 해외 소비자 관점의 K패션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편집숍 supy 이계창 대표


이계창: ‘SUPY’를 시작한 2015년만 해도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국내 디자이너 마켓이 취약했고,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도 적었다. 소비자들은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해외 브랜드를 우선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브랜드 숫자도 많아졌고, 시장도 커졌다. 무엇보다 무신사와 W컨셉과 같은 플랫폼이 소비자 접점을 활성화시키면서 전체 파이가 많이 커졌다.


지난 9년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브랜드가 생겼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항상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소개하고 브랜드 매력을 어필하는데, 솔직히 가끔은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하기엔 낯 뜨거운 브랜드도 적지 않다. 브랜드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브랜드는 아주 소수이고, 심지어 어떤 브랜드는 시즌마다 정체성을 바꿔서 나오기도 했다.


브랜드 사업은, 모든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업다운이 있을 수 있겠지만, 플랫폼 랭킹에 휩쓸려가거나 특정 트렌드가 먹힌다고 해서 정체성을 바꿔버리면 지속성을 보장하기가 어렵다.


결론적으로 K패션의 포텐셜(potential)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우선은 양적으로 커졌고, 특히 한류 콘텐츠가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의 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노출되고 있고, 한국 소비자들의 패션 스타일과 브랜드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사회: 이계창 대표 또한 K패션 포텐셜에 대해서는 매우 희망적으로 평가하지만, 태그만 떼면 구분이 안 되는 정체성은 여전히 불안하고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했다.


홍선표: 차별성과 품질의 중요성은 30년 전도 마찬가지였다. NIX를 출시한 배경도 “라벨 단추 떼면 브랜드를 구분할 수 있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스타일만 보고도 구별되도록 했고, 그랬더니 소비자가 바로 알아봐 주더라.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이템은 좁히고, 디테일을 강화한다면 시장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 K컬처 기반의 차별화된 스타일 만들어야

사회: 그렇다면 국내 K패션 중심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8년 차 브랜드 ‘홀리넘버세븐’이 바라보는 K패션에 대해 얘기를 들어본다면.

'홀리넘버세븐' 글로벌 진출에 이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동반 진출을 꾀하고 있는 최경호 서울디자인하우스 대표

최경호: 최근 1~2년 새 ‘K패션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근 밀라노 패션위크에 참여했을 때 현지 디자이너들도 관심을 갖고 물어보기도 해서 나름 고민을 정리해 봤다.


전통적인 패션을 대표하는 유럽은 정교한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K패션은 K팝 아이돌에서 연상되는 역동적인 템포를 느낄 수 있는 과감한 스타일과 컬러를 패션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홀리넘버세븐’이 스우파와 협력해 K컬처 기반의 차별화된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사회: 결국 K패션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정체성 정립과 차별화, 품질과 디테일, 그리고 K컬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로 귀결된다. 최근 언론에서는 소위 알·테·쉬 공습으로 한국 패션의 위기를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K패션의 활로는.


홍선표: 알테쉬가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 시장에는 옷이 너무 많고 ‘SALE’이란 프로모션이 난무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패션이 외면받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덜 팔리는 상품’을 만들고 싶다. 하나를 사더라도 10년을 입을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하고,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20년 전 산 마르지엘라(Margiela)를 지금도 애용하고 있다. 제대로 깊게 파주면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고객은 인정한다. 싼 거 10벌 판매하기보다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한 벌 사는 고객을 확보한다면 브랜드는 지속 가능하다. 올 가을 신규 사업도, 처음 투자자를 만났을 때 그들은 인플루언서를 활용해서 많이 파는 브랜드를 만들어달라고 했지만, “난 그런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기 싫고, 생각이 다르다”라고 했더니, 오히려 내 생각을 이해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사회: 소비자와 투자자 모두 무조건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기획자가 진정성 있게 배경을 설명하고 명확한 방향성을 얘기한다면 충분히 이해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홍 대표는 올 가을 ‘헤베츠’, ‘블루스콕’,‘노드그린’  3개 브랜드를 동시에 선보이는데, 동시에 선보이는 이유는.


홍선표: 브랜드마다 전문성과 깊이를 더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매장에 들어온 고객은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웃음). 사실은 백종열 씨가 권한 것처럼 꼴레뜨와 같은 편집숍을 하고 싶고, 그런 배경에서 성격이 다른 세 브랜드를 동시에 준비했다. 세 브랜드는 공통적으로 테크웨어(techwear) 트렌드에 따라 기능성 있고 오래가는 소재를 활용하고, 푸른 숲(블루스콕 Blue Skog)을 상징하거나 전통(노드그린 Nord Green)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등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회: ‘홀리넘버세븐’도 최근 브랜딩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고 들었다. 디자이너 브랜드로서 브랜딩 핵심은.


최경호: 개인적으로 올해 23년째 패션업에 몸담고 있고, 브랜드를 함께 경영하는 와이프와 하루 24시간 같이 있지만, 정체성을 얘기할 때는 가끔 헷갈린다. 브랜딩은 컨셉을 명확히 정비해야 하고, 이를 ‘시각화’ 시켜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체성은 1차로 내부 고객과 충분히 공감해야 하고, 이어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들까지 같은 느낌으로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브랜딩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오프라인 유통, 글로벌로 가는 포석이라면 OK


사회: 최근 이커머스서 성장한 브랜드들이 더현대와 신세계 강남 등 주요 오프라인 백화점으로 채널을 확장하고 있는데, 생각지 못한 투자비 증가로 고민이 많다. 브랜딩 차원에서는 필요하지만, 쉽게 결정하기엔 부담이다.


홍선표: 유통의 양면성은 과거와 변화가 없다. 과거 백화점이 담당했던 초기 성장 기반을 지금은 무신사와 같은 플랫폼이 담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판매수수료와 무리한 쿠폰발행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또 최근 오프라인 진출에 대한 비용부담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브랜드의 넥스트 스텝이 뭐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좁은 국내 시장에만 집착해서는 늘 플랫폼과 이해관계만 따지고 투자 부담만 늘어난다. 마치 한국패션이 지난 30년간 늘 백화점 수수료만 따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보다 넓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몇몇 백화점과 플래그십숍은 브랜드를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겠지만, 글로벌로 가는 과정에서 브랜딩을 위한 포석이고, 투자 여력이 있다면 그 가치는 충분하다. ‘텐잇츠’도 올 가을 한남동에 330㎡ 규모로 편집형 플래그십숍을 오픈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이계창: 수수료 같은 유통구조도 문제지만, 전개 방식이 더 심각하다.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플랫폼들이 쿠폰을 경쟁적으로 남발하고 있다. 플랫폼 입장에선 매출이 우선이겠지만, 이로 인해 브랜드 가치를 훼손받을 수도 있다. 브랜드는 각자 고유 가치와 방향성이 있는데, 쿠폰으로 가격이 인위적으로 조정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브랜드가 가격을 컨트롤하기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그 가치가 무너진다. 더욱이 후발 플랫폼들이 이를 흉내 내 쿠폰을 발행하고, 적자가 누적된 플랫폼이 또 다른 회사에 흡수되거나 사라지고, 결론적으로는 소비자 신뢰가 무너져 그 폐해는 고스란히 브랜드에 돌아간다.


 


# K팝 아티스트는 좋은 디딤돌, 글로벌 아티스트도 활용해야

국내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을 지지하는 디토앤디토 정인기 대표

사회: 역시 20년 대륙의 경험이 넓은 시야를 만들어준 것 같다. K패션이 글로벌마켓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K팝 성공스토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와 연계해서 K패션의 본질을 다시 정리해 봤으면 한다.


홍선표: 지금 와서 K팝 아티스트를 단순히 광고 모델로 접근해서는 감당이 안된다. 최근 ‘헤베츠’ 광고 모델로 요즘 핫한 아이돌 B 씨를 소개받았는데, 처음에는 3, 4억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7억까지 얘기하길래 마음을 접었다. 국내시장만 생각해서는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비용이다.


최경호: 같은 맥락에서 스우파와는 철저히 콜래보레이션으로 진행하고 있다. 스우파 멤버들을 기획에 참여시키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착장함으로써 브랜드 홍보 효과를 높이고 있다. 브랜드 콘셉트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홍선표: 우리가 K팝과 K패션처럼 ‘K’를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K팝이 아니더라도 글로벌 아티스트와 협업한다면 글로벌 마켓으로 스코프를 확대할 수 있다. ‘헤베츠’는 얼마 전 방한한 앤더슨팩(Anderson paak)과 화보를 촬영했는데, 앞으로도 글로벌 아티스트와 재미있는 협업을 많이 진행할 것 같다. 그만큼 한국 패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고, 우리가 노력하면 충분히 기대하는 퍼포먼스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롤링스톤(Rolling Stone)> 경영진과 인연으로 가능했지만,
하나가 좋은 선례를 만들어지면 제2, 제3의 사례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K패션도 ‘K’만 붙여서 억지를 만들기보다는 K팝 아이돌을 포함 글로벌 아티스트와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글로벌 소비자와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이 반복될 때 진정한 K패션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계창: 명동상권만 보더라도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지금은 숫자로는 일본인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인 16%로 가장 많다. 예전에는 한국패션에 대해서 중국과 일본에서 한정됐다면, 지금은 동남아와 중동은 물론 유럽과 북미 등으로 확장됐고, 실제 구매액도 늘어났다. 과거 ‘Nigo(BAPE 창업자, Kenzo 디렉터)’ 같은 디렉터가 글로벌로 성장했던 배경에는 80~90년대 일본 경제와 문화적 호황이 있었기에 가능했듯 지금은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이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롤링스톤>과 같은 미디어를 통한 글로벌 아티스트와 교류는 k패션의 새로운 진화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 결국 ‘스타 브랜드’가 변화 리드

사회: K팝의 성공 배경엔 SM과 JYP, HYBE와 같은 매니지먼트 기업의 역할도 있었다. 우리 패션업계도 역량 있는 디자이너는 충분한데, 이들을 글로벌서 성장시키기 위한 플랫폼의 역할은.


좌로부터 홍선표 대표, 정인기 대표, 최경호 대표, 이계창 대표


홍선표: 산업, 특히 패션은 국가적 사명처럼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 IT산업도 스티브 잡스라는 한 명의 스타로 인해 산업이 발전했지 않은가. 패션은 개성이 중요한 만큼 공장에서 찍어내듯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해서는 장기적으로 생명력에 한계가 있다. 내가 나가서 잘 버텨주고 물꼬를 터주면 다른 사람들도 동참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온라인 플랫폼들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순기능도 했지만, 랭킹을 통해 잘 판매되는 상품을 유도하고 누가 더 싸게 빨리 공급하느냐로 경쟁시킨다면 K패션 미래가 희망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계창: 명동 매장에는 80~90%가 외국인이고, 그들은 개성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블랙과 화이트, 그레이 등 무채색이 절대적이다. 온라인 플랫폼들이 변화를 주도하면서 더욱 심해졌고, 심지어 ‘무신사룩’이란 무채색 패션이 한국 패션을 표현하는 단어로까지 등장했다.


최경호: 글로벌 시장은 달리 표현하면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디자이너들이 한국이란 좁은 시장에서 혼자서 생존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하향평준화를 피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꿈을 포기하게 된다. 작은 차이로도 브랜드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매니지먼트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배경에서 지난해 법인명을 ‘서울디자인하우스’로 바꾸고, 또 다른 스타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개성은 최대한 살리되 SCM, BM설계, 글로벌 마케팅 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역에서는 매니지먼트 플랫폼으로서 접근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동일한 플랫폼 소속이면 차별화가 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SM과 HYBE의 색깔이 다르듯 디자이너 매니지먼트도 자기 색깔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 기반의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를 육성하고, 이후 편집숍까지 키워 나가는 ‘패션계 YG’가 서울디자인하우스의 목적이다.  


사회: 매니지먼트 플랫폼을 얘기하려면, 자본 시장과 결합도 필요한데, 어떻게 결합해야 하나.


홍선표: 일단 자본을 투자한 사람에게 돈을 벌어줘야 된다. 최근 부동산도 좋지 않고,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와 모델만 있으면 패션업에 투자할 기업도 적지 않다.


그러나 투자에 대해서는 접근 방식을 다르게 생각했으면 한다. 자본과 패션의 만남이나 투자를 어떻게 받을 것이냐가 우선순위가 아니다.

포인트는 ‘소비자가 어떤 취향을 살 것이냐’에서 출발해야 한다. 식상한 것이 아닌 지금 시대에 필요한 ‘Different Nice’가 나와야 한다. 패션은 감동을 어떻게 줄 것이냐를 고민해야 하고, 감동 있다면 투자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다.


# 業에 대한 근본적 혁신 필요, 결국 글로벌이 해답!

사회: 브랜드에 대한 정의도 많이 바뀌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 시대에는 한 브랜드에서 넓게 보여줬지만, 글로벌 이커머스 시대는 아이덴티티와 더불어 시그니쳐 아이템이 중요해졌다. 그에 따라 비즈니스모델(BM)도 다채로워졌다. 또 이커머스에는 CBE가 부각됐다면, 오프라인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편집숍이 주목받고 있다. 편집숍이지만 콘셉트가 명확하고, 끊임없는 콜래보레이션과 프로모션으로 소비자와 교감한다. 최근 성수동에 문을 연 ‘KITH’도 그런 흐름을 잘 반영해서 이슈이기도 하고.


홍선표: 브랜드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흔히 디자이너들은 ‘우리 고객은 이런 걸 좋아할 거야’라며 가져오지만, 지금은 단순함에 디테일을 더하고, 소비자가 관심 있을 스토리를 더해야 한다. 평소 ‘God is in the detail’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단순함과 깊이의 발란스가 더욱 중요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에 했던 뻔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 위기냐, 기회냐도 중요하지만, 때론 역발상으로 도전한다면 기회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계창: 코로나를 거치면서 생존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피벗(pivot)을 고민 중이다. 사업 초기 주변 지인들이 ‘무조건 중국인들에게 팔아야 한다, 워크웨어나 아웃도어 등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니멀이 대세다’ 등으로 대세를 얘기했는데, 지나고 나니 대부분 빗나갔다. 한때 편집숍은 콘텐츠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점차 브랜드를 줄이고 있다. 편집숍도 뾰쪽하고 깊게 가기 위해 개성이 뚜렷하고 철학이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최경호: 글로벌 마켓으로 확장하면서 ‘어떤 소비자에게 팔아야겠다’가 명확해지는 것 같다. 해외 소비자와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케이트보드, 스트릿댄스 등과 같은 특정 라이프스타일에 브랜드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즉, 스트릿댄서들을 위한 스트릿 패션으로 정체성을 정하고 나니 디자인에서부터 소재 선택, 아이템 작명,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 상호 윈윈 가능한 소싱 인프라 구축해야 미래 보장

사회: 차별화와 디테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소싱 인프라가 중요하다. 실제 최근 상당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초기 반짝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부실한 공급망 관리가 원인이다. 또한 주문량이 적더라도 파트너십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제조기업과 커뮤니케이션도 매끄럽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홍선표: 이번에 출시하는 ‘헤베츠(Hevets)’에 중국 최고의 데님 제조기업 제이드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단순 파트너가 아니라 자금까지 투자할 만큼 신뢰가 깊다. 제이드는 현재 알렉산더왕 전 컬렉션을 만들고 버버리와 토니버치 파트너이고, 최근에는 심실링(Seam sealing) 기술로 데님시장에서 또 한 번 이슈를 일으키고 있다. K패션이 글로벌로 가기 위해서는 공급 인프라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한국 디자이너에게 재능과 아이디어는 이미 충분하다. 여기에 제조에 대한 기본 지식과 특히 어떻게 파트십을 만드는데 더 투자한다면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심실링 같은 기술도 기능적인 것보다는 ‘다른 것’을 보여주는 패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다. 소싱을 가격으로만 접근해서는 차별성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


오랜 시간 K패션을 함께 고민해 준 홍선표 히어로랩 대표, 최경호 서울디자인하우스 대표, 이계창 SUPY 대표, 세 분 대표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주신 하이서울쇼룸 홍재희 대표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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