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나에게 안전공간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더욱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로 느껴졌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만 5년 간 난 아이 셋을 더 낳았고 현재 나는 아이넷 엄마이다.
아이들은 수시로 엄마의 공간을 침범했다. 주방, 화장실, 안방 등 가릴 것 없이 본인들의 욕구에 따라 엄마를 쫓아다녔다. 그래서 찾은 시간이 새벽이었다. 새벽 루틴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새벽형 인간이었다. 새벽 5시 반부터는 출근 준비와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30분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주로 말씀 묵상과 그날의 할 일 정리가 대부분인 짧은 새벽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한없이 소중했다. 어쩌다 늦잠이라도 자게 되면 하루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가끔 지인들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나요?"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살고 싶어서요.”
그만큼 새벽은 나에게 절박하고 절실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난 그것이 왜 그리 절박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본능에 의해 찾아낸 시간이었다.
2021년을 마무리하며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났고 24시간을 숨 막히게 보내던 생활은 일시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내 주변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다리뼈가 부러져 다리를 고정한 후 가만히 있어야 했기에 아이들이 내 곁으로 오는 것을 나도 남편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게는 자연스럽게 물리적 ‘안전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 아이를 낳고 9년 만에 처음으로 누리게 된 ‘공간의 자유’였다. 갑작스레 많아져버린 시간에 책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걸 아이들에게 노출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2021년 말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책을 결제했다. 해외에 살고 있는 지라 종이책을 주문하기가 어려워 ebook을 선택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송지은 작가님의 <오늘도 예민하게 잘살고 있습니다>이다.
송지은 작가님의 책과 내가 찾은 '안전공간'이 도대체 무슨 연 개성이 있는 걸까?
나는 직장생활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았고 일반적인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 뮤지컬 배우였다. 뮤지컬 배우로 5년간 일을 하다 결혼을 해 미국에 왔고 전업맘으로 5년을 살다 아이들이 다니던 한인 유치원에 보조교사로 취직을 해 3년간 일을 했다. 2020년 봄, 코비드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되며 다시 경력이 단절되고 작년 11월 무용학원 선생님으로 취직해서 일하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또 한 번 직장을 잃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소위 '아싸'로 불려졌다. '별종'이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나는 다른 배우들 사이에 잘 끼어들지 못했다. 연습기간부터 공연까지 나를 지켜보시던 한 선배님은 나를 따로 불러 함께 등산을 하자고 하셨다. 목포에 있는 한 산을 함께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배우들은 딱 보면 어떤 사람인지 가늠이 되는데 나는 도통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내 이야기를 들려달라 하셨다. 사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선배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많은 부분에 공감해주셨고 본인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내게는 배우로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며 그건 밖에서 깨줄 수 없으니 내면에서부터 그걸 깨고 나와야 배우로서 더 드러나고 성공할 것이라고도 말씀해주셨다.
배우일을 하면서 그건 내게 늘 숙제였다.
"도대체 넌 어떻게 배우가 된 거니?"라고 묻는 분들도 계셨다. 나도 보통의 내 친구들을 만나면 에너지 좋기로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데, 연습실과 분장실에만 가면 왜 그렇게 쭈구리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른 배우들과 조금 달랐다. 그리고 나의 다름을 그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 있길 좋아했다. 혼자 있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그 당시 북적이는 대학로에 있었던 던킨은 내 아지트나 다름없었다. 공연이 있거나 오디션이 있거나 대학로에서 일정이 있는 날이면 늘 서너 시간 전 던킨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대본을 읽고 악보를 보며 노트를 펼쳐 끝없이 흘러넘치는 생각들을 적고 또 적었다. 그렇게 나를 비우고 극장에 들어갔다.
무대의 암전, 그 적막감을 느껴본 사람은 그것이 어떠한 쾌감을 주는지 조명으로 깎아진 그 공간에서의 안정감이 얼마나 아늑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숨이 턱턱 막혀왔다면 무대 위의 조명 속에선 안전하다 느꼈다. 그곳은 내게 '안전한 공간'이었다. 가끔 무대에서 약속되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배우들은 미리 약속된 대사와 동선을 벗어나지 않고 수백 수천번 연습한 대로 연기했다. 그 공간에서 난 안전했다.
약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가장 안전한 공간.
조명으로 아늑하게 디자인되어있는 나만의 공간.
약속되지 않은 사람들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 인식되었던 것 같다.
결혼 후, 내게는 나를 지켜줄 '안전공간'이 없었다. 극장 또는 서점, 커피숍 구석에서 찾았던 '안전공간'을 이곳에선 찾을 수 없었다. 아이가 넷인 엄마의 현실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아이들은 내가 '안전공간'을 찾을
틈새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시간이 새벽이었다.
다리를 다친 후에도 새벽 루틴은 계속되었다. 아프다고 해서 그 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읽고 적고 생각하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내가 왜 다른 배우들과 달랐는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향인이었다. 민감한 사람이었다. 송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초민감한 사람'에 속했다. 배우였으니까, 유치원 선생님이었으니까, 나는 남보기엔 밝고 쾌활하니까 당연히 외향인이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나에 대한 오해였고 그로 인해 오는 내면의 갈등으로 나는 너무 많이 병들어있었다. 그 후, 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로 소극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 내향인들이 살아가는 법에 대한 책들이었다. 각자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내고 해결점을 주는 것들도 달랐지만 나는 대부분 그들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송 작가님의 <오늘도 예민하게 잘살고 있습니다>는 다른 책들보다 더 나의 내면을 잘 공감해주고 설명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누군가 논리적으로 글로 적어둔 것을 읽음으로부터 오는 희열이 있다.’
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이 바로 그 희열인 것이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나의 성향과 기질,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한다 하며 괴로워했던 시간들을 논리적으로 적어둔 글을 읽으며 굉장한 희열을 느끼고 있다.
송 작가님은 ‘안전공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전공간’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으며 그녀가 어떻게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내향성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섞이는지 또 어떻게 분리되어 한 공간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지, 또 작가 스스로 노력해보았던 여러 가지 치료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내향인에게 꼭 필요한 여러 가지 삶의 조건들 중 '안전공간'의 확보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내가 내향 인임을 인정한 후,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찾았던 ‘새벽’ 시간이 나에게 ‘안전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무대는 아니지만, 동이 트지 않아 아직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에 작은 스탠드 빛이 닿아있는 그 조명이 미치는 딱 그 정도의 공간. 그것이 나에게는 ‘안전공간’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내면의 자유를 찾았고, 몸과 마음의 병을 털어내고 있으며,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다.
새벽 시간 나만의 '안전공간'
우리 모두에게는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안전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어디가 되었든 소중히 여기며 충분히 즐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