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by EL

한국에 다녀온 지 3년,

다시 한국행 티켓을 끊는다.


해외살이 14년 중, 세 번째 방문


두 번째 방문이 10년만 이었으니, 세 번째 방문은 양호한 편이다.

사실 이번에도 별로 가고 싶진 않았는데,

크루즈보다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큰 아이의 한마디에

노선을 바꾸었다.


해외에서 아이 넷을 키우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친정엄마가 멀리 있어서 아쉽겠다는 말이다.

글쎄,

엄마가 멀리 있는 게 아쉬울 일이 뭐가 있을까.

엄마는 엄마의 삶이 있고 나는 내 삶이 있다.

아이를 낳고 키워오며 혼자 해낸 시간이 많아 오히려 누군가의 도움이 어색하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혼자 무엇이든 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다른 이가 어줍잖이 육아에 입을 대면 그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


엄마,

한국 방문을 결정하며 이번에도 엄마보다는 이모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물론 엄마가 지방 멀리에 내려가 계신 것도 있지만

내게 마음의 안식처는 친정이 아니라 오히려 이모네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가장 힘들어서 손내밀었던 시기,

지옥 같은 현실에서도 살아남으라고 날 외면한 엄마에게 받은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어져만 간다.


사실, 어른으로써 당연히 스스로 감내해야 할 일들이었지만

그 순간엔 난 엄마가 있어야 했다. 의지할 곳이 있어야 했다.

내가 어떤 모양으로 있어도 돌아갈 수 있는 그런 품이 필요했다.

그렇게 믿고 내민 손을 차갑게 내친 엄마.


그 후로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한국에 가고 싶어 하던 마음도 서서히 식어져 갔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상실감이 나를 점점 코너로 몰아세웠고 무기력해지게 만들었다.


무너지고 무너져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바닥을 쳤을 때,

내게 손을 내밀어준 건 엄마가 아닌 이모였다.


엄마라는 이름의 신성한 힘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꼭 엄마라고 해서 모두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아이들에게는 꼭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지.

삶의 목표가 하나 더 늘었다.

아이들이 절벽에 서 있을 때

그곳에서 매달리든 뛰어내리든 그 절벽을 스스로 이겨내라고 등 떠미는 엄마가 아닌

손을 내밀어 함께 버텨주는 그런 엄마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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