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산 밴드: 자우림 예찬론
문제야 문제, 온 세상 속에 똑같은 사랑 노래가.
와닿지 못해. 나의 밤 속엔 생각이 너무 많네.
- DEAN <instagram> 중에서
제목이 instagram이 아니라 insight라고 불려도 이상할 게 없는 가사라고 생각했다. 한국 가요 차트의 요약 그 잡채! 매일 같이 무수한 음원이 쏟아지는데, 그 많은 곡들이 한결같이 사랑을 노래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살아가며 가슴속의 폭풍*이 이는 이유가 어디 사랑뿐일까. 아름답지 않고 어두운, 낯설고 불편해 선뜻 꺼내놓기 어려운 감정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아야만 할까. 그 물음의 끝에 바로 ‘자우림’이 있다.
*자우림 <샤이닝> 차용
자우림.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만큼 자우림의 곡들은 어딘가 어둡고 우울하다. 동시에 신비로운 건,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곡보다 따뜻하다는 점이다. 처음 자우림을 알게 된 건 2010년… 입시를 앞에 두고 압박감이 심하던 고3 시절이었다. 당시 야자를 하다가 우연히 김윤아의 솔로곡 ‘Going Home’이 재생됐는데, 따뜻한 가사와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홀려버리고 말았다.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 김윤아 <Going Home> 중에서
나조차도 애써 외면했던, 모두가 똑같다는 핑계로 억누르던 마음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보듬어주는 생소한 감각. 이때 처음으로 그 사람의 이름이 김윤아라는 것과 함께 자우림 보컬임을 알게 됐고, 그날로 모든 앨범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자우림은 <매직 카펫 라이드>나 <하하하쏭> 같이 꽤나 발랄한 곡들을 부르는 밴드였는데, 앨범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 이미지가 완전히 뒤집혔다. (정말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거였다.)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Violent Violet>, 학교 폭력을 다룬 <낙화>, 죽음을 이야기하는 <죽은 자들의 무도회>, 이기심을 말하는 <행복한 왕자>, 고독과 방황이 담긴 <샤이닝>까지… 때로는 담담하게 읊조리고, 때로는 처절하게 절규하고, 어떤 순간에는 유쾌하게 소리치기도 하면서 흔히 들여다보지 않는 감정과 순간들에 공감해 주는 밴드가 바로 자우림이었다. 낯선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흔치 않기 때문에 더 값지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쭉- 내 마음에는 짙은 자줏빛 물이 들어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다. 누구의 삶이든 깊이 들어가 보면 불가항력으로 마주한 고비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그 순간을 넘게 해주는 건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 한 명, 말 한마디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자우림의 음악이 바로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 그 누구보다 우리의 비극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봐주는 존재. ‘바람 부는 세상에 혼자 서 있다**’며 비극을 노래하는 동시에 그런 세상에서도 ‘편히 잠들 수 있기를***’ 염원해 주니, 마음에 물들 수밖에.
**자우림 <샤이닝> 차용
***자우림 <Night Wishes>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