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공 Mar 01. 2022

44. 무슨 이유가 필요해

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이유



44. 무슨 이유가 필요해


우리는 그렇게 계산기가 되어간다. 

사고하면 아니 되고, 정해진 답안지만 줄줄 외워야 하는 계산기가 되어버렸다. 어려서부터 그랬을 것이다. 꽃 한 송이를 보더라도, 과학 선생님은 꽃의 광합성 작용, 국어 선생님은 꽃말의 의미, 수학선생님은 꽃의 수량, 도덕 선생님은 꽃을 꺾으면 안 된다. 하는 이유와 정답만 알려주었다. 


몇몇의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아무 생각 없이 뛰어노는 소중한 시간들은 모두 이유가 있어야 한다. 

될수록 상위권 성적의 친구를 가려 사귀어야 하고, 게임을 하더라도 ‘코딩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흡족한 미소를 보여줬고, 냇가에 가서 도롱뇽이나 잡는 의미 없는 짓거리를 하는 아이들은 철부지로 취급하기 마련이었다. 

굳이 도롱뇽을 잡기 위해서는 그것에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도롱뇽의 성장과정이라던가 생활환경 이라던가 알은 어떻게 낳는지 따위의 생물학적 이유 말이다. 


cause(이유, 원인)에는 무조건 be·cause(~ 때문에, 왜냐하면)라는 까닭이 있어야만 그것이 합당하다 느끼었다. 아무런 이유가 없이 그저 바라보고 놀기만 한다면 어른들에게 그것은 쓸모없는 행동으로 여겨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유 없이 노란 꽃을 바라보고, 노을 지는 석양을 의미 없이 바라보고 아무런 까닭 없이 일렁이는 마음의 소리를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는 이유가 없다. 그 이유 없음으로 인해 우리는 계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유 理由

[명사]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

[명사] 구실이나 변명.     


‘이유’라는 단어에는 몇 가지의 국어사전적 정의가 있는데, 당연 논리적 까닭을 풀이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 구실이나 변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디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우리가 멍하니 허공을 보며 멍 때리는 순간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남들이 볼 때 도움 안될 것 같은 백수 친구를 만나서 소주나 먹는 의미 없는 시간 또한 모두 제 나름 이유가 있다. 이유라는 단어에는 ‘합당’ 한 것이 없다. 내가 그르다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이유가 되었다.      



생각하는 A.I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중 하나를 고르라면, 우리는 차라리 생각하는 로봇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저 동물 중 하나의 ‘종’ 일뿐이었다. 우주 저 멀리서 볼 땐, 개나 염소와 다를 것 없는 인간이라는 하찮은 존재는,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고하고 추리해야 한다. 구세대가 붙여놓은 답안지에 만족하지 않은 채, 이유 없이 바라보고 갈구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인간과 개의 차이점을 나뉠 수 있는 유일한 종족 분류이지 않을까 한다.      


천재적인 수학자 오일러는 소수(1,3,5,7,11…)의 제곱에 1을 뺀 수를 분모로, 소수의 제곱을 분자로 두고 이 수를 모두 곱해보더니 파이 제곱/6이라는 ‘오일러의 가정’이라는 공식을 내놓았다. 

또 하나의 천재 수학자 가우스는 컴퍼스 한번 쭉 돌리면 될 거 가지고, 굳이 수백 번 연필질을 해서 ‘정 17 각형의 작도 법’을 완성했다. 


모든 위대한 업적은 그렇게 이유 없이 굳이 시작되더라. 소수가 왜 무한한지 규칙이 없는지 이유 없이 궁금해하고, 원이 왜 둥그런지 기초부터 의문을 던지는 그들처럼 말이다. 

당연한 것을 배제하고 무지개 안경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더 진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그렇게 이유 없이 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3. 포기하면 쉬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