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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Jan 01. 2023

내게 피자를 권했던 마음

  학교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따분한 곳인데 내게는 언제나 긴박함을 주는 곳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었고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항상 지각하곤 했다. 그게 글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랬다.


  8살 때 나는 학교에 갈 생각만 하면 오줌을 지릴뻔했다.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그 간단한 과제가 내게는 하루 만에 영어단어 30개 외우기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발표도 잘 못했고 종이접기도 잘 못해서 선생님의 종이접기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날이면 자리에서 혼자 조용히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럼 짝꿍이 당황스러워하며 '종이는 이렇게 접는 거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아마 모두가 나를 싫어하진 않았겠지만 거의 모두가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여름즈음에 나는 빈혈로 몹시 힘들어 집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가 힘들어하자 담임선생님께서는 교탁 앞에서 '몸이 아픈 친구를 집에 데려다줄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계속 교탁 앞에서 '소영이 집 앞까지 데려다줄 사람? 없니?'라고 말씀하셨다. 두세 번 질문을 하셨는데도 아무 학생도 손을 들지 않았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교탁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몹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선생님!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요! 저 혼자 어떻게든 갈게요!


  그렇게 선생님께서 4번 정도 질문하셨을 때 뒷문을 청소하던 친구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한 번도 말을 나눠본 적이 없는 애였다. 그 는 "제가 데려다 줄게요!" 하며 당차게 손을 들었고 교탁 앞에 있던 선생님은 '오 둘이 친하니? 고맙구나'라며 내 일을 잘 마무리 지었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내게 문제적 상황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이 아이가 손을 왜 들었을까 생각하며 그 애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나는 왜 나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데려다주겠다고 손을 들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더 어색한 상황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다.

  내가 걷기 힘들어 보였는지 친구는 '괜찮으면 잠시 우리 집에서 쉬었다 가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하기 너무 걷기 힘들었기 때문에 실례하겠다고 말했다. 그날은 그 애의 집 신발장을 보고는 더욱 놀랐다. 그날은 학교 가는 주 토요일이었다. 모든 가족이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친구의 이름은 정인이었다. 정인이는 "점심으로 피자 먹을 건데, 너도 먹고 가"라고 말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걷기 힘든 상태였지 속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안 먹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나는 오늘 처음 이름을 알게 된 친구의 가족과 함께 피자를 먹고 있었다. 피자 속의 알찬 치즈 크러스트가 나를 반겼기 때문에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피자를 먹으며 정인이의 아버지가 나에 대해 물으셨다. 정인이랑 친한지, 정인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물으셨다.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정인이는 좋은 친구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원만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피자를 먹으면서 점점 몸을 회복했다. 정인에게 '피자 먹고 나니까 좀 괜찮아진 것 같다'라고 말했더니 정인이가 웃었다. 아팠던 게 아니라, 그냥 배고팠던 거 아닐까?라고 정인이는 말했다.


  피자만 잔뜩 얻어먹고 정인이네 집에서 나왔다.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정인이에게 혼자 갈 수 있다고 반복해 말했다. 정인이네 부모님께서 '다음에 또 놀러 와서 맛있는 거 먹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정인이도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후에 정인이는 전학을 갔다.



  지금은 자주 피자를 먹지 않지만 피자를 먹을 때마다 정인이의 친절이 생각난다. 친하지 않은 동급생을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손을 들고(심지어 거리도 엄청 멀었다), 번도 대화해보지 않은 내게 피자를 권하는 마음.  한 동정심? 아무도 손을 들지 않으니 내가 들어야지, 하는 의무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는 어떤 가르침 때문인가. 그럼에도 피자는 혼자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먹었을 것이다. 나라면 그런 불편한 상황에서 피자가 입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인이가 베풀었던 다정함은 내가 지금껏 겪었던 다정함 1위에 자리하고 있다. 친절이 때로는 호구취급을 당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이 어려운 사회가 되어갈수록 정인의 친절은 내 마음속에서 더더욱 빛을 발한다. 이유 없는 것들이 반가운 요즘이다. 이유 없는 친절. 이유 없는 다정. 대가 없는 베풂...


  자꾸만 주변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득과 손해를 재게 될 때, 나는 정인을 떠올린다. 내게 아무것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피자 먹을 건데 먹고 가'라고 말하는 정인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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