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입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지 Nov 06. 2023

칫솔 바꾸기

23.11.06


아침에 일어나 문득 이를 닦으며 칫솔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다. 본래 성숙한 사람이라면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일상의 무료함을

축복처럼 여겨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칫솔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변화라도 그것은 변화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칫솔인데 칫솔에 균열이 생긴 듯 느껴진다. 왠지 이가 이전보다 깨끗하게 잘 닦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강박처럼 이를 한 번

더 닦는다. 빠짐없이 정교하게 닦는다. 그럼에도 개운하지 않다. 칫솔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판단한다.


출근을 하며 또 생각한다. 회사에 있는 칫솔도 좀 바꿔야지. 그리고 새 물티슈를 사서 내 사무실 책상을 조금 더 깨끗하게 닦아야지.


하지만 회사 앞에 다다라서 나는 24시 마트를 보고도 지나친다. 갑자기 무엇인가를 바꾸는 일이 무척 귀찮아진 것이다. 출근길에 사지 못하면 퇴근길에 사야지. 나는 또다시 그렇게 다짐한다. 나는 퇴근길에 칫솔을 사서 집에 가서 멀쩡한 헌 칫솔을 버리고 새 칫솔을 사용해 성스럽고 깨끗하게 이를 닦고자 마음먹는다.


9시간 뒤. 퇴근 시간이 된다. 나는 편의점을 지나친다.


인파를 헤치고 집 근처 역에 내린다. 눈앞에 버젓이 서 있는 커다란 마트 역시 지나친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저녁장을 보기 위해 마트로 속속 들어가는 것을 나는 그저 지켜만 본다. 그들 사이에 서있기 싫어져 멀뚱멀뚱 쳐다만 보다가 축 처진 어깨를 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양말을 벗을 힘도 없어 그 자리에 지쳐 쓰러진다.


문득 칫솔 하나조차도 얼마나 바꾸는 게 성가신지 생각한다.


‘내일은 반드시 칫솔을 바꾸리라.’


다짐하지만 나는 또 같은 칫솔을 쓰고 새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버릴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