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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담파담 Feb 08. 2022

스타트업 취업 성공기 #01

어쩌다 보니 취업에 성공했다.

드디어 6개월 간의 인턴 생활에서 탈출했다.

학점 연계 실습 프로그램으로 참가했던 스타트업에서의 인턴 생활은 나에게 있어 지옥과 다름없었다.


처음 IPP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약 3년 반의 편의점, 카페 아르바이트생에서 '직장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있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TV 속 드라마 주인공들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출근룩을 골랐고, 취업 선물로 여자 친구가 선물해준 토트백으로 설렘과 기대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21년 7월 1일 첫 출근날 내게 다가왔던 사무실 이미지도 완벽했다.

이틀간의 체계적인 OJT를 진행해주는 것부터 사무실 내 많은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는(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사무실 경험이 없었기에) 모습을 보며, 반년 동안의 경험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입사 후 2주 만에 내게 주어진 업무는 유튜버에게 플랫폼 내 입점한 브랜드 제품을 협찬해주며 플랫폼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유튜버 서칭 및 섭외, 브랜드 제품 협찬 물품 관리, 배송 관리, 콘텐츠 관리, 시크릿 링크 설정 및 정산 관리까지 모든 업무를 도맡아 진행했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인턴이 모든 일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지만,

기존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매니저님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그분의 모든 업무가 나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데이터 수집이나 신제품 검수 같은 잡일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담당하게 된 인생 첫 프로젝트에 이상한 사명감 같은 게 생겼는지 모든 최선을 다했다.

퇴사가 예정되어있던 매니저님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걱정 어린 위로를 건네셨지만,

드라마 주인공처럼 귀신같이 첫 프로젝트부터 큰 성과를 얻어보고 싶었다.

치기 어린 인턴이 뭔가 해보려는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인턴 4명 중 나에게만 커피를 따로 사주시며 요즘 고생이 많다고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따로 불러서 어깨를 두드릴 정도였다.

(그게 다른 의미인지 나중에야 알았다.)

열심히 발버둥 친 결과 나름 성과를 얻기도 했다.

또한 두 달 동안 프로젝트를 혼자 진행하다 보니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이 있었기에

프로그램 진행 구조를 내가 편한 방식으로 다 바꿨다.

어차피 사수는 퇴사했고, 회사에서 나만큼 프로젝트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9월 중순이 되고, 10월 프로그램 방향을 설정하고 있을 때쯤에 회사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아니 그전부터 이미 바뀌어있었다.

어느 날 인턴들을 관리해주시던 인사팀장님에게 슬랙이 왔다.

"오늘 점심시간 지나고 바쁘세요? 커피 한잔 할까요?"

한 번도 일대일로 커피를 먹자고 한 적이 없던 분이었기에 살짝 의아했지만,

다른 인턴들이 다 재택근무 중이어서 그러겠거니 하고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지나 조금 긴장된 상태로 인사팀장님과 함께 카페를 갔다.

카페까지 가는 길에 어색했던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팀장님과 업무 외 대화를 해본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팀장님은 본론부터 바로 말씀해주셨다.

"회사가 어렵습니다. 빨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인턴에게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더군다나 나는 월급을 받는 직원도 아니고 최저시급보다 낮은 IPP 실습비를 받고 있는 입장이었다.

지금 당장 회사가 문을 닫을 예정이라는 것인지, 그럼 내 학점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이 앞섰다.

불행 중 다행인지 회사가 아예 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님이 투자 유치에 실패하셨고 이에 따라 많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떠나간다고 하셨다.

말이 '많은 직원'이지 50명이 넘었던 인원 중 대표님과 인턴 4명을 포함해서 8명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남은 나머지 3명도 인사팀 1명, 개발팀 2명이었기에 결국 회사 운영에 있어 대표님과 인턴 4명이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패션 쇼핑몰 사업은 아예 접고, 유튜브 광고 대행사만 운영하게 되었으므로 내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때에서야 왜 다른 직원분들이 나만 따로 불러서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위로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이제 나는 유튜브 광고 대행사에서 AE를 하게 되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직무였고, 무슨 일을 하는 직무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차피 인턴이라는 점 대표님도 잘 알고 계시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팀장님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눈 뒤,

불과 2주 만에 모든 직원들이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고 사무실은 이사까지 완료했다.

프로젝트에 너무 열중하고 있는 나에게 가장 말하기 어려워 팀장님께서 망설이셨다고 말해주셨었는데,

배려는 감사했지만 너무 빠르게 회사 상황이 변해서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직원들은 망해가는 회사에서 하루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어 했기에

모든 업무의 인수인계도 단 이틀 만에 이루어졌다.

이틀 동안 회의실을 전전하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인수인계를 받는 일은 고역이었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 인턴 동기 3명이 더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만 이런 처지에 처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AE 업무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광고주와 크리에이터를 상대하며 둘 사이의 중재자 역할만 잘 수행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AE라기보다 대행 플랫폼 운영 업무에 더 가까웠다.

유튜브 광고 대행을 조금 더 쉽게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 사업이었기에,

CS 응대 및 대행 영업 리드, 그리고 사이트 이슈 관리만 하면 됐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인턴들에 비해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었고, 더 많은 업무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대행 AE 업무도 함께 진행하겠다고 대표님께 말씀드리고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다.


내가 원하더라도 원래 내가 하던 일이 있었기에 대행에 있어서는 조금 보조적인 업무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른 대행사가 업무를 어떻게 진행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았다.


영업 및 광고 > 광고주 컨택 및 영업 리드 > 크리에이터 리스트 전달 > 콘텐츠 검토 > 콘텐츠 업로드 > 정산


이 중, 광고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기업에게 서비스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타 대행사가 아닌 우리 대행사를 선택하도록 광고주를 설득하는 '광고주 컨택 및 영업 리드'를 내가 맡아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매우 급한 광고 요청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사람은 나였고, 그런 경우에만 보조적으로 이후 프로세스까지 내가 진행하게 되었다.


일정이 급한 광고는 빠르게 끝나기 때문에 조금 더 간단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정이 급한 광고일수록 이슈도 한 번에 많이 터지기 마련이었고 내가 담당했던 캠페인 중 이슈가 발생하지 않은 캠페인은 없었다.


경험이 전혀 없는 인턴이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계약서의 법적 문제까지 다루기엔 대학생이자 회사 생활 4개월 차인 나에게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예민한 광고주의 요청으로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크리에이터를 붙잡고 영상 편집까지 진행하며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원하지도 않은 일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은 과정은 철저히 묵살하고 결과에만 집중한다.

더군다나 투자 실패로 인한 재정 악화로 사업을 일부 중단했기에 대표님은 매출에 무척이나 예민했다.


플랫폼에서 나오는 수익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떄문에 직접적인 대행 업무의 수익에 많이 의존해야 했고,

그에 따라 대행 업무에 기대하는 바가 무척이나 컸다.

따라서, 나에게 돌아오는 건 늦게까지 고생했다는 위로가 아닌 왜 업무를 똑바로 처리하지 못했느냐는 질타뿐이었다.


'인턴인데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거야'

게다가, 나는 중간자였기에 설득하고 애걸복걸하는 일만 할 수 있었기에 더 억울함이 컸다.

그래서 광고 대행 관련 일은 앞으로 절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는 괴로움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하루하루 메일이 오는 알림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고, 30분을 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핸드폰의 진동 소리는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나한테 또 뭘 부탁하려는 거지?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데? 당장 그만두고 싶다.'

그러던 중 아이러니하게도 진로를 찾기 어려웠던 회사에서 진로를 결정하게 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바로 서비스 기획 프로젝트다.


플랫폼 운영 및 CS 업무를 진행했기에 플랫폼 내 서비스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추후 사업에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 확실하게 보였기에 서비스를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이전까지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리프레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업무 스트레스를 또 다른 업무를 진행하면서 푼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겠지만

당시 나에게는 어떻게든 도피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찾은 프로젝트가 서비스 개선 및 기획 프로젝트였다.


대표님에게 현재 플랫폼 내 서비스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개선 방향까지 대략적으로 작성하여 무작정 보고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업무 리소스가 생긴 것에 썩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많은 데이터와 그에 따른 추후 계획까지 말씀드리자 나에게 서비스 기획을 총괄해서 진행해보라고 하셨다.


스타트업이었기에 유연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서비스 기획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내가 무작정 서비스 기획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제로베이스였기 때문에 스토리보드 작성이나 기획안 작성도 내 맘대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기존 서비스의 구조만 살짝 바꾸면 되는 일이었고, 개발적인 부분은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겉으로 보기에 조금 바뀌는 일이었지만 기획적인 부분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모든 업무가 나 혼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팀과 진행되는 일이었기에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했고, 또 설득 과정이 매우 많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계속해서 생각해내야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약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실제로 유저가 사용하는 서비스를 런칭했다.


이렇게 서비스 방향성을 고민하고 런칭까지 이끄는 업무를 수행하며

내가 다시 회사에 활력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슷한 업무를 경험하고자 관련 직무를 찾게 되었는데

서비스 기획자,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무가 내가 했던 일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프로덕트 매니저 PM으로의 진로를 정한 채 12월까지의 지옥 같던 인턴 생활을 끝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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