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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담파담 Feb 17. 2022

맨땅에 헤딩도 "잘"해야 한다

주니어 PM 성장기 #2

어느덧 출근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만약 합격해서 출근하게 된다면 내가 무엇을 가장 먼저 하게 될지 물어봤었는데, 그때 돌아왔던 답변과 마찬가지로 현재 나는 새롭게 리뉴얼하는 서비스의 약관 파트를 맡았다.


이번 스프린트 회의에서 약관을 담당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회의가 끝난 뒤 나에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면 되는지 방향을 설정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나니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에게는 '약관 작성'이라는 미션만 떨어지고 그걸 완수하는 건 순전히 내 몫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개인 업무의 자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의 OKR에 맞춰 스프린트마다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업무는 개인이 자유롭게 진행하면 된다.

목표를 달성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출근을 언제 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업무의 자율성이 보장된 만큼 책임도 본인의 몫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업무를 자유롭게 진행해도 된다고 하길래 열심히 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았을 때 사람이 팀에 어디까지 비협조적일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팀은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개인에게 할당된 스프린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심시간도 아껴가면서 업무를 진행하고, 관련된 내용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서슴지 않고 미팅을 요청하고 있었다.

또, 주간 회의에서 개인 스프린트 진행 상황을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블로킹 이슈를 함께 해결해 나가면서 전체적인 OKR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런 팀은 해외의 큰 회사 사례에서나 들어봤었는데, 실제로 내 눈앞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동종 서비스 중 빠르게 국내 1위를 차지한 이유가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팀 안에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업무 방향을 찾아야만 했다.

'약관 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약관은 서비스 정책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작성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약관을 작성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A 기능을 B처럼 쓰면 어뷰징이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떻게 준비되고 있죠?'라고 물어보면 그에 맞는 정책이 무엇인지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꿰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서비스 정책이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지, 정책에서 구멍 난 부분이 없는지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갓 일주일 된 신입이다.

회의에서는 입 한번 뻥끗하지 못하고, 프로덕트 관련 담당자를 찾을 때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당연히 리뉴얼 될 서비스의 정책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정한 첫 번째 단계는 이틀 만에 서비스 정책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방대한 양의 서비스 정책이 위키에 작성되어있다 보니 자료가 흩어져있어서 파악하는데 꽤 어려웠다.

때문에 가장 리소스가 큰 일은, 정책을 파악하면서 구멍을 발견하면 이게 정말 구멍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작정 찾아가서 질문하는 것뿐이었다.

MBTI가 I중에서도 완벽한 I인 나에게는 찾아가서 질문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아직도 완벽하게 정책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스프린트가 종료되기 전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80% 정도 이해가 되었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왔다.

다음 단계는 지금 하고 있는 단계이기도 한데, 현재 세워둔 정책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는 단계다.

예를 들어, 결제 완료 후 유저에게 메일링을 하는 데 있어서 어느 시점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많은 PM들은 PM의 업무 범위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넓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업무 범위가 넓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대한민국의 법전을 하루 종일 읽고 있을 줄을 상상도 못 했다.

'콘텐츠 이용자 보호지침', '전자상거래법' 등의 법을 읽어보면서 세워둔 정책이나, 프로토타입의 UI가 법에 알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또, 비슷한 서비스의 약관과 정책을 살펴보면서 리스크를 어떻게 회피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을 법적인 이슈 없이 세밀하게 가다듬고 최종 단계인 약관 작성까지 진행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내일은 1차적으로 검토한 내용을 UXUI팀에 공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디자이너분들과 서비스 정책을 함께 폴리싱하고 문서로 재작성해서 모두에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스프린트를 진행하는 동안 안갯속을 혼자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입이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업무 진행은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스프린트 목표도 혼자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목표를 위해 내일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다.

마음만 바쁘고 길을 잃은 채 제자리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사수분께서는 매일 방향을 정할 수 있는 힌트를 던져주신다.

힌트라고 해봤자 '어제는 뭐했고, 오늘을 무엇을 할 거고, 앞으로는 뭘 할 거냐?'라고 물어보시는 것이 전부다.

근데 그게 나에게는 답변하기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어떻게,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기 때문이다.

대충 어떻게든 얼버무려서 말하면 그 방향보다는 이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고 귀띔해주기도 하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회사의 팀은 개인마다 스프린트 목표를 가지고 자유롭게 업무를 진행한다.

이런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비결은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스프린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다음 스프린트에서 조금 더 노력해서 달성하면 된다.

즉, 깔끔하게 실패를 인정하되,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빠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내가 약관 작성 목표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도 질책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냥 신입이라서 잘 몰라서 못했어요'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수에게 나를 왜 뽑았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스프린트로 빡빡하게 돌아가는 팀은 신입에게 친절하지도 않고, 팀도 신입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맨땅에 헤딩 잘할 거 같아서


사수한테 들었던 답변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 말이 열정이 넘치고 무작정 일에 뛰어들 용기가 있어 보인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사수가 했던 말의 포인트는 '맨땅에 헤딩'이 아니었다.

포인트는 '잘'에 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헤딩할 맨땅에는 무엇이 있는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땅에 헤딩해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고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가 내일 회사에 가서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PM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주니어로서 목표에 맞는 방향성을 설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 출근길에서는 오늘은 또 어디에, 어떻게 헤딩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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