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를 둘러보고
속리산 세조길 초입에 우뚝 서있는 법주사는 아껴두고 먼저 보지 않았다. 세조길을 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법주사를 둘러보았다. 올라올 때 일주문에 <호서제일가람>이라 쓰여 있는 것을 보니 법주사의 역사성과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인 553년에 창건되었단다. 무려 1500년 전에 세워진 절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법주사는 규모가 크고 굉장히 웅장하다. 사찰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절집의 다양한 기물이 특이하다. 법주사는 귀중한 보물들과 우리나라 가람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데 세조길을 왕복하고 지친 상태에서 세세히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법주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두 가지 특이한 것을 볼 수 있다. 왼쪽에 서 있는 금동미륵대불은 높이가 33미터나 되어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세계의 모든 종교 시설물을 살펴보면 문화가 번성하고 나라가 번영할 때 큰 규모의 사찰, 성당, 모스크, 피라미드, 탑 등을 건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단 규모가 크면 신도에게 위압감을 주고, 경외감 불러오기 때문에 규모를 키우는 것 같다. 사람의 존재를 미약하게 만들면 그 종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미륵불은 미래불이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에 미래의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거의 모든 종교는 과거-미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많은 불교문화를 가진 나라에 살면서 불교의 세계관을 잘 모르는 것이 못내 아쉽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세계의 다른 종교의 세계관을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류가 창조한 다양한 세계관을 천천히 알아보는 것도 앞으로 할 일이다.
[그림 1]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다른 가람과 달리 팔상전이 대웅전 앞에 서 있다.
법주사에 들어가려면 먼저 금강문, 사천왕문을 지나야 한다. 두 문을 지나면 바로 팔상전을 만난다. 보통 가람은 사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대웅전을 만나게 되는데 금강문이 있고, 대웅전 앞에 팔상전이 서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감람의 배치이다. 팔상전은 건물의 모습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목조건물의 곡선미를 마음껏 살렸다. 팔상전은 국보 55호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이란다. 건물같이 생겼지만 사실은 탑이니 대웅전 앞에 서 있어도 되는 모양이다. 사찰의 대웅전 등 다양한 건물에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단청으로 그려져 있다. 팔상전의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려져 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는 내용을 그림만 보고도 알 수 있게 그렸다. 옛날에 글을 모르던 사람도 그림을 보고 부처를 이해하도록 한 것일 것이다.
[그림 2] 속리산 법주사 대웅전 앞의 기물들. 당간지주, 석연지, 서천왕석등. 석연지와 사천왕석등은 너무나 아름답다.
나는 거의 무교에 가까운 개신교도 일지 모르지만 절집에서 다양한 기물들을 살펴보기 좋아한다. 우리 선조들의 종교적 생각, 미학, 해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가장 반가운 기물은 철제 당간지주이다. 법주사 당간지주는 복원된 것이지만 높이가 무려 22 미터에 달한다. 당간지주는 사찰을 나타내는 징표이지만, 우리나라의 솟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솟대는 삼한시대 소도 앞에 세워졌다. 솟대는 민간신앙으로 계승되어 마을 앞에 세워졌으며 풍년을 기원한다고 한다. 다른 사찰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당간지주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큰 사찰에는 영락없이 석등, 탑 등의 기물이 있는데 법주사에는 더 다양한 석조 기물을 볼 수 있다. 석연지는 연꽃 모양의 석조 조형물인데 어떻게 돌에 저런 아름다운 연꽃을 표현할 수 있었는지 경외감이 든다. 사천왕석등은 전형적인 석등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천왕이 새겨져 있어 사천왕석등이라 한단다. 이런 조형물은 천천히 살펴보아야 하는데 아내와 딸이 재촉하여 여유 있게 보지 못해서 몹시 아쉽다.
[그림 3] 속리산 법주사 대웅전 앞의 쌍사자석등, 희견보살상, 대웅전앞 계단의 원숭이조각상.
대웅전 앞에 서있는 석조물 중에서 해학적이며 정감 넘치는 기물이 그림 3과 같은 쌍사자석등, 희견보살상, 대웅전 앞 계단 난간의 상단에 설치된 원숭이 조각상이다. 법주사에서 본 거의 모든 기물과 건축물들이 국보 아니면 보물이다. 쌍사자석등은 국보 제5호이고 팔각 석등으로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로 등을 치켜들고 있다. 옛적 전등이 없던 시절에 이곳에 촛불을 켜놓으면 어둠 속에서 사자가 불을 밧쳐들고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듯하지 않았을까? 희견보살상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지만 보물 1417호란다.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서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을 한 보살이란다. 희견보살은 다른 절집에서 본 적이 없는 독특한 보살입상이다. 머리에 이고 있는 기물이 마치 스님의 발우 같다. 불교에서 보살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문수보살, 보현보살은 자주 들어보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성경의 바울이나 베드로는 자주 들어 보고 서구를 여행할 때 그들의 조각을 보면서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만, 불교 신자가 아닌 일반인이 다양한 보살을 알기 어렵다. 불교가 근 천오백 년 동안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선조와 삶을 같이 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겐 그저 바울이나 베드로보다 친숙하지 않은 듯하다. 오랫동안 우리 문화의 일부인데 우리는 왜 우리 문화를 잘 모를까? 종교를 떠나서 문화로써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살은 부처는 아니지만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에 버금가는 존재란다. 보살상은 대개 재가의 국왕을 모델로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치장과 기물을 가지고 있다. 대웅전 앞 계단 난간의 맨 위에 익살스러운 모양의 원숭이 조각상이 있다. 난간이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데 이국적인 모양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기 때문에 인도 불교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머리와 팔이 큰 모습이 마치 개구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4] 법주사 앞 냇가에서 수행 중인 물잠자리.
속리산 하면 정이품송과 법주사를 떠올리는데 이번 세조길 여행에서 법주사를 다시 만난 것은 즐거움이었다. 정이품송을 비롯해서 법주사 주변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즐비하다. 아마 정이품송과 같은 종류의 소나무일 것이다. 대개 큰 가람은 주변에 가람을 먹여 살릴 너른 농지, 큰 고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은은 산으로 둘러싸여 농지가 없을 듯하지만 여러 물줄기가 형성되어 내와 천을 이루고 있어서 풍요로운 고장인 것 같다. 법주사의 다른 많은 국보, 보물, 독특한 전각과 기물을 다음에 또 와서 천천히 둘러보아야겠다. 법주사를 떠나면서 냇가의 시원한 물에 발을 담가본다. 그때 물잠자리 한 마리가 풀잎에 앉아서 수행을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본 바로 그 물잠자리다. 검은 날개에 무늬가 들어있는 것이 내 고향 물잠자리와 조금 다르다. 스님들의 독경소리를 매일 듣고 있는 물잠자리는 이 여름에 득도를 하지 않을까? 그 옛날 위대한 스님들보다 과학적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는 왜 득도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득도는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1] 자현, 사찰의 비밀, 담앤북스, 2014.
2022년 8월 16일 충북 보은 법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