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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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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Nov 12. 2023

타인의 시선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내가 쓰는 야학이야기는 나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내가 야학을 대표하지 않는다. 내 동료들 중에서 내 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료들에게 글을 쓴다는 걸 알린 적은 없으나, 이미 몇 명에게는 내 글이 들켰다. 그렇다 보니 글을 쓸 때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한다. 특히 누군가에 대한 험담은 쓰기가 영 껄끄럽다. 공개되는 글인 만큼 어쩔 수 없다. 내 글에는 거짓말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시선에서 바라본 모습이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광경이 보일지도 모른다.




 쌉싸름한 타인의 시선을 맛본 적이 있다. 10년쯤 전에, 지역 A 대학의 학교신문 기자가 우리 야학의 모습을 보고 갔다. 당시 해당 대학 재학생이 우리 야학 봉사활동자의 40%가량 됐다. '대학교 신문에서 실어주면 홍보도 되고, 봉사자 모집에도 도움이 되겠다.' 하는 기대가 들었다. 어떤 기사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외부인이 보는 우리 야학의 모습 어떨까.


사진 속 인물은 제가 아닙니다 ^^;


내도 기성회비 때문에 학교 몬 갔는데 지금도 그러나
1970년대 기성회비 450원 시대. 2000년대 대학등록금 천만 원 시대. 높은 학비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공부에 열정을 불태우는 어머니들입니다.


 예상외로 우리 야학 이야기는 기사로 나가지 않았다. 사진 하나와 함께 짧은 기자의 코멘트만 신문에 실렸을 뿐이다. 더군다나 어머님의 말씀을 인용한 저 문장은 의외였다. 글쎄. 실제로 우리 학생들이 대학 등록금 걱정 얘기를 했을지 의문이다. 혹은 기자의 유도신문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현장에 내가 없었기 때문에 그날의 진실은 알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등록금 이야기는 쌩뚱맞다. 우리 학생들은 본인들의 공부에 관심이 있지, 대학생의 등록금이 오르는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을 텐데. 나로서는 아쉬운 내용이다. 굳이 저 사진 하나 싣자고 우리가 신문사에 협조할 필요가 있을까.


 야학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나는 '우리 야학이 어떤 곳인지 홍보'가 중요하지만, 하루 구경온 기자는 '본인의 기사에 야학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했을까? 당시 '반값 등록금'이라는 화두가 전국적인 이슈였다. 정치권에서 여야가 등록금과 관련된 정책으로 논쟁하던 시기였다. 각 대학교에도 비싼 등록금을 내려야 한다는 대자보와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는데, 이 학생 기자는 우리 야학을 당시 이슈와 함께 실어서 어그로(?)를 끌어보려 한 게 아닐까 싶다.




 브런치를 통해 제안 메일이 왔다. 시사 프로그램 기자께서 보내셨는데, 야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이셨다. 어떤 주제에 대한 질문인지, 내 이야기만 듣고 싶은 것인지, 또는 우리 학교가 궁금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자님의 저서와 지금껏 써오신 기사를 찾아보니 좋은 의도를 가지고 주신 제안임은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이런 소재를 다뤄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학을 다뤄봐야 시청률도 그닥일텐데. 하지만 내 의도와 다른 메시지가 타인의 시선으로 전달되는 게 겁난다. 시사 프로그램이라 더 부담스럽기도 하고. 만약 방송이 된다면 사회 문제와 연결지은 해석이 나오지 않을지 우려가 됐다. 며칠 고민하다 제안을 고사했다.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글을 써야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말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아량을 가지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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