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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an 11. 2024

티베트 난민 마을에 가다

맥그로드 간즈, 인도

※ 양귀자 '모순'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도 북부 산간지방의 작은 마을, 맥그로드 간즈. 이곳에는 티베트 난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인도 내 티베트 난민 집단 거주지는 여럿 있지만, 맥그로드 간즈는 1959년 중국에서 망명한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거주지라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당연하게도,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티베트민을 볼 수 있다. 스님들도 많이 보인다. 인도 사람들은 쾌활하고 말을 많이 거는데, 그와 달리 티베트 사람들은 차분한 게 한국인과 비슷하다. 이곳도 인도임을 자꾸 잊게 된다. 남걀, 노블링카, 코라 등 이곳에 있는 불교 장소들은 티베트에 있었던 장소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염원을 마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티베트의 역사는 우리와 닮았다. 나라 없는 설움을 겪는다는 점은 100년 전 일제강점기가 떠오른다.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베트 망명정부를 보면, 상하이 임시정부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지금도 목숨을 걸고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도 꾸준히 새터민을 받는 상황이라, 우리나라 역사와 참 비슷한 점이 많다.


 70년대까지는 티베트에서 인도로 넘어오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80년부터 중국의 경계가 점차 삼엄해졌고,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적은 난민이 인도로 오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적 이유, 자녀의 교육을 위해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걸어서 탈출하고 있다.


 TCV(Tibetan Children's Village)라는 티베트 학교에 가봤다. 처음에는 부모 없이 홀로 인도에 건너온 티베트 아이들을 위한 보육원이었다. 그러다 점점 어린 난민들이 많아지면서, 학교로 발전했다. 학교에 가보니,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티베트 스님, 네발 자전거를 타는 6~7살 꼬마, 농구를 하는 중학교 학생들. 우리나라 주말 저녁의 학교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힘들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각자 흩어져서 인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야 한다. 전혀 다른 문화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번 여행에 들고 간 책은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맥그로드 간즈에서 만난 티베트 난민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이 소설에 있었다.


 주인공 '안진진'은 쌍둥이 엄마와 이모가 있다. 엄마와 이모는 외모도, 성격도 똑 닮았으나, 결혼을 기점으로 둘의 인생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폭력적이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자와 결혼한 엄마. 양말가게 장사를 하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억척스러운 여자가 된다. 반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이모. 그녀는 근심걱정 없는 부잣집 사모님이 된다.


 누구나 부러워할 인생을 살던 이모가 불현듯 자살을 한다. 그리고 안진진에게 보내진 유서에 죽음의 이유가 적혀있었다. 이모는 엄마를 부러워했다. 사고뭉치 아들, 돈을 훔쳐 집을 나가는 아빠를 가진 엄마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본인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시장에서 팔아야 할 물건을 고르고, 외국어를 공부해야만 엄마는 살아남을 수 있다. 이건 분명 엄마에게 불행이다. 그런데 이모가 보기에는 엄마의 불행 덕분에, 엄마의 인생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래서 이모는 엄마가 부러웠다. 그리고 온실 속에 있는 본인의 인생은 재미가 없고 불행하다고 느꼈다. 본인이 온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한 만큼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불행하다.




 TCV 난민학교에 있는 아이들과, 한국 청소년들이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부모도 없이, 허름한 기숙사에서 클 수밖에 없는 티베트 아이들. 정해진 식사를 다같이 해야만 한다. 한국은 이에 비하면 너무도 좋은 환경이다. 부족함 없이 자라는 한국의 학생들. 포근한 이불과 맛있는 반찬. 티베트민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 아이들은 모든 걸 가졌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가? 아이들 앞에 놓인 팍팍한 현실, 각종 혐오표현. 쉽게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TCV의 아이들이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지만, 어려서부터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법을 체득한다. 분명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할 것이다. 불행한 만큼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불행하다.


 누군가를 마냥 부러워하지 않아야겠다. 덮어놓고 내 처지를 비관하지도 말아야겠다. 맥그로드 간즈에서 내가 느낀, 양귀자의 소설이 내게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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