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작은 도시 아그라. 인구 40만 명이 사는 이 도시에 타지마할이 있다. 인도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만큼, 인구 4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 전 세계 방문객들이 찾아간다.
간단히 타지마할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수도인 뉴델리로 넘어가기로 한다. 뉴델리역은 아그라에서 기차로 세 시간 반이 소요된다.
조짐이 안 좋다. 외국인 전용 창구에서 티켓을 샀는데, 기차표가 불과 90루피(원화 1500원). 정해진 기차시각도, 좌석도 없는 표였다. 뉴델리로 가는 기차 아무거나 잡아타면 된단다. 타성에 젖어있는 매표소 직원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기대할 수 없었다.
내가 산 이 티켓은 분. 명. 히. 꼬리칸이다. 1등석은 이보다 수십 배 비싸다는 정도는 관광객인 나도 알고 있다.유튜브에 인도 기차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무시무시한 장면들. 꼬리칸의 햔실이다. 아. 정녕 이 방법밖에 없는가. 주위 인도인들에게 내 티켓을 보여주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현지인들도 대답하길 망설인다.
This is difficult to you.
절망. 하지만 전화위복이었을지도? 아무 열차나 집어타면 되기 때문에 기차 연착에서 자유로웠다. 내가 당시에 탄 기차도 이미 5시간째 지연 중인 열차였다. 정확한 시각이 적힌 열차였다면 몇 시간을 기다려서 잡아타야 했을지 모르겠다.
많은 떼의 사람이 기차에 내리고, 또 그만큼의 사람이 기차에 탔다. 난 겁에 질렸다. 불쌍해 보이려고 더 겁에 질린 척했다. 불쌍해 보이면 누가 좀 도와주려나 싶어서. general이라 불리는 꼬리칸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서서 자리가 날 때까지 버텨보자.
기차에 탄지 3분쯤 됐나? 한 단계 상위칸인 슬리퍼칸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그리고 비어있는 자리를 조용히 알려준다. 슬리퍼칸은 지정석 제도이긴 하나, 정확히 본인자리에 앉는 문화는 아니다. 해당 등급의 좌석을 구매했다면 아무 위치에 앉아도 뭐라 하지 않는 시스템이다.(한국 유튜버들은 이점에 치를 떤다. 본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떳떳하게 앉아있으니 그럴 수밖에)
인도사람들의 은은한 호의는 계속 됐다. 배낭을 편히 둘 수 있게, 내 옆자리는 사람들이 일부러 앉지 않았다. 내 앞에는 친구 셋이서 2인용 좌석에 불편하게 끼여 앉아있는 젊은 친구들이 있었다. 난 배낭을 바닥에 내리면서, 여기 편히 앉으라고 손짓을 해도 주변에서 한마음으로 만류했다. 표검사를 하던 역무원도 그랬다. 내 표는 이 등급의 좌석이 아니고, 꼬리칸이라고 알려주면서도, 그냥 여기 앉아서 가라고 조용히 날 진정시켰다.
내가 외국인이라, 초행길이라 얻은 호의다. 나 말고도 꼬리칸 티켓을 가지고 있는 인도인이 무척 많았다. 그 사람들은 꼬리칸에서 신음하고 있는 와중에, 나만 호의를 건네받았다. 내가 인도 문화를 잘 몰라서, 여기에서 가장 약자라서.
우리나라에서 느끼기 힘든 아날로그 갬성
처음은 원래 이렇다. 초보운전자에게는 대체로 길을 잘 터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아는 잘못을 저질러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갓 사회로 나온 신입 사원에게는 까방권이 주어진다. 신입사원이 사고를 치면 사수의 잘못이기도 하다.
내가 신입 사원이었던 시절, 난 몰랐다. 나에게도 까방권이 있었다는 사실을.당시 사수분이 누굴 가르치는 재능이 없는 분이셨다. 그런 분 밑에서 일을 배우다 보니, 자책을 많이 했다.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할 것 같고. 아, 일은 지금도 적성이...;이따금 '저 맨날 혼나요ㅠㅠㅠ'라고 하소연하면 한 선배는 '괜찮아. 나도 아직까지 혼나 ;)'라고 위로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 말이 입발린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서실이었다. 나는 여전히 혼나고, 나를 혼내는 사람도누군가에게 혼나고 있다.
처음일 때, 더 많이 물어보고 더 크게 경험해야겠다. 완연한 기성세대에 진입하다 보니, 이제는 처음일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도 소중한 '첫 기회'가 다시 온다면, 이때만 용서되는 서툶을 즐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