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룰루 Sep 17. 2024

당신은 오늘 무슨 소원을 빌었나요?

 인도를 여행하는데 바라나시를 가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김치를 안 먹어보는 것과 같은 수준이 아닐까. 타지마할은 놓치더라도 갠지스강은 꼭 가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바라나시는 인도의 전통문화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힌두교가 탄생한 곳, 수많은 힌두교 신자들이 죽길 바라는 장소. 매일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저녁에 열리는 뿌자 의식도 화려하다. 아. 기회가 되면 여행지에서 종교의식에 참여해 보는 편이다. 사람들이 염원들이 모여있는 장소라, 남다른 느낌이 있다.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면, 나도 덩달아 경견 해진다. 거기에 내 소원도 올려본다.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한 '철수네 보트투어'에 참여했다. 철수는 한국어를 잘하는 인도사람인데, 한식당과 한국인 전용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오래전에 한비야도 이 철수에게 영어로 진행하는 투어를 받고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보트투어를 개발할 것을 제안한 것도 한비야라고 한다. '철수'라는 한국 이름도 그녀가 만들어 줬다. 그게 현재까지 이어졌고, 바라나시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이라면 철수를 만나는 게 불문율로 여겨진다.


 투어 중에는 '디아'라고 부르는 자그마한 꽃을 구입해서 갠지스강에 띄우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꽃을 띄우기 전에는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어야 한다. 그때 당시 무슨 소원을 빌었더라. 가족의 건강, 나의 행복 따위를 빌었을 거다. 내 소원을 들어준 신은 설마 파괴를 담당하는 시바신? 아니면 유지를 상징하는 비슈누신? 지금 생각해 보니 청자도 없이 나 혼자 열심히 소원을 빌었나 싶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소원을 빈다. 생일 파티를 할 때, 사찰에 가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타국의 종교시설에 가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수련회 장에서 촛불을 켜두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주 대단한 소원은 없었다. 주로 보편적인 범주 안에 있었다. 취업, 사랑, 건강, 돈. 사람들 사는 게 거기서 거기인가. 아니면 내가 기발한 소원을 빌 수 있는 창의력이 없는 걸까.


 소원을 빌면 진짜 하늘에서 이뤄줄까? 그게 사실이었다면 10년 전 나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에 있었다. 베니스 전역의 숙소가 만석이어서 인근 지역인 메스트레에서 하루 묵었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카운트다운을 못본다. 한인 민박집 사장님의 다리를 부여잡고 부탁을 드렸다. 2호점을 준비중이시던 사장님은 오픈 준비중이었던 공간에 나를 하루 묵게 해주셨다. 부랴부랴 매트리스를 가져와서 깔아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우여곡절 끝에 카운트다운을 외칠 수 있었다. 300년 전에 카사노바가 여인들을 유혹하던 곳에서 말이다. 알딸딸한 상태로 처음 본 사람들과 신년의 무운을 빌었다. Happy New YEAR!! 그 어떤 해보다 신난 상태로 새해를 맞이했으나, 역대급으로 우울한 해가 되었다. 회사에서 원치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나고, 정을 붙이지 못해 우울함이 탑재된 채로 살았다. 그 뒤로는 소원을 비는 행위에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새해 일출을 보러 나간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소원을 빌면 진짜 신이 이루게 해 줄 거야!'라고 믿진 않는다. 그보다는 내 마음을 다시 다잡는 데 의미가 있다. 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보리라, 셀프 다짐의 효과가 있다. 바라나시 일몰 때쯤, 무지 많은 인파가 강변(가트)으로 쏟아진다. 뿌자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이미 만석이다. 내가 겪어본 종교 의례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델리 기차역 버금가는 수준의 혼잡도였다. 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어떤 소원이 있을까. 그들도 나와 같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열망을 한다면 그 기운을 받아서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이 뿌자 의식처럼.



 오늘은 보름달에게 소원을 비는 날입니다. 당신은 무슨 소원을 빌었나요? 부디 오늘의 다짐을 잊지 말고 내년 추석까지 함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뛰어봅시다. 서로 응원해 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