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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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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Mar 26. 2024

효도 여행을 위한 마음가짐

후쿠오카, 일본

 "거 참 일본까지 와서 불만이 참 많네! 그만 좀 해!"


 후쿠오카에 있는 한 중식당이었다. 음식이 짜다고 불평을 하는 엄마에게 버럭 짜증을 냈다. 가족여행까지 와서 꼭 그렇게 음식 불평을 했어야 했는지.


 효도 여행은 신경 쓰이는 게 많다. 다른 일행들과 갈 때는 신경 쓰지 않던 사소한 것들까지 염두를 해야 한다. 가급적 경유 항공권은 피하고, 숙소도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택한다. 여행 동선도 복잡하면 안된다. 1킬로 거리 정도는 걸어도 될 법 하지만, 괜히 택시를 알아본다.


 그래서 첫 효도 여행은 후쿠오카였다. 한 시간 비행이면 도착하는 후쿠오카. 공항에서 도심까지 거리도 짧다. 이동에 의한 체력소모가 없다. 부모님을 모셔가기에 걱정할 것 없는 도시다. 이미 네 번이나 가본 후쿠오카라서 눈에 훤하기도 했다. 여기면 우리 가족쯤이야 내가 잘 가이드할 수 있지.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들에서 불만들이 나왔다.


 "일본 반찬들은 왜 이렇게 조금 주냐. 이렇게 재료를 아끼면 금방 부자 되겠다."

 "소주는 한국 소주가 훨씬 맛있다. 일본술은 영 취향에 안 맞네"

 "이 수건이 3만 원이라고? 도둑놈들이네."


 기상천외한 불만들에 정신이 혼미했고, 결국 마지막날 나의 짜증으로 부모님의 투정(?)을 잠재웠다. 효도여행, 쉽지 않은 거였구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이번에는 내 두 번째 효도여행 경험을 말해보고자 한다. 엄마, 동생과 함께 방콕에 갔던 일이다. 우리 셋은 숙소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물을 사러 들어갔다. 나는 갑자기 숙소에 놓고 온 카메라가 생각났다. 급히 나 혼자 카메라를 가지러 숙소로 돌아갔다. 그런데 숙소 열쇠를 내가 아니라 동생이 가지고 있었다. 숙소 열쇠를 들고 있던 동생은 내가 열쇠 없이 숙소에 간 걸 깨닫고 발을 동동 굴렀다.


 "어머, 오빠가 열쇠를 놓고 숙소에 갔네. 엄마, 나 잠깐 숙소 갔다 올게. 아니다. 엄마 혼자 두면 안될 거 같은데. 그냥 오빠가 다시 오겠지. 여기서 같이 기다리자."


 별 거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마는 동생의 이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 '아, 자식들이 날 버리진 않겠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솔직히 왜 감동했는지 전혀 와닿지 않는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예상 밖 불평을 했다면, 방콕에서는 예상 밖 감동을 한 셈이다. 지금도 가끔 이때의 편의점 얘기를 하신다. 방콕에서 좋은 곳도 많이 갔는데, 왜 하필 편의점 얘기를 하실까. 엄마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부모님에게는 여행지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가족이 함께 추억을 만든다는 거 자체에 부모님은 행복하다. 이게 효도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이제 장성해서 얼굴 보기도 힘든 자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뿌듯함을 느끼는 것.


 요즘 SNS에서는 '효도 여행 금기어'가 유행이다. 기껏 자식들이 준비한 여행에 초를 치는 부모들의 단골멘트 들이다. '이 돈 주고 겨우 여기 왔냐', '식사가 너무 달다/짜다', '아직 멀었냐. 언제 숙소에 들어가냐' 등등. 부모님의 투정과 불만에 질려버린 자식들의 '제발 이 말들은 하지 마라!'라는 울부짖음이다. 나 역시 공감 간다. 기껏 신경 써서 준비한 여행인데, 이런 불만을 들으면 힘이 빠진다. 누구 때문에 온 건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진정부터 하자고. 효도 여행은 어쩌면 부모보다 나 자신을 위해 준비하는 걸지도 모른다.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나의 만족감. 이것이 효도 여행을 준비하는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투정에 굳이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좋은 추억을 쌓기도 아까운 시간, 서로에게 더 집중하는 게 좋으니깐. 우리 엄마, 아빠가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으니깐. 다음 여행에서도 불만을 듣게 된다면, 이렇게 대꾸해야겠다.


 "그러게. 나도 이 음식은 맛없다. 비싸기만 하고. 역시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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