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지식이 없는 내가 공부를 가르쳐도 되는 건지.
학생 A : "선생님, 저번주에 국어의 음운변동에 관해서 설명해 주신 거가 이해가 잘 안 돼요. 파열음, 마찰음, 비음 이 종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 : "저도 저번주에 말씀드린 정도밖에 몰라서요. 더 깊이 알려드리지는 못하고요. 다음 주에 더 공부해서 알려드릴게요."
학생 B : "자기는 왜 바쁜 선생님한테 뭘 그런 걸 물어. 그냥 외워~!"
교사 자격증도, 성인문해 교사 교육과정도 밟아보지 못한 내가 학생들을 가르쳐도 되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고등반을 맡게 되면, 나도 모르는 내용을 부랴부랴 준비해서 수업할 때도 왕왕 있다. 이럴 때 학생들이 어려운 걸 질문하면 곤란해진다. 보통은 솔직하게 '잘 모르겠네요. 다음 주에 알아와서 다시 알려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는 편이다. 학생들도 민망한지 중요하지도 않은 거 가지고 괜히 질문한다고 서로 핀잔을 준다.
얼마 전, 갑작스러운 휴강을 해버렸다. 회사 야근이 길어지는 바람에 야학을 가지 못했다. 수업 한 시간 전에 학생들에게 휴강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보냈나 보다. 핸드폰을 잘 확인하지 않는 학생들이 나를 20분 동안 기다리다가 집에 가셨다는 말을 다른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 다음 시간에 휴강에 대한 사과를 드렸다.
"어머님들, 제가 저번주에 야학을 못 왔어요. 많이 기다리셨죠? 다음에 보충수업 할게요."
"아효 아니에요. 저희는 휴강하면 오히려 좋아요. 가뜩이나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좀 쉬고 싶은데요.(웃음)"
하루는 영어 선생님이 당일날 갑작스레 휴강을 하셨다. 학생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나에게 영어 선생님이 못 오신 이유를 물어봤다.
"영어 선생님은 왜 오늘 못 오신 거예요? 오늘 수업 못하고 내일 2교시에 보충수업 하신다던데요?"
"영어 선생님이 허리를 다치셔서 오늘 쉬신대요."
"그래요? 아이고 그분은 가뜩이나 집도 먼데. 몸 아픈 사람이 늦은 시간에 어떻게 집에 가겠어요. 2교시 마치면 10시 30분인데. 그 시간에 집에 못 가. 우리가 수업이 땡땡이 쳐줘야겠네(?). 카톡으로 '선생님~ 날도 추운데 우리 수업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보내야겠어요."
선생님을 배려해서 자발적으로 수업 거부를 행사하는 광경이란. 야학 선생님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라서 휴강과 보강이 잦다. 그래서 안정적인 학습은 사실상 어렵다. 야학은 자발적인 선생님들의 의지로 운영된다. 그렇기에 휴강이나 지각을 강제로 통제할 수가 없다. 학생들은 불규칙한 수업환경에 불만을 가질 법도 하지만, 보통은 이해하시는 편이다. 선생님들이 바쁘다는 걸 잘 알고 계신다.
요즘은 야학이 아니더라도 공부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관들이 적지 않다. 우리 구에만 하더라도 4개의 기관에서 우리 야학과 유사한 성인문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성인문해 교육 지도사 자격증을 가진 분들이 교육을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야학은 아마추어들이다. 당장 나만해도 교육과는 전혀 관련되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한 학생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았어. 솔직히 오늘은 학교에 가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그런데 젊은이들이 시간 내서 죽어라 공부를 가르쳐주는데. 피곤하다고 안 갈 수가 있나. 억지로 몸을 부둥켜서 왔지."
내가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고 있지만, 반대로 학생들이 나에게 수업할 기회를 주고 있기도 하다.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유튜브를 틀면 '걸러야 하는 사람 유형' 콘텐츠가 꽤 많다. 논리적으로 따져서 손익을 정확히 계산하는 게 익숙하다.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우리 야학은 낙제점이다. 교사들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고, 기본적인 근태도 불량하다. 무료 수업이다 보니, 학생들도 중도포기가 쉽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각자에게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이곳에 우리는 모인다. 합리적이지 않게도.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바보 같은 공간에서 기적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