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고 찢기고 멍들어 버린 몸까지도 사랑하는
2016년 7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 b.1953)의 개인전 "성적 종속의 발라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가 열렸다. 전시의 제목은 1986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사진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낸 골딘의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작가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지인들로, 작품집의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그녀의 사진은 아주 내밀한 사적 삶의 기록이 주를 이룬다.
불과 11살의 나이일 때 친언니의 자살을 겪은 그녀는 그녀는 십 대였을 때부터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한다. '기록사진'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공적, 사회적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라이프(Life)"지나 "내셔널지오그래피(National Geography)"지 소속 작가들의 기록사진들은 역사의 증언으로, 사진가는 제3의 관찰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사회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는 증인으로 역할하기도 한다. 하지만 낸 골딘의 사진들은 제삼자가 아닌 내부자로, 사진가 자신이 직접 연루된 삶 속의 인물들을, 곧 자신의 가족들, 연인들, 동료 등 자신과 직접 관계된 사람들을 담아낸다. 그녀의 사진을 보는 관객은 작가뿐 아니라, 작가의 주변 인물들의 관계 양상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가장 친밀하고 내밀하고 사적인 일상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공의 시선에 노출시킨 것이다.
그녀가 애정을 가졌던 동료들은 대부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었고, 성 소수자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에이즈와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커플들의 성관계 전후의 사진들, 나체를 전부 드러낸 그녀의 인물 사진들은 그럼에도 외설적이거나 포르노그래픽 하게 보이진 않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담담하게 기록한 그녀의 사진 속 나체의 인물들에게서는 되려 상처 입기 쉽고 취약한 인간적인 솔직함이 드러난다. 무질서한 모습의 술 취한 사람들, 약에 취한 사람들, 백스테이지에서 화장하는 드랙 퀸 퍼포머들, 섹스 후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고독한 연인들... 어두컴컴한 바와 호텔 방의 정적인 사진들, 흔들리는 스냅사진 속에 그들을 향한 낸 골딘의 연민과 사랑이 배어있다.
자신의 사적인 기록을 책 또는 전시라는 공적인 매체로 변환하는 작업에는 소위 예술적 재능이라는 것에 용기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살 냄새, 땀 냄새, 술 냄새,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그녀의 사진 속에는 20세기 현대인의 맨 얼굴이, 고독과 애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개인의 기록은 환유로서 시대를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