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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유 Oct 03. 2023

거짓된 행복 뒤 진실된 외로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분열증에 걸려 있었고 그 속을 오랫동안 헤매었다.

분열증의 특성을 꼽자면 환각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환각에 시달려왔다. 나는 이 환각의 이름을 ‘상향평준화된 이미지’ 라고 칭하고 싶다

우리를 가장 깊고 우울한 환각의 지대로 추락시키는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내 삶에 어떠한 화려함도 없는데 가까운 지인들의 sns엔 온갖 화려한 이미지들로 치장 돼 있는 걸 볼 때다. 우리 스스로도 그러한 ‘이미지’에 속하길 바라는 환각에 시달린다

좋은 이미지에 도달할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줄어들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감대 형성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정보 과다, 과시라는 결핍, 획일화된 문화, 유행이 취향이 돼 버린 시대에 사람들은 무엇이든 안다고 말한다. ’나 여기 알아 여기 핫 해 여기 유명해 여기 요즘 뜨고 있는 그 곳이래‘ 재밌는 사실은 “나 그거 알아 어 나 그거 알지” 하고 두 번이나 말한다.

과연 무엇을 얼마나 알고  적확한 사실을 관통하고 있을까. 이런 심리적 보상들이 결국 소위 말하는 ‘얼리어답터, 인스타그래머블’ 과 같은 ‘이미지’에 속하길 바라게 될 뿐이다.


결국엔 이중성이다.


잘 보이고 싶은가 정말 잘 살고 싶은가? 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만이 윤택한 삶의 첫 번 째 해답이 된다.


이중성은 우리 삶의 전반에서 나타난다.

어느 한쪽의 가치에 절대로 기울지 않고 어느 하나를 추구하는 싶으면 다른 한 측면으로 이동하는 식의 ‘저울질하는 세계관’이 이들에게 자리 잡고 있다. 좋게 말한다면 균형감각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결정장애’적인 특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결코 한쪽으로 온전히 넘어갈 수 없이, 그러한 넘어감이나 치우침 자체에 불안함을 느끼고 곧장 스스로의 위치를 재점검하면서 다른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 근본 바탕은 ‘불안’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70년애 소비의 사회 라는 책에서 현대사회를 소비사회 라고 규정했다. 자기가 소비하는 물품을 자기와 동일시하며 자신의 개성을 표출한다.  하지만 개인의 관점입각한 소비보단 sns의 정보과열로 인하여 ‘좋아보이는 것 남들이 다 사는 것 유행하는 것 뜨는 것 ’이 취향이 돼 소비되는 문화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최근에는 ‘이상’에 직접적으로 ‘어느 정도는’ 닿을 수 있는 소비 체계와 가치관이 마련되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그러한 ‘이상’을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것이 욜로 현상이다. 굳이 부자가 아니더라도 특급호텔에서의 하룻밤 해외여행 명품 아이템 하나 정도는 누리는게 그리 어렵진 않을 거다.

삶의 질이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욕망이 뒤섞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서울 중산층 청년의 꿈은 핫한 카페나 차리는 게 아닐까

단순히 강남의 좋은 아파트에 살기보단 더 구체적인 행복해 보여야 하는 삶이 항유되는 상태.

예를 들자면?

미디어에서 골라 보여주는 화려한 파티 같은 삶, 혹은 벽난로를 켜고 턴테이블 쳇 베이커의 엘피를 듣는 평화로운 이미지의 삶

이는 모두 욕망의 문제가 모종의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를 모두가 확고히 품게 되었으며 그러한 ‘이미지’가 온갖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주입되며 우리 역시 그 이미지에 ’도달 가능하다‘고 속삭이는 사회 분위기가 연동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것이 더 부정적인 사고일지도 모르겠어


긍정적이고 마냥 낙천적인 사람은 매력이 없어.


“놓을 건 놓아야 정신건강이 이롭다“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문장이다

최근 들어 ‘내려놓기’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 하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 것, 노력에 목숨 걸지 말 것, 관계에 집착말 것, 사랑이나 이성에 과몰입하지 말 것 든든 이런 말들이 에세이 책이나 공감의 말들에서 대세를 이뤄서 그런지 하나의 위로사업이자 힐링의 문화로 자리잡은듯 하다

그런데 과연 이런 말들이 성행할수록 우리 삶이 더 나아지고 있는지, 무엇이 현실적으로 놓아지는지는 스스로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종류의 말들이, 어떤 지상명제들이, 어떤 사회적 요구나 강령들이 대세가 되고 당연한 듯 여겨질 때면 늘 그것을 의심해봐야한다.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럴 만하지 않은 이유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할 수 밖에 없다

포기, 내려놓기 라는 것 또한 우리 삶을 위로해줄 요소도 있겠지만 삶의 중요한 부분을 앗아갈 측면 또한 있을지 모르겠다.

— 인스타그램에 절망이란 없다 책 일부 발췌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모두 부정적인 면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았다. 스스로에게 끊임 없이 질문하고 부정하고 좋은 것들은 수렴하고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인생과 삶은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리게 된다. 마냥 ‘잘 될 거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와 같은 말은 이젠 더 이상 위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무책임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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