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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이 Nov 15. 2022

누구나 주변에 게이 친구 하나쯤은 있다

당신은 동성애자 친구가 있으십니까?


아마 당신의 답변은 꽤 높은 확률로 '아니오'일 것이다. 특히 신이 이성애자라면 더더욱. 친구는 커녕 주변에서 성애자를 본 적도 없다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동성애'라는 것에 대해 깊 생각해 지 않았고 그저 를 보다 게이 남사친생겨 나의 패션 센스를 업그레이드 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 해본 정도가 다였다. 연히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커밍아웃'이라고 하면 주변인들을 불러 모아놓고 결연한 표정으로

전 남자를 좋아해요.


하고 외치는 장면을 떠올린다. 몇몇의 충격받은 표정은 덤이다.


하지만 나의 첫 게이 친구인 A 자신이 게이는 사실을 에게 직접 지 않았. 그저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A는 우리가 월요일마다 으레 주고받던 '주말 잘 보냈냐'는 스몰톡을 하던 중, 자연스레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이야기를 꺼냈다. 결연한 목소리도, 충격받은 표정도 없는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A 종종 연애 고민을 상담하기도 데, 그의 남친 세종시에 있어서 평일에는 데이트를 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세종시라는 말에 공무원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A'남친 아무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그가 외로울 것 같다고 했다. 떤 말을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끄덕이기만 했다. 가뜩이나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에서 이름 모를 그분이 얼마나 힘들까 잠시 생각할 뿐이었다. A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꿈인데 지금 남친은 한국을 떠날 생각도,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며 슬퍼했다.


게이 친구는 처음이라 조심스러웠던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게이들은 진짜 서로를 알아보냐 (게이 레이더가 있냐)', '게이끼리는 어디서 만나냐' 등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A는 늘 성의껏 답해주었다.


가 게이인 것은 우리의 관계에 어떤 영향도 치지 않았.

하지만 나에게 , 아니 꽤  다.




몇 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팀원들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업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루는 영상을 한창 기획하고 있었다. 이런 류의 콘텐츠에는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업 사례와 학자의 인터뷰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보고가 그렇듯, 실현 가능성 보다는 도전정신과 의지치를 담아, 저명한 해외 대학 교수 및 학자들을 인터뷰 후보로 추려서 부서장에게 보고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이름이 적힌 목록을 보며 부서장은 대뜸 한마디를 툭 던졌다.

유발 하라리? 이 사람 게이잖아. 목록에서 빼.


문제적 발언을 공적인 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한다는 것도, 인류의 지난 역사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통찰을 담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세 권이나 출판하고도 생의 업적보다 성 정체성이 먼저 거론되는 현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내가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A였다. 'A가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A의 남친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을지 모를 그 자리의 누군가를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비록 내 목소리는 아무 힘이 없었고, 결국 유발 하라리에게 인터뷰 요청 메일조차 보내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동성애자가 있었다면 나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길 바다.


유발 하라리의 대표 저서


동료 B와 함께 해외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일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는 프라하에 사는 동료 한 명과, 그날 처음 만나는 외국인 동료 몇이 함께하는 캐주얼한 저녁식사 자리였다. 프라하 동료와는 6개월 만의 만남인지라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최근 프라하에서 대규모 퀴어 축제가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거리가 그렇게 북적인 것은 처음이었다며, 본인이 찍은 근사한 사진들을 보여줬다.

매년 8월 개최되는 Prague Pride Festival (사진: News Prague)


모두가 사진 속 인파와 화려한 복장에 감탄하고 있는데 한국인 동료 B가 이런 말을 했다.

 I don't agree with this.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그건 우리가 동의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와 논쟁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무슨 투철한 신념을 지닌 사회운동가도 아니면서. '그저 그 자리의 누군가가 무신경한 저 말 한마디에 상처받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나서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이태원 참사 보도에 대한 외신과 국내 언론의 보도 방식을 비교한 기사를 보면서, 동성애자 친구가 생긴 후 동성애 혐오 표현에 민감해진 나의 변화를 떠올렸다.


기사의 요지는, 외신은 피해자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생존자들과의 실명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들이 그곳에 간 이유나 사정을 깊이 있게 취재한 반면, 국내 언론의 대부분은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하며 자극적인 현장 사진과 SNS 루머나 반응을 퍼 나르기 바빴다는 것이다.


(기사 원문 발췌)
뉴욕타임스(NYT)는 현장 소식을 전하며 김서정, 정솔, 베네딕트 만라파즈, 자넬 스토리, 아하메드, 세틴카야 등 실명 취재원을 사용했다. 각각의 취재원은 짧게 소비되지 않고 최대한 자세하게 경험을 전하고 있었다. 10개가 넘는 기사 중 CNN이 사용한 익명 취재원은 1명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필라테스 강사 김지애 씨와 대학생 이태훈 씨를, 워싱턴포스트(WP)는 장주아 씨를 실명으로 기사에 실었다. 현장 목격담을 전하는 취재원 중 ‘익명’은 없었다.
이모씨, 김모씨 등 익명 취재원을 사용한 한국 언론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한국에선 유명인의 사망 소식이 화제에 올랐다. 일반인 피해자의 사망 소식은 익명으로 처리됐다.


기사에 취재원의 실명과 익명 여부가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참사를 겪은 익명의 피해자들은 인터넷상에서 너무도 쉽게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모욕죄는 '그 사람임을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특정성'을 성립 요건으로 한다. 성 소수자, 성별, 인종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 속 혐오 표현에는 특정성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법상 죄가 아니다. 하지만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혐오 난사는 무작위로, 무수한 상처를 입힌다.


만약 언론이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의 사정을 모두가 헤아릴 수 있도록 공유했다면 어땠을까?

내 주변의 어느 누구라도 참사의 피해자 또는 혐오의 무작위적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우리는 지금과 똑같은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관계를 맺고 각자의 사정에 귀 기울 때

이름 모를 꽃을 쉽게 꺾어대던 손도 멈칫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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