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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 Jun 02. 2022

1. 우리집은 어디일까요

진짜 "나의 집"에 대한 고민

선릉역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을 할 때마다 지하철 2호선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그렇게 콩나물시루의 콩나물들처럼 몸을 꼬고 어색하게 서서 가고 있노라면 시선을 둘 곳은 창밖 밖에 없었다. 지상으로 가는 2호선의 창밖 풍경은 나름대로 볼 만했다. 아침에 떠오르는 황금색 햇빛에 온갖 아파트들의 창문들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은 좀 아름답지 않은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저 많은 집들 중 "나의 집"은 없었다. 

(출처 : unsplash)

집. 보금자리. 하지만 진짜 내 집은 없는 청춘들. 어렸을 때는 부모님 집이 우리 집이고, 사회에 나와서는 남의 집을 빌려 산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나면 부모님 집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다들 성인이 되고 나면 부모의 그늘을 떠나 살아보고 싶어 하니까. 나는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통학 시간이 왕복 4시간이 걸려 힘들다는 이유로 자취를 시작했고 그게 내가 해 본 첫 "남의 집" 살이었다. 

내가 지냈던 대학교 후문의 원룸촌
아직도 있는 후문 게시판(출처 : 래디안 기사 http://www.redian.org/archive/123744)

집을 구하는 방법도 몰라 무턱대고 학교 후문 게시판에 붙은 '빈 방 있어요'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집을 구했다. 혼자 둘러보는 건 불안해서 조금이라도 나보다 더 경험 있는 선배의 식견에 도움을 받고자 동행을 부탁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배가 아닌 전문가, 즉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갔어야 했다. 하필이면 우리 학교는 웬만한 대학들이 그렇듯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대학생들의 자취방들이 모여있는 원룸 빌라촌도 산 중턱에 있었다. 그렇게 산행인지 동네 언덕인지 모를 가파른 언덕의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빌라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있는 그 공간은 내 생애 살아본 최악의 집이었다. 

이 집은 세면대라도 있지...(출처 : unsplash)

바퀴벌레와 거미가 득실거리고 화장실은 단열재 하나 없이 벽돌로만 쌓아 한겨울이면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춥고, 세면대조차 없었다. 뜨거운 물이 안 나올 때는 물을 끓여서 썼고, 집에서도 써본 적 없는 빨간 고무 다라이를 사서 세수를 하며,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싶었다. 수납 가구는커녕 신발장조차 없었고, 오래된 냉장고 한 개와 통돌이 세탁기, 더러운 가스레인지 한 개가 그 집에 설치된 전부였다. 현관문은 열쇠로 열고 잠그는 철문이었는데 누군가가 맘만 먹으면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최악은 꼭대기 층에 집주인이 살고 있어 항상 감시당해야 했고, 월세는 관리비 별도로 40만 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곳에서 일 년을 지냈는지 모르겠다. 지금 다시 거기서 살라고 하면 차라리 감방을 가겠다고 할 것 같다. 


지옥 같은 일 년을 버텨내고 방을 빼는 날, 내가 수업에 들어가고 없을 때 집주인 부부가 말도 없이 들어와 짐들을 집 밖 땅바닥에 던져두고 내 청소기로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심지어 청소기도 가지고 가려고 해서 내 것이라고 말하면서 뺏자 그제야 자기 것인 줄 알았다는 집주인 부부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집은 그렇게 구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몸으로 겪고 나서야 알았다. 아마 이때부터 집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던 것 같다. 화장실엔 꼭 세면대가 있어야 하고, 냉난방은 필수이고, 벌레가 없으며, 이왕이면 경비실이 있어 안전한 공동주택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월세살이를 전전하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월세 만기가 올 때마다 어디로 옮길까를 고민했지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계획이나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당연히 월급은 월세와 생활비로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 모아둔 돈도 없었다.


그런 내가 진지하게 "내 집"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회사동료로 만난 남자 친구와 연애를 하면서이다. 우리는 악수를 하며 서로의 인생을 M&A 하기로 했고, 결혼을 하려면 "우리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당시 남자 친구는 신림 골목 언덕길에 있는 빌라의 반지하방에 반전세로 지내고 있었는데 집의 반은 무서울 정도로 흉한 검은색 곰팡이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런 데서 지내다간 사람 잡겠구나 싶어 결혼하면서 남자 친구가 내가 사는 오피스텔 원룸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다. 혼자 살 땐 휑할 정도로 짐이 없던 원룸이 남편과 남편이 키우는 고양이가 들어오자 터져나갈 듯이 꽉 찼다. 공간의 부족으로 인해 숨이 막힌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고양이 털이 얹어진 밥을 먹으면서 그렇게 나는 재테크와 내 집 마련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귀여운 거 하나로 먹고사는 우리 집 털 부자 냥이..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두 청년이 만나 집을 마련하는데 성공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혼 한지 6년 만에 나는 내가 원하던 "우리 집" 마련에 성공했다. 지금은 깨끗하고 쾌적한 신도시의 38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지금의 안정적인 환경을 위해 나는 "우리 집"을 마련하기 위해 매우 계획적으로 생활했고, 그 과정 또한 결코 쉽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다시 처음부터 집을 구한다면 또 다른 방법들이 있겠구나 하고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요즘 시대에는 흔할 수 있는 자가마련기 이지만 내 나름대로 어떻게 "내가 원하던 집"을 구체화시켜왔는지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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