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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 Aug 26. 2022

5. 발이 아파야 집이 보인다

꿈에 그리던 나의 집 찾기

처음엔 5년 이면 시간 충분하지, 5년 언제가냐 이렇게 생각했는데, 5년 동안 재테크에 눈을 불태우며 시간 참 안간다고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짧을 수가 없다. 이제 5년 째의 마지막 겨울이 왔고, 나는 다행스럽게도 목표한 만큼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 가족이 안전하게,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좋은 집을 구해야한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좋은 곳으로 가야한다. 그걸 위해 지금 집을 디딤돌 삼아 매매한 거였으니까.


5년 동안 수시로 송도에 있는 아파트 단지들의 호가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실거래가를 줄줄 외울 정도로 들여다 봤다. 내가 이사를 하기로 한 시점은 이미 부동산이 오르기 시작한 때라 내가 생각했던 예산보다 1억 정도가 더 오른 상태였다. 그걸 보며 나는 이사를 해야하는 때가 왔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이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지호엄마와 놀이터에서 만나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부동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살던 엄마들 다 이사갔잖아요~ 자기는 이사 안갈거지?"

"어..저도 이사 갈거에요. 애초에 이사갈 생각하고 여기로 온거라.."

"진짜? 어디로?"

"송도요."

"거기 요즘 많이 오르지 않았어요?"

"그래도 저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눴다. 지호엄마는 아이가 둘이 있는데 이사올 때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도배 장판만 하고 들어와서 집이 낡아 고민이었다. 지호엄마는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는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호엄마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사 가고 싶으면 지금부터 알아보는게 좋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이 때가 2020년 여름이었다. 


위의 대화로 알겠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그 동네 대장 아파트이지만 소형 평수라 들고 나는 손바뀜이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아파트였다. 이는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점이다. 언제든 세입자를 구할 수 있고, 매물을 내놔도 금방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실거주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주민이 자주 바뀌어 장기수선을 해야하는 시설 관리에 돈을 들이기 어렵고, 이웃에 대해 알기 어려워 단지 단합이 안된다는 단점도 있었다. 특히 30년이 가까워지는 건물 나이는 살아볼수록 큰 단점이었다. 내가 이사를 서두르게 된 계기도 이것 때문에 엘레베이터에서 아이가 크게 다칠 뻔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름부터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다행히 친정이 송도였기 때문에 친정에 갈 때마다 부동산을 둘러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송도에서 살았었다. 부모님이 2008년도에 분양을 받아 송도로 오셨었고, 그 때부터 송도에 살았기 때문에 이 곳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유학을 하며, 취직을 하며, 결혼을 하며 다른 곳에 둥지를 틀었다가 다시 송도를 택한 이유는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 갈 수 있는 곳들 중에 이곳만큼 아이가 자라기에 좋은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파트를 매매하는 사람들은 입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신축인지 여부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특히 요즘 짓는 아파트들의 커뮤니티 시설만 봐도 눈이 돌아간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좋은 곳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그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는 총알은 없었다. 그렇다고 신축의 좁은 평수의 아파트를 들어가는 것도 나에겐 선택지가 아니었다. 육아를 하며 아이의 짐은 부부의 짐을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unsplash

첫 집을 매매했을 때 처럼 나에게 중요한 것은 1.구축이어서 신축보다 값이 저렴할 것 2.입지가 좋을 것 이 두 가지였다. 특히 남편이 서울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역세권이어야 했다. 역이 도보로 5분 이내인 곳은 송도에서도 4군데 정도 밖에 없다. 그 중 우리 예산에 드는 곳은 두 군데였다. 그 다음으로 내가 본 것은 도보로 5분 이내에 초,중학교, 공원이 있는가 였다. 마트나 쇼핑몰이야 차 타고 나가도 되지만 학교와 공원은 안전 걱정없이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좁혀보니 한 곳으로 좁혀졌다.  


인근 부동산을 찾아가 처음 이 아파트 단지의 매물을 보았을 때는 암담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매물이 없었다. 입지가 좋은 곳이다 보니 매물로 내놓은 집이 적었고, 맘에 드는 집도 없었다. 임장을 할 때 마다 신기한게 집이란 공간에는 그 곳에 사는 사람에 따라 어떤 기운 같은게 생기는 것 같다. 같은 구조의 집을 봐도 뭔가 어둡고 답답한 느낌이 드는 집이 있는가 하면, 멀쩡하고 깔끔한데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집이 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부동산 몇 군데를 돌아봤지만 딱히 성과는 없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집도 인연이 있으면 나랑 맞는 집을 찾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꾸준히 부동산을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상가를 지나다가 우리집은 언제 구하나 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부동산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엄마는 내 하소연이 지겨우셨는지 그럼 여기 들어가보자고 잡아끄셔서 예정에도 없이 부동산을 가게 되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신 여자 중개사님이 우릴 맞아주셨는데 딱 좋은 매물이 있다고 해서 당장 보러 갔다. 이 매물은 필로티 층이었는데 집주인이 몇 년 전 분양권에 당첨된 바람에 지금 일시적 2주택자가 되어 구축인 이곳을 팔고 입주를 하려고 내놓은 급매물이었다. 몇 번 거래가 성사될 뻔 하다가 안돼서 집주인도 맘이 급한 모양이었다.


내가 원하던 38평의 방 4개 화장실 2개짜리 매물이었다. 한 층에 3세대가 살고 있는데 다른 세대는 마주보고 있는 반면, 이 집은 단독이라 집 앞 복도가 넒고 환했다. 현관문을 열어놔도 시선간섭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필로티 층이라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있는 우리에겐 메리트가 있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보니 체리색의 몰딩과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정처럼 이곳도 분양 이후로 인테리어를 거의 안한 그대로의 집이었다.

그래..! 바로 여기야!! 이런 느낌적인 느낌 @unsplash

참 희한한게 그 전에 다른 동의 비슷한 곳을 몇 번을 가봤어도 심드렁했는데 거실에 들어서니 바로 이집이다 라는 느낌이 왔다. 거실에 덧창이 있음에도 햇볕이 잘 들어 밝았고, 넓은 창문 앞에는 나무와 단지 안의 조경이 잘 보여 작은 정원이 있는 듯 했다. 답답한 옛날식 구조와 체리색 몰딩은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또 다 털어내고 다시 리모델링을 할거니까. 같은 평수의 다른 매물보다 2천만원이 더 저렴한 이 매물을 사야할까, 아님 좀 더 둘러봐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 중에 중개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방금 다른 부동산에서도 이 곳을 보여주고 갔다고, 맘에 들면 지금 계약금만이라도 걸어놓으라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당장 집을 계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서 자산을 현금화 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집 구하러 다닌다면서 이렇게 준비성이 없을 수가 있을까. 당장 몇백만원이라도 현금화를 하려면 2~3일은 걸린다. 인연이면 저랑 계약이 되겠죠~ 안되면 할 수 없구요~ 라며 허허 웃는 나보다 더 애타셨는지 중개사님은 자기 돈을 빌려줄테니 그럼 그걸로 계약금을 넣자고 하셨다. 그 동안 월세거래도 몇 번 해보고 매매도 해봤지만 자기 돈을 빌려준다는 중개사는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계약을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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