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고 1년
사랑했던 남편이 미워졌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수없이 이야기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지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화가 났다는 표현 아래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감정 하나, 공감을 바랐다
내가 느끼는 힘듦과 고단함, 기쁨을 같이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공감을 얻을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공감을 100퍼센트 얻을 수는 없다
남편과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끊임없이 원했다
남편과 남은 엄연히 남이고 다른 사람인 걸 인정하고 평화를 얻었다
감정 둘, 서운함과 그리움.
나를 조금 더 봐줬으면 했다
아이가 너무 울어 아기띠로 안아서 재우던 시절.
수면잠옷 이외에는 다른 옷을 입을 겨를도
씻는 것도 겨우 하던 시절.
남편이 운동을 하고 말갛고
에너지가 가득해서 돌아왔다.
늘 그렇듯 원래 오기로 한 시간보다 항상 10분 늦게.
당시에는 서러워서 눈물이 흘렀다.
운동으로 스트레스 푸는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남편이 미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건 서운함과 그리움이었다.
나를 좀 더 봐줬으면,
내 감정을 조금 더 들여다 봐줬으면
나와 이야기를 나눴으면 했다.
감정 셋, 질투였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나도 회식이 싶었다.
나도 육아에서 오롯이 분리되는 순간이 있고 싶었다.
도망갈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내 세계가 하나로 좁아질 때 너의 세계가 그대로라는 거에 대한
치졸하지만 솔직히, 질투였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주양육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100% 공감하기 어렵다.
서로의 육아관이 맞지 않아도
100%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니까.
부부는 하나가 아니다
서로의 길을 응원해 주는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