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여름 Jun 23. 2024

배려의 경계를 넘어서

나의 허용이 문제였습니다.


나의 허용이 상대의 경계를 규정짓는다.    

 

"허용적"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에 대해 관대하거나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교사가 학생에게 허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학생의 행동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고 어느 정도 자유를 주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부터 나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편함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베풀었던 배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의 권리로 변질하여 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엔 아주 작은 호의에서 시작된 배려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당연시되고, 더 나아가 요구로 이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친절해지고 싶었다. 그가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고, 그의 어려움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나의 배려를 자신의 권리로 여기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면, 그는 실망하거나 불만을 표출했다. 그의 오만함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고, 나의 너그러움은 그를 오해하게 했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은 어쩌면 나의 책임이기도 했다. 나의 지나친 허용이 그의 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누군가에 대한 나의 배려를 권리로 오인하도록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게 해를 끼쳤다.

돌이켜보면 분명한 경계설정이 필요할 때에도 어쩌면 나의 행동이 흐지부지했을 것이다. 불편하고 귀찮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불편해질 바에 내가 하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가 틀을 만들어 놓고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깨고 나와야 할 일이다. 분명 나의 잘못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오만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배려는 기본적으로 상호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을 자신의 권리로 착각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태도다. 그들은 나의 배려를 진심으로 감사하기보다는, 그것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습관을 들였다. 당하고 나서야 느낀 나의 우둔함도 크지만 지금에서 생각해도 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배려는 조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요구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들과의 관계에서 명확한 선을 그을 것이다. 나의 배려가 그들의 권리가 되지 않도록, 나의 너그러움이 나의 의무로 변질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제 나는 배려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한다. 그것은 상호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인간관계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오만함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내 배려는 내 선택이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가 아니다.  

    

 나는 편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긴 시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인 지혜로움이란 게 어쩌면  부딪히지 않아서 오는 안정이 아니었을까? 센 사람은 피하고, 피하지 못할 바에는 맞춰주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지금에야 이르렀을까?     




앞으로는 나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나의 배려가 그들의 권리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베푸는 배려가 그들에게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상호 존중과 감사의 마음이 담긴 관계 속에서, 나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지키며,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준비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이것도 독서일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