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받기만 하던 내가 이제는 도움을 줘야한다.
햇수로 직장생활 8년차, 개발은 6년차가 되던 해에 후임이 들어왔다. 그말인 즉슨, 내가 누군가의 사수가 된다는 것이었다. 사수다운 사수를 만난것도 지금 여기가 처음이고 후임을 맞이하는 것도 여기가 처음인데 당황스러웠다. 대체 내가 뭘 챙겨줘야하는 거지?
내 후임은 SCM을 개발하던 개발자라고 했다. SCM을 개발하다가 앱 개발자로 입사했으니 생소하고 헷갈릴게 많을 텐데 내가 챙겨줄 수 있는 부분이 뭔지 감이 안잡혔다. 우리회사엔 후임을 포함해서 앱 개발자가 세명이라 자연스럽게 개발 우선순위에 따라서 일을 배분하게 되었다. 후임이 앱 개발보다 다른 업무를 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때즈음 내가 물어봤다. '앱 개발 안해서 현타올때 있죠?' 라고. 후임은 머뭇대다가 '그렇긴해요.'고 했다.
그래도 후임이 완전히 신입은 아니니까 어느정도 안다는 전제하에 대했다. 거기서부터 오류가 발생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어느정도 아니까'라고 생각했던 어느정도가 우리 서비스의 레거시까지 포함시키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회사 스타일상 기획을 급하게 주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다보니 기존 정책과 충돌하는 기능들이 나오는 건 문제도 아니였다.(기획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나 사수는 서비스 오픈때부터있었으니 오류를 지적하거나 아니면 오류를 우회하게끔 구두논의 후 기능을 개발하곤 했다.
하지만 후임은 우리코드가 레거시 천지 + 정책적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테스트로 넘길때가 되어서야 발견한 적도 있었다. 그런 순간이 올때마다 '이걸 내가 이제서야 발견하면 안되는데' 하는 나와 '아.. 이렇게 하면 안되는 구나...'하는 후임의 부정적인 순간들이 쌓여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내가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나서야 깨달았다. 후임은 생각보다 나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고 내가 정확하고 제대로 설명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변명이지만 내가 체력이 딸리기 시작하면서 예민해지고 대충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 여파를 사수와 후임이 나눠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후임을 챙기는 것과 별개로 나 먼저 나아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회사는 항상 급박하게 요청오고 급박하게 처리하는 데 이렇게 되면 언제 내가 나아지고 언제 후임을 챙길 것인가.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신경을 쪼개서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후임의 일정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디자이너나 서버개발자에게 요청해서 처리해야하는 것들을 쉽사리 말하지 못해서 딜레이되고 있을까봐 했던 것이었다.
그 다음에 시도한 것은 일이 없어서 멍때리지 않게 자잘한 것들을 넘겼다.
개발자인데 개발이 아닌 일을 하는 것에 현타가 오는 것은 둘째치고 일을 하지 않아서 하루가 너무 길어질까봐 그래서 회사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질까봐 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자잘한 잡무부터 시작해서 아주 간단한 버그 수정건들을 후임에게 반복적으로 넘겼다. (물론 나도 놀지 않았다!)
간단한 스몰토크를 진-짜 가끔 시도했다.
이건 후임이 나랑 겹치는 취향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긴 한데, ㅇㅇ님 이거 봤어요?????? 하면서 간간히 스몰토크를 했다. 업무상 일만 하다보면 지치는 순간들이 오니까 지치는 순간이 올때 그냥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대체로 이야기하는 주제가 같이 좋아하는 인디뮤지션 얘기, 컨퍼런스 일정 이야기, Flutter 업데이트 소식 얘기 이런 것들 뿐이다.)
아직 나도 많이 미흡한 사람인데 후임한테 더 신경을 못 써주는 게 미안해서 야금야금 고민해서 나온 결과지만, 더 많은 것들을 챙겨주고 배울 수 있게 나도 신경써야한다는 것을 매우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