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빵, 슈톨렌
도대체 OOO이 누구야?
누군가 보내온 택배 때문에 난리가 났다. 마치 산타 클로스가 몰래 두고 간 선물처럼 현관 밖에 종이 박스가 놓여 있었다. 안에는 하얀 쇼핑백과 함께 다시 자그마한 상자가 들어 있었고 왠지 심상치 않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푸니 그 안에서 하얀 모조지에 싸인 타원형 빵 같은 것이 나왔다.
남자 손 크기 만한 길쭉한 덩어리는 뭉툭하고 딱딱한데 하얀 슈가 파우더를 눈처럼 뒤집어썼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가루가 분분히 날리는 바람에 먹기도 쉽지 않게 생겼다.
도대체 이게 뭐지? 누가 보낸 거야?
수취인은 엄마로 되어 있는데 발송인 이름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누군가 제과점을 통해 배송한 것 같은데 핸드폰 번호조차 일부는 가려져 있어 연락할 도리도 없었다. 분명 크리스마스를 맞아 보내온 것 같은데 미스터리한 선물이었다. 심지어 이것이 빵인지 혹은 과자는 아닌지 낯선 모양새가 혹시 물 건너온 것인지 정체불명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전에 어디선가 이것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슈톨렌!”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갑자기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그 단어가 떠올랐다. 작년이었던가, 아니면 재작년에도 이런 빵이 도착했었다. 부모님이 한번 맛보곤 퍽퍽하다며 치워 버린 것을 꿋꿋이 설탕 가루를 날리며 내가 홀로 끝장을 냈었다.
나는 이건 슈톨렌이라는 성탄절 기념 빵이라며 독일에서 유래했다는, 인터넷에서 찾은 설명을 부모님에게 들려주기까지 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때 슈톨렌을 보내준 분이 이번에도 선물을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엄마는 그제야 실마리를 찾았는지 수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몇 년 전 기억까지 소환해 냈다. ‘그분’은 수년 전, 슈니발렌을 선물해 준 분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 한때 망치로 깨먹는 딱딱한 독일 과자 슈니발렌이 유행했을 때였다. 별로 맛이 있지는 않았지만, 망치가 동봉된 색색의 슈니발렌을 받고 얼마나 놀라고 즐거웠는지.
결국 선물을 보내준 분은 엄마의 후배로 밝혀졌고 엄마는 그분의 배려에 무척 고마워하셨다. 하지만 그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분은 왜 선물로 독일 과자나 빵을 유독 고집하는 걸까. 독일과 무슨 인연이 있는 분인가. 그저 독일 애호가일까. 혹시 독문학 전공자이거나 독일에 유학한 분인가.
어렸을 때 즐겨 읽던 세계명작 중에 독일 동화집은 유독 먹을거리가 많이 등장했고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 책을 읽으면서 독일 음식에 대한 묘사에 군침을 흘렸고 그래서 삽화에 진심으로 심취했었고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았다.
그분이 선물해 준 슈톨렌 덕분에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를 25일에 잔잔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드리워졌다. 소소한 선물 한 가지로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에 환상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나는 엄마에게 ‘그분’에 대해 자세히 캐묻지 않기로 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분’은 언제나 독일과 관련된 빵과 함께 연상될 것이고 나는 멋대로 멋진 ‘그분’을 상상해 가기로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사물을 보면 떠오르는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