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2021년 10월 12일 오전 11시.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한 지도 2년째. 화상수업을 마친 환이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엄마, 우리 놀이동산 종주 갈까?”
2년 전 내가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초등 2학년이었던 환이는 놀이동산 종주를 꿈꿨다.
“엄마, 자전거만 타면 무슨 재미가 있어? 자전거 타고 전국에 있는 놀이동산 다 가자.”
환이가 3학년이던 2020년 우리는 인천에서 춘천까지 자전거 여행을 시도했었다. 비록 완주는 하지 못했지만, 그 여행을 통해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집에 돌아온 환이는 자신만의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전국 놀이동산을 검색하며 가 볼 만한 놀이동산을 고르기 시작했다. 몇 달의 고민 끝에 선택을 마친 환이는 구글 맵으로 동선을 조사하며 놀이동산 종주 경로를 완성했다. 거실 화이트보드엔 환이의 놀이동산 종주 계획이 적혀있다.
집 → 롯데월드(45km) → 서울랜드(18km) → 한국민속촌(47km) → 에버랜드(20km) → 대구 이월드(290km) → 경주월드(97km) → 통도 환타지아(87km) → 마산 로봇랜드(169km) → 집
화이트보드에 적힌 것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무거웠다.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국토 종주 자전거 여행을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였다. ‘만약 국토 종주 자전거길이 없었다면…, 나는 국토 종주를 꿈꿀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편한 것, 익숙한 것만을 하려 한다. 내 경험이 전부인 양, 유연한 사고와는 거리가 생긴다. 거창하게 자전거 국토 종주를 꿈꿨다고 하지만, 실상은 누군가가 닦아놓은 정해진 편한 길을 따라갈 뿐이다.
아이는 다르다. 정해진 길, 편한 길을 생각하지 않는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빈 도화지에 자신의 꿈을 주저함 없이 그려낸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 할 수 있고 없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는 진정한 꿈을 꾼다.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여행 계획을 세우기가 귀찮다. 20대엔 계획 없이 어디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유럽 배낭여행 중에도 숙소를 정하고 다닌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묵을 곳이 없을까?’하는 걱정에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여행은 숙소 예약이 우선되기 시작했다. 잘 데가 정해져야 마음이 편했다. ‘언제부터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여행에서 숙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아이가 생긴 후였다. 아이를 동반하는 여행은 신경 쓸 일이 많다. 거기에 현지에서 숙소를 찾는 수고까지 하기는 싫었던 것 같다.
여행 가기 며칠 전부터 숙소를 예약하고, 아이들과 먹기 좋은 주변 식당을 검색하고, 아이들과 함께 즐길 곳을 미리 찾는 계획된 여행에 지쳤을 때, 환이와 인천에서 춘천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 2박 3일 동안 숙소, 식당, 놀거리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나는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춘천까지 갈 만큼 커버린 환이와 함께라면 부산도 갈 수 있지 않을까?’
2021년 가을. 나는 20대에 무작정 떠났던 배낭여행처럼 아무 계획 없이 아들과 국토 종주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