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오늘 우리는 충주에서 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숙소에서 나와 아침으로 왕갈비탕을 한 그릇씩 비우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앙성온천지구에 있는 숙소에서 충주 버스터미널까지는 약 30km 거리였다. 이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자니 뭔가 아쉬웠다. 우리는 원래 계획에는 없던 남한강 종주를 마치기로 했다. 남한강 종주 코스의 마지막엔 충주댐 인증센터가 있는데, 그곳은 국토 종주 자전거길에서 6.5km 벗어나 있었다. 목행교를 기점으로 국토 종주 방향과 남한강 종주 방향은 갈렸다.
“아들, 우리는 탄금대 공원이 아니라 충주댐 방향으로 가는 거야. 충주댐 갔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와야 해.”
“그럼, 우리 탄금대 공원 지나가?”
“응. 버스 터미널로 가려면 탄금대 공원 지나가야 해.”
“집에 가는 버스는 몇 시야?”
“2시, 3시 30분, 5시, 7시.”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구만! 라바 랜드는 놀이동산 종주에서 뺐는데, 할 수 없이 가줘야겠네. 바이킹, 오케이?”
바이킹을 타겠다는 목표가 생겨서 그런지 페달을 구르는 환이의 발이 가볍게 느껴졌다.
목행교에서 6.5km를 달려 우리는 충주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인증 도장을 찍고 나니, 뿌듯했다. 북한강과 남한강 종주를 마친 것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충주 버스터미널을 향했다.
충주는 몇 년 전 남편이 일할 때 와 본 낯설지 않은 도시였다. 탄금대 공원에는 ‘라바 랜드’가 있었다. ‘라바 랜드’는 작은 규모지만 바이킹, 범퍼카, 기차, 관람차, 실내 놀이터 등이 있어 초등학생이 즐기기 좋은 놀이동산이다. 환이가 이곳을 놀이동산 종주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는 바이킹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목행교를 지나는데 예전에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장소라도 누군가의 추억이 쌓이면 특별한 곳이 된다. 지금 이곳이 그랬다. 충주에서 남편이 일하는 동안 묵었던 숙소는 주말에 몇 번 와본 게 다였지만, 한방에서 복작대며 주말을 보낸 가족의 추억이 있는 장소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엄마, 뭐 해? 빨리 와!”
환이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야 하는 때 아이가 호응하지 않으면 울화통이 치밀 때가 있다. ‘에잇, 너도 당해봐라!’라는 심보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슬금슬금 올라왔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 직접 체험이 훨씬 효과적이다. ‘어디, 심통 한 번 부려볼까?’ 생각했는데, ‘에이, 알만한 어른이 왜 이래?’라며, 화창한 가을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나를 타일렀다. 전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다 큰 어른도 가끔은 심통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걸.
라바 랜드의 바이킹이 보였다.
“에이! 코로나로 문 닫았네.”
여기서 좀 놀아보겠다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결과가 허무했다.
3시 30분쯤 충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외부 거치대에 자전거를 묶었다. 5시 버스를 예약하고 뭘 하면 좋을까 둘러보는데, 같은 건물에 토이저러스가 있었다.
“아들, 토이저러스에서 오랜만에 장난감이나 구경할까?”
“별론데, 할 거 없으니 가지 뭐.”
진열대를 꽉꽉 채운 장난감을 보며 물었다.
“아들, 갖고 싶은 거 있어?”
“여긴 내가 사고 싶은 게 없지. 애들 장난감이잖아.”
“너는 애들 아니야?”
“비싼 쓰레기 사서 뭐 하게? 사면 짐이야. 엄마, 롯데리아에서 감자튀김이나 먹자!”
초등 4학년인 환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기쁘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 감자튀김을 먹고 나니 버스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들, 우리 자전거 여기 두고 갈까? 위에 비를 막아 줄 가림막도 있어 괜찮아 보이는데.”
버스 터미널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두고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가지고 가면 어떻게?”
“아무도 안 가져가. 도둑도 물건 보는 눈이 있거든. 아마 엄마 눈보다 훨씬 정확할걸!”
오만 원짜리 중고 자전거는 아무도 탐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 거치대에 자물쇠를 잘 채우고, 자전거 뒷자리에서 여행 가방을 분리해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집에 도착한 환이는 컴퓨터를 켜고 체험학습 보고서를 여러 장 프린트했다.
“엄마, 체험학습 일주일 더 연장하는 거야!”
자전거 여행 사일 째, 환이의 체험학습 보고서
라바 랜드를 갈 생각으로 거의 쉬지 않고 충주댐을 돌아 탄금대 공원에 도착했다. 라바 랜드 근처에서 노래와 놀이기구 소리가 나지 않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라바 랜드는 리모델링 중이었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라는 노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이킹 하나 타러 온 거지만 고생해서 온 거라 머리가 멍했다. 충주 터미널 2층 롯데마트에서 토이저러스를 구경하고 롯데리아에서 감자튀김을 먹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엄마 핸드폰 배경을 나의 웃긴 사진으로 바꿨다. 내가 밥 먹을 때 엄마가 찍은 사진이었는데, 눈이 흐리멍덩하고 감길랑 말랑 나온 내 사진이 너무 웃겼다.
집에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춰있었다. 5층에 공부방이 있는데 거기 다니는 학생들이 장난치고 갔나 보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11층을 걸어 올라왔다.
“체력이 좋아졌나?”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팔당대교에서 충주댐에 이르는 남한강 종주 완성 - 충주에서 4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