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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칼 Aug 07. 2024

롤러코스터보다 긴장감 넘쳤던 길

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오르막이 있으면 곧 내리막이 나오겠네. 내리막에서 신나게 달려야지!”

환이는 신나게 달릴 내리막을 생각하며, 씩씩하게 오르막을 올랐다. 그러는 동안 날이 저물었다.

“아들, 전조등 하고 후미등 최대로 밝게 켜.”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고갯길을 달리는 건 우리 둘 뿐이었다. ‘이것도 지나면 추억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신나는 음악을 틀고 페달을 밟았다. 드디어 오르막이 끝이 났다. 내려가기 전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지도를 확인했다.


“여기서 2~3km만 가면 숙소가 보일 거야! 숙소 보이면 멈춰. 알았지? 브레이크 잘 잡고 내려가자.”

“야~~ 호!”

환이는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내리막을 달렸다.

“야~~ 호, 엄마 이 길이 롤러코스터보다 재미있네.”

    

띄엄띄엄 있던 가로등이 촘촘히 느껴질 때쯤 수옥 폭포 관광단지 표지판이 보였다.

“아들, 이제 천천히 브레이크 잡으며 내려가자. 조금 더 가면 길옆으로 숙소가 보일 거야!”     

저 앞에 큰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숙소가 아닌가? 숙소라면 저렇게 불빛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없는데?’ 건물 앞에 우리는 자전거를 세웠다. 내가 지도에서 확인했던 곳이었다. 불빛 하나 없는 입구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다시 지도를 봤다. 이곳에서 400~500m 떨어진 곳에 숙소 세 개가 검색됐다.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때까진 별생각 없었다. ‘코로나의 여파가 있겠지만, 관광단지에 우리가 묵을 숙소가 없을까….’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슬쩍 봐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돼 보였다.

      

난감했다.

수안보로 돌아가기엔 신나게 내려온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핸드폰을 열어 지도를 봤다. 여기서 3km쯤 가면 연풍면이란 마을이 있고, 숙소 한 군데가 검색됐다. 연풍면을 넘어가면 바로 문경새재 고갯길이다. 문경새재 길을 이 밤에 넘을 수는 없었다. ‘연풍면의 숙소는 문을 열었을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 3km 앞에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숙소가 있을 거야. 일단 가자.”

환이도 걱정되는지 말수가 줄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어두운 고갯길을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달렸다.

      

저 앞으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지만, 반가웠다. 옛날에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도 산길을 가다 불빛을 발견했을 때 지금의 나만큼이나 반가웠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저 앞에 희미하게 불빛 보이지? 일단 거기에서 멈춰봐.”


불빛이 보이던 곳은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쉼터 겸 매점이었다. 안에는 할아버지 세 분이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근처에 묵을만한 숙소가 있을까요?”

“내리막길로 1~2km 가다 보면 마을이 있는데, 거기에 있어요. 자전거 타면 금방 가요.”

나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이에게 아주머니의 말을 전했다.


“아들, 마을에 숙소 있대.”

조금 전보다 더 어두워진 길이었지만,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엄마, 음악 좀 틀고 갈게.”

환이는 안도하며 게임 음악을 틀고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파이팅!”

어둠 속을 홀로 질주하던 라이더도 사람을 만난 게 반가웠는지 ‘파이팅!’을 외치며 우리를 앞질렀다.


연풍면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내가 알던 마을 풍경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람 사는 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집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조차 보기가 힘들었다. 지도에서 숙소를 찾아보니 가까운 곳에 ‘새재파크’가 검색됐다. 마을 길을 달려 골목으로 들어가니 ‘새재파크’ 간판이 보였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간판이었다.

‘오래된 여관으로 보이는데…. 여기 괜찮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잘 데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왠지 이곳엔 선뜻 발을 들이기가 어려웠다. 내 고민을 안다는 듯 2층에서 아저씨 한 분이 계단으로 내려와서 이야기했다.

“자전거는 이쪽으로 두고 올라오면 됩니다.”


“우리 다른 곳을 찾아볼까?”

“엄마, 그냥 들어가자. 이런 데서 자보는 것도 추억이야.”

     

연풍면에 들어오니 자기 동네라고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이 많았다. 환이는 개를 무서워한다. 목줄을 메고 있는 개도 무섭다고 내 뒤에 숨거나 개가 없는 다른 길로 빙 돌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환이가 마을 골목으로 다시 나가려면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엄마, 여기 생각보다 괜찮은데, 여긴 얼마야?”

환이는 여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엄마,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어디 가는데?”

“요 앞에.”


숙소 2층에 있는 계산대 안쪽에는 큰 레트리버가 있었다. 자기를 보고 짖지도 않고, 가까이 오지도 않은 채 꼬리를 흔들며 앉아 있는 레트리버의 모습이 환이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왕자님, 우리 순이 보러 왔어? 안으로 들어와!”

주인아주머니는 레트리버를 보러 온 환이에게 들어와서 보라고 했다.

“그냥 여기서 볼게요. 문 열면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계산할 때 환이에게 관심을 보였던 레트리버는 이제 관심 없다는 듯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배려로 환이는 문밖에서 레트리버를 쓰다듬어 보고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봤어? 엄청 커다란 개? 내가 만져봤어. 진짜로. 여행 다니며 별별 체험을 다 해보네.”

    

기대했던 넓고 깨끗한 방에 온천수가 콸콸 쏟아지는 숙소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 이곳은 우리에게 최고의 보금자리였다. 레트리버 한 마리로 인해 색다른 경험을 한 환이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

     

여행을 시작할 땐 천천히 무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조금 더 가겠다고 욕심을 내다 큰일 날 뻔했다.     

‘초등 4학년 때 지도 보는 법을 배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어! 지도에 왜 등고선을 표시하는지 오늘 알았네!’ 초등학교 공부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실감한 하루였다. 이날 이후 나는 여행할 때 일반지도와 지형지도를 함께 보기 시작했다.

    

“내일 이화령고개를 넘어가려면 일찍 자야겠네. 엄마도 일찍 자.”

환이는 체험학습 보고서를 쓰자마자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자전거 여행 오일 째, 환이의 체험학습 보고서


국토 종주를 다시 떠나는 날이다. 9시쯤 아빠가 인천 버스터미널로 태워다 줬다. 두 시간 삼십 분이 걸려 충주에 도착했다. 자전거는 잘 있었다. 초반에는 길을 헤맸지만, 나중에는 잘 찾아갔다. 점심 겸 저녁으로 꿩만두 전골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아직 이화령고개를 가지도 않았는데 이화령고개보다는 높이가 낮겠지만 끝도 없는 오르막이 펼쳐졌다. 내려가는 길도 엄청나게 길었다. 우리는 위기에 봉착했다. 묵으려고 한 숙소 4개가 모두 문을 닫았다. 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 가서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모텔이 있다고 했다. 숙소에 오는 길엔 고양이가 아니라 길 강아지가 많았다. 강아지 여러 마리가 전봇대 아래 있는 것도 보았다. 

- 충주에서 괴산까지 4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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