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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칼 Aug 09. 2024

이유 있는 여유

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아침에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앞에 ‘아침 식사합니다.’라고 쓰인 식당이 보였다. 국토 종주에서 가장 힘든 길은 이화령고개를 넘는 것이라고 들었다. 아침은 제대로 먹고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이 괜찮아 보였다.

“아들, 바로 앞에 식당 있으니까 아침 먹고 출발하자.”


우리는 숙소에 짐을 놔두고 식당으로 갔다. 할머니 한 분이 주방에 계시다 주문을 받으러 나오셨다.

“뭘 먹으면 좋을까요?”

“여기 왔으면 다슬기 해장국 한번 먹어봐!”

“네, 다슬기 해장국 한 그릇 주세요. 아이가 먹을만한 다른 건 없을까요?”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가신 할머니는 냉장고를 열어보시더니 환이한테 물었다.

“소고기뭇국 한 그릇 있는데, 고기가 많이 들어가서 맛있을 거야. 줄까?”

“네.”

잠시 기다리니 다슬기 해장국과 소고기뭇국이 나왔다.

“엄마, 국물에 소고기가 반이야. 이 집 음식 잘하네. 다음에 또 와야겠는걸!”

소고기뭇국은 식당 메뉴에는 없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식사하려고 끓여 놓은 것이라고 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가방을 가지러 숙소로 들어가는데, 카운터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카운터 안에는 아주머니 세 분이 커피와 사과를 먹으며 이야기 중이었다.

“아기 엄마, 들어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출발해요. 꼬마야 들어와. 사과 먹고 가.”

마침 커피 한 잔이 생각났었는데….

“아들, 엄마는 커피 마시러 들어간다.”


카운터 안에는 레트리버가 있어 환이는 선뜻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가야, 들어와! 사과 먹어. 우리 순이는 정말 얌전해. 아줌마가 줄로 묶고 잡고 있을게.”

내가 들어갔을 때 순이는 자기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순이에게 목줄을 채우고 바로 옆에서 줄을 가까이 잡은 걸 본 환이는 용기를 냈다.

“아줌마, 순이 꽉 잡으셔야 해요.”

환이의 말에 사과를 드시던 다른 아주머니 한 분도 순이 옆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순이 양옆에 아주머니 두 분이 자리를 잡았다. 용기를 내 안으로 들어서는 환이를 순이는 쓱 쳐다봤다. 그러더니 별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순이가 관심 없어 하자 환이는 용기를 내어 조금씩 조금씩 다가갔다. 아주머니들의 응원에 힘을 내어 환이는 순이를 쓰다듬어 볼 수 있었다.


“아가야, 간식 줘볼래?”

“네, 해볼래요.”

환이가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간식을 손바닥에 올리고 순이 입 가까이에 간식이 있는 손을 내밀었다. 순이가 환이 손바닥 위의 간식을 핥았다. 어느 순간 환이는 순이를 자연스럽게 쓰다듬고 발바닥도 만져보며 개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잊은듯했다.

“엄마, 순이 같은 개는 키울 수 있을 거 같은데. 엄마는 어때?”

“아들아, 개는 주인 닮는다.”     

커피랑 사과를 먹고 우리가 묵었던 방에서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가다가 먹으라며 과자와 호박엿을 싸주셨다.

“다치지 말고 부산까지 완주해! 잘생긴 아들 파이팅!”


아주머니의 응원을 받으며 우리는 국토 종주의 꽃으로 불리는 이화령고개를 향했다. 지도에 있는 등고선대로 4.5km 꾸준한 오르막이다. 어제와는 달리 각오했던 길이라 마음이 편했다.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정상까지 한치의 내리막도 허용하지 않는 길을 묵묵히 올라가며 아래로 펼쳐진 경치를 감상했다.


“엄마, 우리 산꼭대기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거야?”

이화령을 높은 고개로만 생각했지, 산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환이 말을 듣고 보니 4.5km 오르막은 고개가 아니라 산이 맞는 듯했다. 구불구불 차도 옆 자전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슈~웅, 쌔~~ 앵’ 신나게 내려 막을 질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와~아, 내려갈 땐 우리도 신나겠지?”

“당연하지.”

구불구불한 길이라 끝이 보이지 않아 더 길게 느껴졌던 구간이 끝나고 드디어 이화령고개 정상에 올랐다.


“너 대단하다.”

이화령고개 정상에서 친목을 도모하고 있던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환이를 보고 놀라워했다. 20인치 작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온 환이를 보고 대단하다며 아이 양쪽으로 서서 박수로 환영식을 해주셨다. 환이 뒷모습에서 우쭐하는 게 느껴졌다. 뒤를 따라오는 나를 보고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꼬마야, 엄마한테 자전거 좋은 걸로 바꿔 달라고 해! 엄마는 좋은 자전거 타고 있네.”

새재 자전거길과 백두대간 이화령 표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쉬면서 경치를 감상했다.


“꼬마야, 어디까지 갈 거야?”

혼자 국토 종주 중인 아저씨가 심심한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부산까지 가야죠. 아저씨는요?”

최고난도 코스를 통과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붙은 환이는 이유 있는 여유를 즐기며 정상에 올라온 라이더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새재 자전거길, 이화령
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새재 자전거길, 이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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