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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칼 Aug 11. 2024

예상치 못한 여행의 묘미

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이제 조금 있으면 캄캄해질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이 엄마가 예약한 펜션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숙소 예약한 사람인데, 죄송하지만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지금 자전거 여행 중인데…, 아이 자전거가 펑크 나서 갈 수가 없네요. 펜션에서 17km 정도 되는 거리예요. 여기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릴게요.”

“제 차가 승용차라….”

수화기 너머 안타까워하는 말투가 내게로 전해졌다.

“아이 자전거는 20인치라 승용차에 들어갈 거예요. 아이와 아이 자전거만 부탁드릴게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디 계시는지 지도에 표시해 보내주세요.”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모든 근심 걱정을 다 떨쳐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오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내 자전거는 자전거길에 두고 아이 자전거를 도로 근처로 옮겼다. 잘 보이는 곳에 있어야 숙소 주인이 지나치지 않을 것 같았다. 차를 세우기에 어디가 좋을까? 이리저리 살피는데, 환이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히치하이크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환이의 행동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이십 분 후, 반대편에서 오던 승용차가 우리 앞에서 불법 유턴을 하더니 멈췄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있다는데 안 올 수가 없었어요.”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자전거를 뒷좌석에 싣고 아이를 보조석에 태우며 안전띠를 손수 채우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기서 자전거로 펜션까지 오려면 두 시간은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겠죠. 감사합니다. 같이 묵기로 한 지인도 삼십 분이면 펜션에 도착한다고 하네요. 잘 부탁드려요.”

“엄마, 안녕! 조심해서 와!”

환이는 밝은 목소리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조석에 탄 채 출발했다.


‘아이가 출발했으니 이제 실력 발휘를 해볼까?’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는 내내 환이의 속도에 맞추느라 힘껏 달릴 일이 없었는데 지금이 속도를 낼 기회라고 생각됐다. 나는 스피닝을 좀 탔던 실력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17km, 힘껏 달리면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이십 분쯤 달렸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현이 엄마의 전화였다.

“우리가 도착해 보니 아저씨랑 먼저 도착한 환이는 마당에서 잘 놀고 있네요. 지금 환이 만나서 방으로 들어왔으니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와요.”

“네, 고마워요.”

“잠시만요. 아직 끊지 말아요. 오다 보면 자전거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산으로 향하는 구간이 있을 거예요. 낮에 우리도 거기서 한참을 헤맸어요. 그런데 그 길이 맞는 길이에요. 그곳을 통과할 때 어두워서 무서우면 말동무해 줄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전화해요.”


현이 엄마의 전화를 끊고 나는 신나게 달렸다. ‘언제 또 이 길을 이렇게 혼자 땀을 내며 전속력으로 질주해 보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다 보니 저 앞으로 자전거 인증센터 부스가 보였다. 자전거 인증센터에 도착한 나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도장을 찍었다.

“혼자 왔어요? 멋지네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주머니 두 분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중 한 분이 내게 말했다.

“그동안 혼자서 사진도 못 찍었을 텐데 자세 잡아봐요. 내가 찍어줄게.”

이런저런 자세를 잡아보라는 아주머니 덕에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는 다시 출발했다.


지금까지 오는 길이 평탄했기에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는데, 길이 산을 향했다. 아까 현이 엄마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올라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았을 것 같다. ‘현이 엄마가 이 길을 말한 거겠지?’ 자전거길은 가파른 경사로 산 중턱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듯했다. 나는 깜깜한 산길을 자전거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헤매고 있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힘든 게 더 컸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급경사 구간을 자전거를 끌고 가던 중이라 전화를 받지는 않았지만, 핸드폰 화면에 뜬 ‘엄마’라는 두 글자를 보자 힘이 났다. 산 중턱 이후로는 내리막과 평지 길이 이어졌다.


나는 환이와 헤어진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펜션에 도착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요?”

펜션에 도착하니 주인아저씨와 현이 엄마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우리 엄마 군대 나왔잖아요.”

환이는 힘센 엄마를 두어 자랑스럽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현이 엄마는 삼겹살을 굽고, 그 옆에 앉은 현이와 환이는 참새처럼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며칠 동안 엄마랑만 다니다 동네 형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울까? 고기를 다 먹은 아이들은 복층 펜션 계단에 앉아 게임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나니 자전거 생각이 났다. ‘펑크 난 자전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지도에서 수리점 위치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방문을 두드렸다.


“여기서 500m 정도 걸어가면 상주 자전거 박물관이 있어요. 제가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수리하는 곳이 있다고 들은 것 같아서요. 자전거는 거기서 고치고 가면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푹 쉬세요.”

상주 자전거 박물관을 검색해 보니 수리센터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운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밤에 자전거 수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전거 여행 육일 째, 환이의 체험학습 보고서


정말 힘든 날이었다. 오늘 저녁엔 동네 형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아주 힘을 내서 가는 중 도자기 만드는 곳이 있어 도장을 찍어 그릇을 만들었다. 그릇은 할머니께 드릴 것이다. 그리고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인생 처음으로 레트리버에게 간식도 줘보고,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레트리버는 엄청 순둥순둥했다.


그리고 오늘은 돌아온 시련이 또 있다. 왜냐하면 가는 길에 자전거 뒷바퀴에 펑크가 나버렸다. 그런데 숙소는 약 20km가 남아 있고, 근처엔 정비소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 숙소에 픽업을 요청했다. 그렇게 정말 다행히 숙소로 갈 수 있었다. 픽업 나온 아저씨가 자전거 여행 갈 때는 예비 튜브가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 괴산에서 상주까지 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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