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돌아보니 20대에 잘 한일.

그땐 그랬지.

by 몽접

고등학교 기숙사를 떠나 난 달라질 것 없는 대학생활을 했다. 대학도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엄마 아빠는 다행이라고 먼 거리 위주로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대학생활 기숙사는 내게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내 메이트는 웃기게도 서울 사람이었다. 자신이 왜 기숙사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헤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그녀의 사정이고 어쨌든 난 그리 학교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푸르른 3월은 내게 잔인한 3월이었다. 동아리에 가입을 한다고 친구들은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난 이미 마음은 멀리 떠났고 내가 생각한 세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래 학교에서 배운 세상은 뻥이었어'라는 생각이 앞서서 정말 학교 수업이 땡 하면 학교 광장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게 내 일과였다.


내가 가장 많이 본 책은 철학책이었다. 그때 처음 니체를 만났고 니체가 끝나고 이게 어감이 그렇다. 끝났다기보다는 목표치를 채우고 그다음 쇼팬하우어 그렇게 저렇게 철학책을 야금야금 파 먹으면서 난 국문과 보다 철학과 수업에 더 올인을 하게 된다. 철학과 교수님은 내게 전공으로 철학이 어떠냐고 제안을 하셨지만 난 이미 문학을 전공하기로 하고 들어간 거라 학부생에서 만족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과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은 지금 그때의 나를 도른 자에 맑은 광인이었다고 한다.


수업이 다 마치면 미친 듯이 달려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환멸이 있었고 그 환멸에 뒤끝에는 나에 대한 환멸이 있었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넘쳐나서 내 인생에 스승을 찾아서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이 복잡하고 다단한 숙제를 풀어야겠다고 미친 듯이 찾았다. 문제는 나는 책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시절에는 인도여행이 유행이었다. 학부 친구 한 명이 나에게 인도여행을 권했다. 그 친구는 수업에는 참여를 했는데 수업이 끝나면 어디로 가는지 나처럼 참 잘 사라졌다. 알고 보니 집에서 뭔가를 하는 친구였는데 나중에 우리 둘이는 절친으로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우리 둘이라면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고 결론이 났다.


결국 난 1학년 겨울 방학 때 인도를 갔다. 나름 구루를 찾겠다고 갔는데 문제는 집에다 연락을 하지 않고 갔다. 간단하게 생각했다. 많은 구루가 있는 인도에서 갠지스강을 보며 내 인생에 스승은 단번에 찾겠지 했는데 이런 인도에서 에피소드는 지금 생각하면 난 매우 운이 좋았던 편이었고 여자 혼자 다니기 힘들 다부터 여러 여행책을 보고서 같이 간 친구가 남자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렇게 성가신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보름을 있다가 돌아왔는데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친구와 나는 친구들에게 인싸 아닌 인싸가 되어서 인도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은 카레였다. 웃기지만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니까 전통 카레를 먹지 않고 거리 음식을 먹어서 음식이나 기타 즐기는 유흥은 하지 못했고 우리 둘에게는 오직 구루가 목표였기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스승을 찾기에 바빴지만 인도는 그러기에는 너무 자본주의화 되어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허망함과 허탈함에 우리 둘 다 아무 말이 없었고 결국 우리는 각자 해결하는 방식으로 각자도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난 알았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후 부처님과 공자 예수 등 철학에 대한 범주를 넓혔고 일부러 늘어지지 않기 위해 공부 동아리를 많이 가입하고 철저하게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어느 시점이나 어느 일이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은 그때 인도여행이 후회로 남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20대는 후회라는 단어를 더 많이 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때 만약 가지 않았다면 난 언제고 가봤을 것이고 지금도 미련이라는 단어로 남았을 것이다. 유행에 휩쓸려서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인도에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간 것이 더 컸기에 난 후회가 없다.

만약 누군가 20대에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자그마한 일로 인도여행, 이라고 수줍게 이야기할 것 같다. 그래서 난 누군가 어떤 일을 실행을 하면 장단점이 있으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는 결론을 서른에 이르러서야 냈다. 내 안의 스승은 나 스스로 찾고 장점과 단점이 있는 인간이란 원래 부족한 존재이니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들어가라는 , 이렇게 나름 졸렬한 정의를 내리고 나니 마음은 편했고 지금 그때를 생각하니 내 20대는 그냥 똘기로 충만한 고민 많은 학생, 그리고 괜히 어른 이런 단어들로 꽉 찼다. 그래서 '그땐 그랬지'라는 노래를 들으면 괜히 웃음이 난다.


나 역시 친구들과 술을 먹으면 우리는 어른이다, 여자이니 군대는 안 가지만 다를 바 없다. 인생 뭐 있냐 이러고 놀았으니 말이다. 요즘 겨울이라 더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