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딸입니다.
-마중가는 길-
살면서 사람은 마중을 가기도 하고 마중을 받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마중을 많이 받았다. 엄마는 정말 칼 같은 분이셨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늘 바쁘셨고 아빠도 그리 다를 것 없는 삶을 사셨다. 앞전에도 썼지만 비가 온다고 눈이 온다고 학교 앞 정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식을 기다리는 그런 엄마는 아니셨다. 때를 쓰며 엄마 한 번만 오면 안 되냐고 물으면 엄마는 그때마다 "그럼 내가 죽으면 넌 어찌할래?"라고 앙칼지게 이야기하셔서 한 번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알 수 없는 그 이야기가 나는 정말 어쩌면 자식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슬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깬 건 우리 엄마 스스로였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고 아빠는 한동안 시름에 젖어 내가 떠나고 정확히 3일을 방문을 걸어 잠그시고 우셨고 엄마는 참 별난 사람이라고 그렇게 칼칼하게 자식을 키우더니 결국은 울었다며 같이 우셨단다. 난 그 사실을 전화로 듣고서도 믿기지 않아서 정말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대학에서 방학을 하고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리면 귀신처럼 마중을 나와 계셨다. 나는 그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알기에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 기다리는 순간이 참으로 좋다시며 어김없이 기다리고 계셨다. 날이 좋으면 상관없지만 더운 여름이나 아주 추운 겨울에는 괜히 죄송해서 말도 안 하고 집에 가면 엄마는 섭섭해하셨다. 난 이렇게 마중을 받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잊지 못할 마중가는 길이 있다. 때는 고등학교 1학년, 엄마는 평소 위장병이 심해서 평소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으시고 그냥 내과진료를 받으시며 그때그때 약으로 순간을 넘기셨다. 그러다가 쓰러 지셨고 아빠가 발견하시고는 엄마는 119에 실려 가셨다. 검진 결과는 충격적으로 암으로 나왔고 동네 병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지라 엄마와 아빠는 우리에게 잘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는 아는 지인의 연락을 통해서 급하게 대형병원으로 서울행을 하셨다. 그때 당시만 해도 암이라는 그 병은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렇게 되고 보니 나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고, 엄마가 언제라도 내 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검진 결과 엄마는 위암 2기가 못되어 수술을 하시고 항암을 하시게 되었다.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울음바다에 정말이지 이런 삶이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직도 생각나는 건 엄마가 편찮으시고 첫 수술 날짜가 내 2학기 중간고사였다. 하필이면 시험날짜와 겹쳐서 가보지도 못하고 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거의 일주일을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했고 그 주 주말에 그때는 제일 빠른 새마을호를 타고 동생과 엄마를 처음으로 보러 갔다.
코에 호스줄만 3개였다. 자식을 보고서 엄마는 크게 우셨고 아빠는 "왔냐"라는 말씀만 하시고 말없이 손을 잡아 주셨다. 나는 동생을 잘 지킬 테니 무조건 엄마는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와 짧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그렇게 기나긴 싸움을 하고 버틴 엄마가 병원을 퇴원하신 던 그날 난 마중을 갔다.
서울 버스에 몸을 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뻔한 말을 하기에는 너무 담담하다고 할까 봐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더 많이 나와서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결국 도착할 때까지 엄마에게 편지만 쓰고 엄마를 마주했다. 병원에서 옷가지와 기타 짐을 정리하고 아빠와 나오는 엄마를 보고서 난 달려가서 엄마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했던 말이다.
엄마는 엉엉 우셨고 그리고 말씀하셨다. "딸이 있어서 견뎠어"라고 하셨다. 이 세상에 모든 엄마들이 그러시겠지만 자식을 앞에 두고 죽을 수 없어서 이를 몇 번을 물었는지 모른다며 희미하게 웃으시는데 눈물이 나는 걸 참아가며 엄마 손을 잡고서 같이 걸었다. 엄마에 퇴원을 축하하며 "엄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딸이야"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왜?"라고 물으셨고 아직도 기억하는데 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자식 때문에 항암치료를 선택했는데 결국은 나 오래 보려고 하신 거잖아. 그 험한 길을 걸었는데 나는 못난 자식이지만 엄마는 나를 귀히 여기니 세상에서 행복한 딸이지. 그리고 실패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성공해서 내 옆에 있으니 난 더 바랄 게 없어."
엄마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회고를 하시며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들었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왜 학교에 오지 않았냐고 눈도 비도 오는데 남들처럼 정 없이 키웠냐고 그런 모진 말에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병원에서 그 말이 떠올라 후회를 하셨단다. 다시 내가 중학교로 돌아간다면 학교 앞에서 기다릴 거라고 하셨다. 세상 모든 일을 알고 있었더라면 후회라는 단어가 있겠냐고 하셨다. 그렇게 난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마중을 했다.
엄마는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시며 파란 하늘에 쌀쌀한 가을날씨, 그리고 교복을 입고 마중을 나 온 내 딸을 보고서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여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몇 번이나 외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내 앞에 계신 우리 엄마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마중을 받고 마중을 가고 설렘도 있고 기대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인생에 한 페이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