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Apr 08. 2024

 할머니VS외할머니

사랑을 주는 방식이 다른 두분 

나를 사랑해 주시는 두 분은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 생각해 보니 엄마도 할머니댁을 방문할 때와 외할머니댁을 방문할 때가 달랐다. 어릴 때를 회상하면 엄마는 할머니댁을 방문할 때는 뭔가 격식을 따지셨고 항상 고민을 안고 사셨다. 이유는 어리니 몰랐다. 하지만 외할머니댁을 가면 엄마는 늘 옷을 신경을 쓰셨던 것 같다. 가난한 집에서 옷이야 거기서 거기인데 왜 옷에 신경을 쓰셨는지 모르지만 늘 엄마는 내게 "몽접아 엄마 이번에 이 옷 입고 갈 거야 어때?"라고 물으시면 "엄마 그 옷은 지난번에도 입으셨잖아" 하고 말하면 "아 맞다" 하시면서 다시 또 옷을 펼쳐 보이시며 "아이고 옷이 없네" 하셨다. 난 그럼 "엄마 그냥 가"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당신 어머니에게 힘들게 사는 게 보이기 싫으셔서 그렇게 하신 것 같다. 지금 엄마는 좀 다르긴 하시다. 하지만 늘 그 알 수 없는 적정거리라는 게 있다.


나의 경우를 적어보려고 한다. 할머니는 내게 많은 것을 배우라고 하셨다. 여자라면 뭐든지 만능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할머니는 설거지부터 밥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것도 가마솥으로 밥을 시작하는 것으로 쌀에 소중함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시집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덤으로 얹으시며 나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그렇게 난 자연스럽게 명절이 되면 제일 막내가 되어서 설거지를 하고 20대가 되면서 전을 하는 사람으로 격상이 되어서 그때는 또 재료 손질을 하는 법을 배웠고 할머니는 뭐든 직접 만드는 걸 좋아하시고 그렇게 살아오셨던 분이셔서 강정도 직접 하시는 분이라 신기하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옆에서 도와드리면서 만들어지는 그 이상한 기분을 받으면서 많은 걸 받았다. 허리를 필라고 하면 할머니는 아직은 이르다, 하시면서 칼칼하게 말씀하시면서 집중하라고 하셨고 매주를 만드실 때도 여전하셨고 나는 속으로 내가 먹을 거는 사서 먹을 건데 이렇게 배워야 하는가 싶어서 어떨 때는 멍을 하기도 했지만 매의 눈으로 나를 보시면서 "단단하게 봐라" 하시면서 나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시면서 저녁도 나에게 공짜는 없다고 지독하리만큼 알려주셨다. 그 덕분에 지금은 혼자 살면서 잘해 먹고 있다. 역시 할머니의 조기교육이다. 


그럼 우리 외할머니는 어떤가, 외할머니는 좀 다르시다. 일단 간다고 하면 벌써 상에 많은 음식이 있다. 그래서 "할머니 너무 많아"라고 하면 "우리 몽접이는 어릴 때 고등어를 참 좋아했지. 그래서 이 할머니가 좀 구워봤어. 그리고 이건 네가 좋아하는 반찬. 장조림. " 그렇게 시작하는 반찬은 정말 임금님 밥상을 주신다. 나는 괜히 죄송해서 "할머니 그냥 다음에는 라면"이라고 하면 "어디, 그럼 나중에 속 버린다" 하시고는 손수 다 차려주시고 나는 나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배운 내용으로 외할머니께 "할머니 이번에는 제가 해드릴게요"라고 하면 "아니다 아니다, 결혼하면 다 하는 건데 그때 해도 늦지 않다" 하시며 정말 손사래를 치셨다. 엄마는 할머니댁에서는 절대 저녁 전에는 눕지 않으시는데 외할머니댁에 가시면 늘 누워서 "엄마 좋은데요" 하시면서 잠깐 잠을 청하신다. 


외할머니는 가끔 할머니 흉을 보기도 했다. 농담이지만 뼈 있는 농담으로 "시집가면 다 하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하시면서 혀를 차셨고 나는 괜히 눈치가 보여서 "알면 좋은 거지"라고 하면 외할머니는 "나도 시집와서 다 익혔다" 하시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이렇게 봄이 되면 친할머니는 누룽지를 끓이신다. 봄에 마시는 누룽지는 어떤 음료보다 좋다고 직접 만드셔서 온 집에 돌리신다. 그럼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요즘 바쁘나?" 나는 "그렇지"라고 하면 할머니는 꼭 집에 오라고 하셔서 어떻게든 같이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 그렇게 옆에서 불을 넣어서 만든 가마솥 누룽지를 만들어서 하나하나 포장을 해서 우체국에 가서 보내면 할머니는 흐뭇해하시면서 "다들 좋을 거다" 하시는데 나는 허리가 이미 많이 아프다. 그렇게 할머니와 헤어지고 외할머니는 이때즈음에는 화전을 만드신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하신다. "우리 아기 많이 바쁘제?" 나는 "응" 하면 외할머니는 알겠다 하시고는 끊으시고 말씀이 없으시다. 그리고 불현듯 택배가 온다. 그럼 10에 9는 화전이다. 냉동 화전이다. 어떨 때는 외할머니가 직접 올라오시기도 하신다. 정말 고운 화전을 보고서 아까워서 못 먹겠다고 하면 " 어디 그냥 먹어라" 하시면서 내 입에 넣는 모습을 보시고는 흐뭇해하신다.


이렇게 나를 아끼시는 두 분의 과정은 다르다. 나도 안다. 각각의 삶이 달랐고. 과정이 다르다는 걸. 어릴 때는 몰랐다. 할머니는 무서운 분 외할머니는 착한 분 이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두 분의 색깔이 다르니 그냥, 지금은 난 복 많은 손녀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괜히 미소를 띤다.


할머니,외할머니 건강하세요. 

작가의 이전글 인간은 고쳐 쓸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