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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12. 2024

엄마의 러브레터 "난 널 믿는다"

마흔 중반을 넘기며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늘 고비가 있었고 인생은 선택과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작게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문예반 시험도 그랬고 늘 빠듯한 살림에 엄마는 티 나지 않게 키우시려고 정말 열심히 양육하셨다. 사람들은 "참 극성이야,  딸을 저렇게 키우면서..." 


엄마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성애의 끝판왕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엄마는 방목이었다. 그래서 살뜰한 친구 엄마들을 보면서 부러운 적도 잠시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색깔일 수 없듯이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로 사시는 거겠지 했다.


알고 보니 엄마는 정말 정반대로 우리를 양육하셨다.

외할머니는 아들만 3명에 그게 못 마땅하셨다. 그냥 딸이 있었으면 하셔서 대구 팔공산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무조건 딸을 낳게 해달라고 비셔서 엄마를 잉태하시고 무척 기쁘셔서 그때는 이해하기 힘든 소를 잡아서 동네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셨단다.

사람들은 "아니 아들도 아닌 딸인데?"라고 물으면 외할머니는 "아들보다 딸이 낳아요"라고 " 칼 같이 끊으시고 엄마를 정말 아껴 키우셔서 그 부작용으로 엄마는 밥도 한 번 하지 않은 딸에 결혼을 해서 처음에는 엄청 힘드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우리를 방목으로 키우셨다. 뭐든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시고 할 때까지 무조건 반복학습은 기본이었다.


한 번은 라면을 끓이는데 물조절에 실패를 해서 그날 한 끼에 라면 3봉을 날렸음에도 엄마는 묵묵하게 "다시"라는 말씀을 남기고 우리는 천천히 다시 배워서 바로 학습을 해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어쩌면 당신이 자리를 많이 비울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신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내가 정말 힘들 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씀이다.

항상 그랬다.

처음에는 흘려 들었다. 부모가 자식을 믿는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을 했는데 삼십 대가 되면서 인생에 당연한 것은 없고 그게 설령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라도 당연한 것은 없으며 공짜는 없다는 걸 알고서 나는 는 이 말을 들을 때면 숙연해짐과 동시에 감사함에 눈물이 난다.


일이 힘들어 코너에 몰릴 때 혹은 누구라도 꿈꾸는 사직서를 내고 싶어서 가슴에서 칼을 뽑을 때 엄마는 늘 어떤 상황에서도 "난 널 믿는다"라고 하셨다.

국문과를 지원하고 엄마는 아파트 게시판에 버리시는 책이 있으면 506호로 주세요,라고 남겨서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가면 정말 책이 산처럼 책상에 쌓여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딸 도움이 될까?, 혹시 몰라서" 나는 "엄마 이러지 않아도.. 힘드신데"라고 하면 엄마는 "아니지 우리 딸은 문학도인데"라고 하시며 기꺼이 그 힘든 길을 함께 걸어주셨다.


내가 지금까지 두발을 걸으며 두 손을 들어 밥을 먹을 수 있는 이 힘은 그 한 마디 "난 널 믿는다"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난 엄마를 믿는다. 그래서 엄마도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겠지 한다. 


엄마의 러브레터는 내가 어릴 때부터 써 온 일기장에서부터 시작이다. 늘 첨삭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해 주셨고 난 그 재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독후감을 썼고 그렇게 자랐다. 지금 엄마는 전화를 통해 "딸 널 믿어"라고 말씀하신다. 경상도 엄마의 러브레터는 "난 널 믿는다" 내가 받은 최고의 러브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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