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야근은 필수였을 때까 있었다. 지금도 야근이다.
지금은 그 전 직장보다 야근이 적다. 이유는 여기는 그나마 내가 하는 영역에서만 하면 되는데 그 전 직장은 말이 대기업이지 내가 해야 하는 일도 하고 더 플러스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을 하고서 나는 고민을 했다. 박사까지 그냥 한 번에 콜? 하지만 집에서는 교수가 될 수 없다면 직장을 잡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있었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때마침 친구가 전 직장에서 이직을 한다고 해서 같이 노량진에서 공부를 했다.
친구는 전 직장이 대기업이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만날 때마다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늘어났고 결국은 이직을 선택해서 우리는 또 그 끔찍한 공부를 시작했다. 서로서로 격려를 하고 최대한 아껴가며 살았다.
친구와 같은 곳으로 지원을 했기에 우리는 경쟁자이자 동반자였다.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서 공부를 했고 스터디 그룹에도 그렇게 들어갔다. 마지막 최종 합격자에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셨다. 다시는 시험공부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막상 들어가니 힘들었다. 아침 일찍 출근은 상관없는데 연관부서와의 일도 힘들었고 처음이니 이래저래 힘들었다. 그렇게 6개월을 버티니 우리는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이때부터가 헬모드 시작이었다.
"어 몽접, 이번 러시아 통역 부탁해" 난 무역파트도 아닌데 통역을 갑자기 하는 일도 가끔 있었고 내 업무는 남들보다 쌓여갔고 내 사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한 번 해봐"라고 준 업무는 끝이 없었다. 나는 같은 기수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내심 위안을 받으려고 했더니 되려 "야 좋겠다, 그분 실력은 좋잖아. 너 키워주려고 하시나 보다" 돌아온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난 이야기를 줄여가며 거의 말없는 좀비로 살았다.
그리고 난 야근을 밥먹듯이 해서 최장 보름은 기본이었다. 결국 집까지 가기 귀찮아서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잤고 그다음 날은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했지만 매의 눈으로 본 부장님은 "집에 안 갔어?"라고 물으셔서 "아니 집이 멀어서.."라고 대답을 하면 " 야근도 실력이야"라고 하셔서 나는 "네.."라고 했다.
그래 야근이 실력이 될 때즈음 되니 어느덧 3개월 차가 되었고 나도 나름 여유가 생겼다. 그때부터 음악을 들으며 일을 시작했고 난 배테랑이 되어서 야근이라고 하면 조언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내 건강을 잃어갔다. 처음은 체력을 잃었고 그다음은 시력을 잃어갔고 나머지는 삶의 재미를 잃어서 사직을 했다.
야근 이야기를 하면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니 가끔 이야기를 하면 "아니 그렇게 많이?" 하면서 고개를 저으신다.
난 "여기는 뭐.. 거기에 비하면.."이라고 웃으면 다른 분들은 "그러다 훅 갈라" 하시며 윙크를 보내신다.
그래 , 야근도 실력인 그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도 야근은 한다. 하지만 그 실력으로 시간을 단축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주말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한다.
이제 좀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