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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15. 2024

그게 나야.

그때는 그랬어. 당신과 함께 하면 사막에 가서 붕어빵을 팔아도 좋을 것 같았어. 물론 나는 연애도 못했고 안 했던 사람이었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는지 몰라. 당신이 친구로 15년을 함께 해 준 동반자였으니, 늘 내게 충고와 조언을 해주는 요술램프였어. 그래서 그랬을까, 내가 굳이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 그리고 누구를 만나도 내 감정과 생각을 동의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스무 살에 내가 읽는 니체를 이야기하면 그 니체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당신은 달랐잖아.


내 스무 살의 사춘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아마 유일하게 당신이었지.. 그래서 당신은 늘 내게 말했어. 대나무보다 잡초로 살라고 , 난 따졌지. 대나무로 살면서 내 색깔로 살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금방 부러져서 스스로 힘들어져 어느 순간 지치는 순간이 올 테니 그 피로감으로 살기보다는 잡초로 살아서 오래 길게 단 자존감으로 지키며 살면 그런 잡초라면 분명 그 시간은 빛날 테니 잡초를 쉬이 보지 말라고 말이야, 그래 늘 당신은 나보다 한 발 앞서갔지. 그래서 난 그때부터 대나무보다 잡초로 살기로 했지.


오후 6시에 만나 곡주를 마시며 새벽 2시에 헤어지며 내일 다시 만나자며 고향에서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내가 뒷모습을 보였던 건 아마도 내가 해맑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면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당신은 불평했잖아, 왜 늘 뒷모습만 보이냐고.


11월이 되면 그때가 생각나, 결혼하자고 당신이 말했던 그때가.

물론 이제는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

그래서 나에게는 상처로 남은 이야기이지만,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기억을 어떡하겠어.


당신을 잃고 나서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수없이 헤매고 나 자신을 끝까지 코너를 몰아넣었고

나 자신을 죽일 듯이 힘들게 헀어.

그래야 그 시간을 견딜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때 알았어. 당신을 원망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원망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후 난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다시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

사람들은 나에게 다 지난 인연에 뭐 그리 상처를 받냐고 물었지만 내게는 그 지난 10년의 기억이 낙인이 되어 지금도 헤매는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 물으면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되어서

아마 난 할머니가 될 때도 혼자가 돼있겠지.


친구들이 결혼할 때 가끔 부러웠어.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이 자신의 편이 있는 거잖아.

하지만 그 생각도 이제는 하지 않아.

세상은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거니까.


이제는 11월이 되면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기며 한 해를 마무리 지으려고 해. 그래야 조금은 덜 슬플 것 같아.

고마웠어. 당신으로 내 삶은 화려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아.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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