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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 헤드린 Aug 14. 2024

'짝꿍'에 대한 철학적 반성

철학도의 회상록-4

1. 들어가며


초등학생 때 모두들 이성과 같이 짝꿍이 된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각자 성격에 따라 짝꿍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냐에 따라 다양하게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성과 같이 앉는 다는 점이 싫어서 책상과 책상 사이에 선을 그어 놓고, 넘어오면 상대방의 물건이 남에 것이 되게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이성과 서로 죽이지 못한 관계가 되어서 싫은 정이 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저학년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누군가와 싫은 관계가 된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두와 좋게 좋게 가까운 관계를 가지길 원했죠. 이러한 저의 특성은 짝꿍의 관계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저와 짝꿍이 되는 아이와 공생 관계를 가지려고 노려하였습니다. 쉽게 보면 줏대가 없어서 상대방에게 맞추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좋게 보면 모두와 친하게 지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추억, 그러나 자신에게는 특별한 '짝꿍'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2. 짝꿍에 대한 기억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저의 모습은 다른 또래 남자애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동성과 이성의 차이를 늦게 인식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같은 남자아이들과 관계에 있어서 살갑고 친하게 진해려고 노력했고, 이성인 짝꿍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와 짝이 된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학기에 두 번씩 제비를 뽑아서 짝꿍을 교체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남자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와 짝꿍이 되었냐에 따라 싫은 기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경우에는 우는 상황도 있었죠. 당시에는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보다 많았기 때문에 필히 몇명의 남자 아이들은 남자와 같이 앉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남자아이들이 같은 남자와 앉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다소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우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누군가와 짝꿍이 된다는 것은 제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친구가 하나 더 생기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레서 저는 동성과 이성의 구분없이 늘 새로운 짝꿍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다른 남자 아이들은 저를 보고 '여자 아이들하고 말하는 아이'라고 놀렸었습니다. 당시 저는 저를 놀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을 짖꿋게 놀리고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으나, 저는 서스름 없이 여자 아이들하고 같이 어울려 지냈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저를 놀릴 때, 스스로 '내가 다른 남자 아이들과 다르구나'하는 점을 느끼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저와 친한 친구들이 많았고, 저는 성별을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담임 선생님의 지도로 짝꿍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제비를 뽑으면서 각자 누가 누구와 짝꿍이 되었냐를 두고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제비를 뽑게 되었을 때, 모두가 조용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이는 반에서 가장 이쁜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인 저는 한번도 말을 붙여보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저의 번호를 뽑았고, 아이들에게는 알 수 없는 정막이 흘렀습니다. 자리를 이동하고 그 아이는 제 옆 자리로 와서 앉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그 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이전의 짝꿍들에게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저의 짝꿍이 된 그 아이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여자아이가 저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라이벌 여자아이는 제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저희의 사이를 놀렸었습니다. 어떻게 놀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의 짝꿍이 했던 말은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는 저를 바라보며 '사이 좋은 친구 사이야. 그렇지?'하고 말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는 당황하여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짝꿍이 그렇게 말을 하자, 다른 여자아이들은 저의 짝꿍을 두둔하며 라이벌이었던 여자아이를 나무랐습니다. 저는 '우린 남들과 달리 서로 친한 짝꿍'이라고 생각했고, 이 사실이 저를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 아이는 저에게 특별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평소와 달리 짝꿍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기억하였고, 그 아이가 필요로 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저는 학급에 우유가 올 때, 제 것과 같이 저의 짝꿍 것을 가져왔습니다. 짝꿍은 그런 저를 보면서, '내가 대신 맞춤법 알려줄게'하고 말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아이에게 한글 맞춤법에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맞춤법에 약한 척을 하며 고분 고분히 '응 고마워'하고 말했었습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수업의 내용을 빨리 습득하였습니다. 산수도 그렇고 한글 맞춤법도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났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부로 못하는 척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아이보다 못해야, 그 아이가 '어쩔 수 없네'하면서 저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이의 도움을 핑계로 그 아이를 위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저는 제 짝꿍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곧 잘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마 저의 엄마는 제가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는 녹색 어머니회라고 해서 어머님들께서 돌아가시며 등교 시간에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이 길을 잘 건널 수 있게 기를 들고 계셨었습니다. 물론 저의 엄마도 하셨습니다. 하루는 제가 엄마에게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가 그 아이의 엄마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저의 엄마는 그 아이의 엄마와 친한 것 같았습니다. 이후 그 아이의 생일이 다가오고, 저는 그 아이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유독 저를 놀리는 남자 아이가 있어서, 짝꿍의 생일에 선물을 준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남자아이 때문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 짝꿍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짝꿍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고 선물을 준다는 것은 충분한 놀림감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그 아이의 생일 파티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의 엄마는 그 아이의 엄마와 이야기를 하셨고, 저에게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고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두리 뭉실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공중에 마음이 뜬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찌해야 할 지 몰랐고, 엄마는 '기도하는 도자기 인형'을 포장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시며, 그 아이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집으로 가는 길은 무척 떨리고 긴장되었습니다. 마침 그 아이의 아파트에 가니, 많은 여자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저를 보며 '너도 왔어?'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긴장한 탓에 제가 들고 있는 선물을 들어 보였습니다. 저는 여자 아이들의 웃음을 뒤로 하고 그 아이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아이의 집에 들어갔을 때, 저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왜냐하면 집의 구조와 일부 가구가 저의 집과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거실과 부억 그리고 각 방의 위치까지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에, 그리고 신축 아파트에 같이 분양받고 들어왔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저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사는 공간과 제가 사는 공간이 같다는 사실이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거실의 식탁에 모여 앉았습니다. 저 빼고는 모두 여자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와 가장 먼 구석 모서리에 앉았습니다. 식사가 시작되고 저는 눈치를 보며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께서 유독 저에게 말을 걸고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무척 상냥한 분이셨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저의 엄마에 대한 말씀을 하시며 저에게 더 먹으라고 음식을 내주셨습니다. 식사가 진행되면서 제가 음식을 입으로 먹고 있는지 코로 먹고 있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떠들썩한 여자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익을 자를 때에도 저는 한 구석에서 조용히 박수를 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선물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가져오지 않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선물을 그 아이에게 전해주고, 저는 계속 저의 양반다리 앞에 품고 있었던 선물을 그 아이에게 들이밀었습니다.


그러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의 엄마를 통해서, 제가 중간에 떨어뜨렸는지 아니면 손을 떨었는지 제가 선물한 조각상이 부서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새로운 조각상을 주셨고, 저는 그것을 학교로 가져가 수업이 끝나고 그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저의 선물을 받았고, 많은 남자 아이들이 저를 놀렸습니다.




이후 저희 사이는 서먹해졌고, 저는 불편한 관계가 된 상황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그 아이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아이 또한 저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그 아이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방학 전 마지막 날, 그 아이는 학급의 아이들에게 잘 지내라는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교탁 앞에서 모두에게 즐거웠다고 말하고 제 옆으로 돌아오는 그 아이에게 저는 '잘 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후 방학이 시작되고 저는 집에서 유독 창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 아이는 잘 이사를 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며 저의 동생은 형이 이상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저에게 편지 한 통을 주셨습니다. 그 편지는 그 아이에게 온 것이었습니다. 편지 봉투에는 그 아이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뜯어 보았습니다. 편지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 기억나는 것은 그 아이에게 답장을 하기 위해 이쁜 글씨체를 연습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굉장한 악필이었는데, 그 아이에게 좋은 글씨체를 보여주기 위해 엄마에게 잘 썼냐고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저는 그 아이와 두 세번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3. 현대 한국의 짝 맺기


저는 당시를 떠올리면 스스로 다른 아이들보다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남자 애들은 저를 보고 여자 아이들과 같이 다니는 아이라고 놀리기도 했지요. 그때에는 저 또한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남자는 남자끼리만, 여자는 여자끼리만 다니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제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더 빨리 성숙했었다고 평가합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성장을 보면 어린 아이들의 경우 동성의 또래들과 어울리기를 즐기고, 점차 성장할 수록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성과 대화를 하거나 어울리는 관계가 놀림감이 되었으나, 점차 성장하다보면 이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참 재밋죠.

과거에도 '짝'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유행했었는데, 요즘 다시 '나는 SOLO'라는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보면 서로 짝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남녀를 볼 수 있습니다. 어려서는 서로 짝이 되지 못해 아웅바둥하는 출연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그들을 보면서 연애의 설램을 간접 체험하기도 하고, 그들의 노력을 응원하기도 합니다. 종종 기수별로 소위 말하는 빌런(원활한 연애 과정을 방해하는 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빌런들도 각자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출연자들이 모습이 다소 납득이 가지 않거나 비호감적이라 하더라도 그들 나름에게는 이성에게 자신을 들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는 프로그램의 진행에서 잘 드러납니다. 프로그램 중간에 출연자들은 인터뷰를 받고 당시의 자기 감정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출연자들은 자기 기수의 빌런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빌런과 짝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반면 빌런들은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자신을 어필합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후반부로 진행될 수록 빌런들의 인성은 더욱 드러나고, 그 누구도 그들과 짝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빌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각자 자신의 짝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상대에게 질문하고 관심을 표하며, 자신의 좋음을 알리고자 시도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한편에서는 이성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혐'과 '여혐'은 큰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동성의 집단이 똘똘 뭉쳐서 이성 집단의 문제를 헐뜯고 비난을 일삼기도 합니다. 근거없는 소문을 만들기도 하고, 사건의 사실을 믿지 않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공격성은 과격해지고, 상대가 했으니까 자신들도 한다는 응보적 행위(Mirroring)를 하기도 합니다. 과거 어렸을 적에는 이와 같은 이성에 대한 혐오가 단순히 철없었던 아이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절이 지났는지 이니면 제가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어느센가 다 큰 성인들도 이성을 혐오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영향이라도 있는 듯 혼인률도 상당수 하락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이후 20-49세를 기준으로 남성은 두 명중 한 명이 독신이고, 여성은 세 명중 한 명이 독신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4. 짝꿍에 대한 철학적 고찰


짝꿍을 다른 표현으로 바꾼 다면 '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철학에서 말하는 '타인'은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표현이지만 말입니다. 짝꿍 또한 다른 존재와 함께하는 관계를 지칭하기 때문에 이는 '타인'에 대한 관념을 중심으로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짝은 단순히 옆에 있는 다른 이성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누구와 누구가 짝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둘 간의 상호 소통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다고 해서 두 사람이 짝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이 상대를 인지하고 교류를 하고 있을 때 둘을 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짝꿍을 철학적으로 설명한다면 '타자와 관계'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타자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이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중에 서로 상반된 니체와 버틀러의 사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보면, 타자는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적대적 존재입니다. 니체에 따르면 타자는 외부의 적이며, 타자가 나에게 손상을 입혔을 때 이를 막기 위해서 법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법은 서로 상대를 싫어하고 공격하는 타자들을 서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정의'의 주된 목적이 '응보'이며, 손상을 입힌 이와 손상을 받은 이의 불평등을 회복하는 것이 주안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본래 도덕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자의 공격에서 자신의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설명은 다른 사상가들에게도 발견됩니다.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홉스 또한 태초의 인간 사회를 설명하였습니다. 홉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서로 적대적이어서 자신의 소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상호 조약을 맺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사회 건설의 기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인간의 본질은 서로 타자를 향한 공격성과 혐오를 지닌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버틀러에 따르면 타자는 우리가 서로 돕고 배려해야 할 대상입니다. 버틀러는 니체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우리 인간은 어느 동물보다 긴 양육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인간은 아기의 상태로 태어나며, 생후 1년간은 홀로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합니다. 하지만 니체가 설명하는 '공격적인 타자'는 아기의 상태로 태어나는 인간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있어서 상대방에게 도움을 호소할 수 있고,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은 타인의 아픔에 측은지심 혹은 연민과 공감의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정신은 타자를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각자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 곳을 선택할 수는 있으나, 우리의 이웃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느 대학으로 진학할 것인지, 어느 직장에 취업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 선배와 직장 상사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강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버틀러는 '타자'와 서로 배려하고 돌보는 관계를 지녀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타자를 선별하여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인간은 각자 나약하여, 상대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버틀러의 설명은 어린 시절 짝꿍의 추억과 연결점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짝꿍은 제가 임의대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제비를 뽑아서 짝꿍을 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이들에게 짝꿍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각자는 서로 자신이 앉을 자리 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 아이들은 서로 짝꿍이 되어 싫어하고 미워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상대와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합니다. 때때로 사이가 너무 틀어져 선생님께 달려가 자리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어울려 지내는 길을 택했습니다. 바로 버틀러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타자는 대적하고 혐오해야 할 대상이기 보다는 배려와 소통으로 관계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5. 나가며


어렸을 적에는 짝꿍과 크게 다투기라도 하면 선생님께 큰 혼이 날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각자 불만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참고, 상대에게 맞추며 지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짝꿍' 시스템은 다소 부조리한 측면을 지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당연히 동성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원하는 시기에 이성과 함께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짝을 자신이 선택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조금 부조리해 보이는 짝꿍을 어린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성과 관계하고, 타자와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어려서부터 기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 초반에만 해도 커뮤니티가 성별로 갈리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점차 여초 혹은 남초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중 일부는 극단적인 남혐과 여험의 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대 사회를 성찰하며, 풋풋하고 건강했던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봅니다.


해당 글은 박지원 연구원 님의 논문을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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