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말합니다. '소확행'은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소소하고 평범함 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느끼는 게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행복을 위해 무언가 많은 노력과 준비를 들이기보다는 일상의 평화로움에 머물고자 하는 것입니다. '작은 행복'은 멀리서 찾아지는 대상이 아니며, 특정한 장소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작은 행복은 늘 일상 안에 있으며,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익숙함과 친근함의 안식처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소 트렌드가 바뀐 것 같습니다. 너도 나도 자신의 일상을 SNS에 기록하고, 멋지고 찬란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합니다. 행복의 크기는 예전보다 커져서 많은 돈과 사람 그리고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이 게재한 '큰 행복'을 보고 공감과 부러움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타자의 삶을 자신의 삶과 비교합니다. 사람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남들과 같이 자신의 삶 또한 '큰 행복'으로 꾸미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외부에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노동이 아닌 또 다른 수고를 투자합니다.
AI 프롬프트로 생성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독일의 뮐러는 자신의 저서 '프로필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 현상을 보고 '프로필 성'이라고 명명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인격적 내면의 진정성이 아닌 '외면의 프로필'을 가꾸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사회가 언제나 서로를 연결될 수 있는 초연결의 사회로 나아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늘 온라인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으니, 온라인 소통의 내용이 되는 외면이 중요해지고 이는 곧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퍼집니다. 또한 램키는 자신의 저서 '도파미네이션'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큰 행복'을 체험할 때 발생하는 '도파민'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뇌는 다양하고 즉흥적인 자극에 노출되고, 도파민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위해 더욱 온라인 콘텐츠를 소비하려 합니다. 우리 사회는 더더욱 '큰 행복'만을 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행복. 네 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입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운을 쫓다가 행복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고 하죠. 큰 기쁨인 행운보다 작고 흔하더라도 일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행복을 지향하십니까? 이번 글에서는 제의 행복을 나누고, 행복에 대한 심리학적 그리고 철학적 고찰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2. 행복의 기억
저는 고향이 대전입니다. 지금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고향이 대전이라고 말하면 한화 야구팬인지, 아니면 성심당을 정말 자주 가는지 질문을 받곤 합니다. 물론 저는 한화 팬이고, 성심당 빵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즐겨 먹었습니다.
일러스트 출처, 야구공작소, 박주현
한화 야구단은 박찬호 선수와 류현진 선수를 배출했습니다. 그래서 대전을 벗어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한화팬=보살'이라는 사실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한화는 충분히 잘하는 팀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그에 걸맞은 훌륭한 선수들을 양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대진운이 좋지 않아 가을 야구를 가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온통 한화팬뿐이라, 본래 야구는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보는 스포츠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화가 강하다는 인식에는 특이하게도 '한화'라는 기업의 이미지도 한몫을 했습니다. 타지 사람들은 '한화'가 리조트와 보험업을 주로 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본래 한화는 '한국화약'의 줄임말입니다. 그래서 한화는 군수물자를 만드는 기업이고 또 상징물이 독수리여서, 어린이의 생각에 그 이미지만으로도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객관적인 성적보다는 '우리 팀'이라는 주관적인 감성이 더 우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인이 된 지금에는 인상보다는 실제를 더 중시합니다. 요즘에는 문동주 선수가 한국 최고의 구속을 발휘하고 있으나, 컨디션과 대진운의 부재로 다소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 저점이 긴 이유는 더 높이 날기 위한 발돋움일 거라 생각합니다. 다소 서운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저는 한화이니까요.
일러스트 출처, 성심당 공식 홈페이지
성심당이라 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저는 어려서 대전역 인근의 성당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성당 맞은편에는 늘 성심당이 있었습니다. 타지 사람들은 성심당을 빵집으로 알고 있으나, 대전 사람들에게 성심당은 빵집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심당 본점은 대로에서 1블록 안쪽으로 들어간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빵집은 1층이고 2층에 올라가면 넓은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홀 주변에 오므라이스, 돈가스, 햄버거 스테이크 등을 즉시 조리해 줍니다. 아마 저의 기억에 가장 이른 시기는 1990년대 초였고, 엄마와 동생과 같이 돈가스를 셋이서 나누어 먹었었습니다. 지금이야 백화점 지하에 푸드코트가 흔하게 있어서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어린 시절에 성심당은 고소하고 폭신한 빵과 방금 튀긴 돈가스를 같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마침 돈가스에 밥이 동그랗게 말려서 나오는데, 저와 동생은 밥이 부족하다고 투정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엄마와 같이 성당에 가는 날이면, 성심당에서 빵과 돈가스를 먹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생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저희끼리 용돈으로 성심당을 찾았습니다.
타지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성심당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는데, '튀김 소보로'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그 기사를 읽고 신기하다는 기분이 들었었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가족과 형제의 추억이 있는 장소가 이제는 유명해져서 '공공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만 알던 추억의 장소가 모두의 명소가 되어 다소 아쉽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대전에 가면 들리는데, 북적이는 사람들 때문에 옛날의 정취는 다소 사라진 인상을 줍니다.
일러스트 출처, 대전관광 홈페이지
저에게 옛날의 정취가 사라진 장소를 꼽는다면 대전의 엑스포도 있습니다. 1993년에 대전에서 엑스포를 개최하였으나 현재는 꿈돌이 놀이동산도 사라졌습니다. 또한 대전 사람인 저 조차도 대전 엑스포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전 엑스포는 잊을 수 없는 행복의 시간과 장소입니다.
지금은 연인들의 이색 데이트가 되어 버린 4D 영화관도 당시에는 엑스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4D 영화를 보려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죠. 처음에는 4D라는 호기심, 안경을 쓰고 탄다더라, 의자가 움직인다더라, 앞에서 바람이 나온다더라 하는 긴장감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한번 타고나서는 '하루를 기다려도 좋다'는 생각에 기나긴 줄을 기다렸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영상을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지 줄을 서서 기다리며 가져온 레고 사람으로 아빠의 등을 등산하며 놀았던 기억, 그리고 검은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긴장감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엄마는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부스를 돌아다니기 좋아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에게는 다소 지루한 프로그램이었으나, 아마 교육의 차원에서 엄마가 저희를 이끌고 갔었습니다. 그중에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부스도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인근 동북아시아의 나라는알고 있었으나, 중앙아시아와 남미의 국가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이제 튀르키에라고 부르는 터키의 부스에 갔었습니다. 부스의 설명에서 '한국전쟁의 참전한 우방국'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동생과 저는 '우방국'의 뜻을 몰라서 질문했었습니다. 그래서 부스의 선생님은 '친구의 나라'라고 설명했었는데, 저와 동생의 시야에서 터키 사람들의 외모를 보고 '친구?'라고 갸우뚱했었습니다. 사진에는 터키 어린이가 아니라 턱수염 가득한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엑스포에는 멋진 한빛탑과 꿈돌이 마스코트,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와 신기한 과학 기구들 등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엑스포는 매우 넓었고, 또 다양하고 이색적인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꿈과 행복의 공간이었습니다. 계속 소풍을 가도 새로웠고, 너도 나도 누가 더 엑스포에 대해 빠삭하게 잘 아는지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3. 어린 시절 행복의 요소: 몰입
저는 앞에서 설명한 추억들을 곰곰이 살펴보면서 공통된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중심에 바로 몰입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몰입'은 특정 대상에 빠져서 때때로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의 몰입을 떠올리며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정서 등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과거의 행복을 다시 현재로 소환하는 순간으로 느껴지고, 한번 몰입된 순간 현재로 돌아오는 것이 아쉬워집니다. 이러한 경험을 잘 들여다보면, '행복'이라는 감정이 바로 '순간의 해석'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 대상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느냐에 따라 체험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해석이 많으면 많을수록 저의 정신은 더욱 대상에 몰입하고, 몰입의 기억은 행복의 요소가 되어 떠올릴 때마다 저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Flow: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에서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행복은 큰 노력과 준비의 과정을 통해 성취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을 사는 자신이 자신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때 발견됩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이처럼 행복을 발견한 기억을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라고 합니다. 최적 경험은 "캔버스 위의 여러 색들이 마치 자석의 힘에 이끌리듯이 서로서로 뭉치면서 생명력을 갖는 현재를 만들어 갈 때 이를 창조한 화가가 느끼는 것"(27쪽)과 같다고 합니다. 이는 특별한 순간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적 경험은 일상의 순간에서 발생합니다. 칙센트미하이는 행복이 최적 경험에서 나오며, 최적 경험은 정신의 몰입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몰입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29쪽)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모래성을 쌓는데 집중하여 해가 질 때까지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것이나, 비 오는 날 물이 가득 찬 운동장에서 감기가 걸릴 때까지 축구를 하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하루 온종일 영화의 내용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취미 생활 등 그 대상은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이 모두 즐겁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대상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다른 불편함이 야기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글을 퇴고하는 인내의 과정을 견뎌야 하고, 운동선수는 근육의 통증과 폐의 숨 가쁨을 견뎌야 합니다.
칙센트미하이, Flow, 최인수 옮김, 한울림, 2004.
몰입은 우리 정신을 하나의 단일한 목표로 집중하게 합니다. 대상에게 빠져있는 순간에는 다른 걱정들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몰입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현재의 일을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몰입하는 이는 진정으로 즐기는 자로써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는 이와 차이가 납니다. 다른 목적을 위해 행위를 하는 이는 행위가 수단이나, 일에 몰입하는 이는 행동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 곧 삶의 질을 개선한다고 설명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최적 경험'의 상태가 늘어나게 되면서 사람은 점점 자신의 삶을 행복 가득한 순간들로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면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자기 스스로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진정한 자유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칙센트미하이는 최적 경험을 통해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하나는 활동적인 삶(Vita Activa)이며, 다른 하나는 관조적인 삶(Vita Contemplativa)입니다. 활동적인 삶은 "스스로 정한 평생의 목적을 굳은 결의로 추구"(410쪽)하는 것을 말하며, 관조하는 삶은 "초연한 자세로 경험을 바라보는 것"(411쪽)을 말합니다. 즉 행복은 스스로 자신을 꾸밀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어린아이가 대상을 향해 빠져들 때 발생합니다. 행복은 삶에 대한 태도를 달리 가지는 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애착하는 대상, 그리고 내가 소중히 하는, 나만의 그리고 우리만의 공간 등, 자신과 대상을 일치시킬 정도로 몰입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몰입의 순간에서 느끼는 체험들은 강렬한 인상의 기억이 됩니다. 이후 우리의 머릿속 한편에 자리를 마련하고, 행복했던 순간으로 저장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행복한 시절을 발견하게 됩니다.
4. 과거 회상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고찰
저의 회상과 같이 여러분 또한 과거 특정한 대상이나 순간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떠올리는 경우 행복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철학자 중에서도 들뢰즈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철학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설명합니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보면, 그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예로 들면서 주인공이 어린 시절 보낸 시골 마을 '콩브레'가 과거의 대상이나 여전히 현재에도 소환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콩브레를 경험했던 순간은 순수 과거의 대상으로 현재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먹었던 수프와 빵을 접하면서 망각 속에 떨어져 있던 당시의 기억이 상기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상기를 통해 단지 어떤 현행적 현재에서 사라진 현재들로, 최근의 사랑에서 유년 시절의 사랑으로, 연인에서 어머니로 돌아가는 것"(200쪽)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순수 과거는 다시 반복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재현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추억의 대상을 늘 기억하고 살지는 않죠. 일과를 보내는 중에 어렸을 적 기억은 망각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특정한 계기로 또는 의도에 따라 현재로 소환됩니다. 한번 소환한 적이 있는 기억이라고 해서 또 소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사랑하는 이의 사별과 같은 경우 우리는 과거의 추억을 반복적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재에 과거의 행복을 끌어옵니다.
들뢰즈는 이처럼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비자발적 기억이라고 설명합니다. 비자발적 기억은 불현듯 발생하는 과거의 강한 인상입니다. 비 자발적 기억은 과거의 공간, 느낌, 물건, 상황 등의 통일적인 전체로 떠오릅니다. 이렇게 떠오른 비자발적 기억은 과거이자 동시에 현재 자신을 구성합니다. 어떤 상징물을 통해서 과거의 한순간이 비의도적으로 떠오르고, 이는 자신의 현재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행위는 다시 현재에 반복되고, 이 행위가 반복될수록 반복의 시간이 점점 수축되어 자기 자신과 합일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과거는 반복의 내용이며, 현재는 반복이고, 미래는 반복하게 될 대상이 됩니다.
만약 비자발적 기억이 행복에 관한 기억이라면, 기억과 시간 그리고 반복에 대한 들뢰즈의 설명은 추억을 상기하며 체험하는 새로운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체는 과거의 어떤 체험에서 강렬한 행복을 경험했고, 이후 과거의 그 경험은 비자발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주체는 과거의 그 행복을 동일하게 반복할 수 있을 거란 바람에 해당 행위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재현된 행위는 과거의 행복과 동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새로운 행복의 체험이 됩니다.
과거의 행복한 공간인 '콩브레'는 현재 실존하지 않습니다. 이는 '순수 과거'이며, 실존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에 상기하여, 과거의 기억을 현존시키려고 합니다. 들뢰즈는 이러한 행동을 두고 절대로 반복될 수 없는 순수 과거의 대상이 현재에 재현됨으로써 새로운 경험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때, 물론 우리가 그때와 유사한 행복의 감정을 느끼겠으나 이는 과거의 행복과 완벽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둘은 명확한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둘은 동일하지 않고 유사합니다. 왜냐하면 현재에 재현되는 순수 과거는 마치 배우가 연극 공연을 하는 것처럼, 당시의 상황과 표현 그리고 해석에 따라 다르게 재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차이로 인하여, 현재에서 회상되는 과거 또한 새로운 행복의 체험이 될 수 있습니다.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믿음사, 2004.
이는 무엇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요? 들뢰즈는 설명합니다. 바로 사랑(에로스)이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랑의 공명은 시간의 두 계열을 서로 연결합니다.(274쪽) 마치 제가 대전과 한화, 성심당, 엑스포를 아끼고 사랑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순수 과거는 단순 과거로 흘러가지 않고, 현재의 나에게 순수하게 몰입했고, 소소하게 즐거웠던 행복의 순간을 안겨줍니다.
5. 나가며
도서관에 가보면, 행복에 대해 설명한 다양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 삶에서 행복은 정말로 중요하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양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행복에 종류도 많고 행복에 이르는 길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즉각적인 자극을 가져다주는 수많은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순간적인 자극을 찾아 도파민의 절여진 뇌처럼 무의식적으로 '크고 화려한 외적 행복'의 유혹을 받고 있죠. 저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각자의 기억에 있는 '작은 행복'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행복이 아닌, 나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행복은 바로 어린 시절 삶에 몰입했던 나의 기억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또한 행복한 기억을 상기하며,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외할머님을 추억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