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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Dec 02. 2024

나의 詩 사과는 빨갛기만 한데

잘 익은 사과는 빨갛기만 한데, 속살만은 눈 보다 더 하얘서...

사과는 빨갛기만 한데

                                         이은희



ㅇㅇ이 가고, 우리는 사과를 먹고, 약간의 대화를 나눴다. 서로가 아니라 나의 거세지는 감정을 겨우 억누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침 정말 오랜만에 사랑을 나눴고, 그에겐 굵은 나를 꽉 채우는 무엇이 있다. 허나 내 스스로 무엇의 주인이 되려 하지 않는 건지도…… 귀불에 촘촘히 반짝이는 훈장이 남았다. 하얀 모가지를 관통하듯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가루들이 빛을 발한다. 어느새 켜켜이 쌓아온 은밀한 날들에의 훈장들을 서랍에 간직한 채 무디고 심드렁한 날들에 꺼내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 우리는 사과를 베어 먹으면서 웃었다. 푸르른 청사과의 풋내가 가시지도 않았지만 입안에 돌던 달콤함이 신맛 보다 더 강렬했을 때가 있었다. 이제 아침마다 자주 나눠 먹게 된 잘 익은 빨간 사과가 그날의 풋사과의 달콤함을 대신한다.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어쩌면 사과를 나눠먹는 일은 소소한 행복인지도 모른다는 야릇한 생각이 스친다.  


눈은 가득 쌓여 세상은 온통 하얀데, 잘 익은 사과는 빨갛기만 한데 속살만은 눈 보다 더 하얘서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모든 것을 지워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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