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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

"독립문에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라던 노랫말에 눈시울을 적신 날...

by 이은희 시인

2025년 9월의 첫날, 하루가 길게 지나갔다.

25시간 같던 하루가...

아니 어쩌면 새벽부터 빼곡히 끼워 맞춘 하루였기에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9월의 시작과 함께 우리 교회에서 진행하는 특별새벽기도회에 간다고 일어난 남편과 아들들의 소리에 잠시 깨었다가 다시 든 잠 속에서

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늦은 오후가 펼쳐지고,

(꿈에서도 바빴던 탓인지 더 잔 것 같진 않고...)

아침 대충 세수를 하고 여름 내내 쓰고 다닌 하얀 야구모자를 쓰고 급히 차를 몰고 달려가 두 번이나 다시 옮겨 주차를 하고,

콩나물이 잔뜩 그려진 하얀 종이를 밥 대신 목구멍 깊은 곳, 폐까지 밀어 넣고 다시 우아하게 뱉어내고, (중창단 연습 중...)

보리비빔밥 한 양푼과 들깨수제비를 지인과 함께 나눠 먹고,

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삼키고,

집에 돌아와 슈슈가 토해놓은 침대커버를 빨고,

오래 묵은 삼베이불은 세탁기 대신 쓰레기통 속으로 그냥 명을 달리하고,

바삐 분신들이 저녁에 먹을 것을 챙기고,

다시 시내로 나가 ㅇㅇ백화점 지하 2층에 주차를 하고,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커다란 화면에서 백 명이 넘는 이념을 같이한다는 그이들과 함께 보고,

"독립문에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라던 가슴 벅찬 노랫말에 눈시울을 적시다가

홍범도 장군이 전장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 만 75세를 사시고 자연사하셨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고,

나는 차를 모시고 온 관계로 호프집에서 맥주 대신 검은 콜라를 酒처럼 얼음이 담긴 맥주컵에 따라 마시고,

"하하 호호"

'왜 선출된 인간들은 하나같이 초심을 잊어버리는 것일까?' (그 무렵 잠시 이런 생각이 스쳤지 아마...)

또 누군가의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나요?"라는 답변에 나는 '모를 자유'를 생각했어.

모를 자유, 그건 누구에게나 있는 것.

잊을 자유, 그것 역시 누구에게나 있는 것.


젊을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자꾸만 잘 잊어버리는 요즘의 내가

참 자유인인 것 같아서 나는 좋다.





추신.

이은희 시인의 연재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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