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둔 사립으로 독 발린 사과를 건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 있는 거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일 뿐인 사이에서 더 가까워질 것이란 없지요. 껍데기가 가까워지면 서로가 서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짓눌리고 심하면 가루가 되어 완전히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흩어지고 말 테니까요. 각자의 삶은 그대로 두는 것이고, 스스로의 삶은 누구도 침범치 못하게 구획을 정하여 살면 되는 것이에요. 혹시 사립을 열어두셨나요? 열어둔 사립으로 갖가지 탈을 쓰고 변장한 인류들이 들어와 붉고 탐스럽게 윤이 나는 독 발린 사과를 건넬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끔 향기 짙은 바람에 꽃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고, 또 가끔은 친절한 촌부가 방금 딴 노오란 참외를 건네기도 하겠지요. 색바람에 땀을 식힐 수도 있어요. 어느 밤엔 하얀 눈꽃을 선물로 받을 수도 있지요. 그렇기에 위협의 가능성 속에도 폐쇄할 수만은 없는 것이 마음일 테죠.
이 詩 <혹시 사립을 열어두셨나요?>는 작년쯤 초고를 대충 쓰고, 올해 6월 무렵 퇴고를 조금 한 듯싶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상처를 받으며 살던가? 믿음의 크기가 컸던 사람일수록 배신의 상처는 클 테지...
누구나 인간은 이기적일 수 있다. 이타적이기는 인간 본성상 오히려 어려울 테니. 허나 본인이 요구하고 추구하고 싶어 하는 만큼 상대에게도 상대의 필요를 채워줄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금도 나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나 역시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그런 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끔의 순풍에 마음이 간지럽고, 어느 초겨울 밤의 하얀 눈송이에 아련한 시림으로 설레는 것은 어찌하겠는가?
추신.
이은희 시인의 연재 브런치북
추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