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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詩 불량 통조림 수거기(收去記)

순백의 눈은 어깨에 닿았을 땐 이미 질펀한 회색 진눈깨비가 되어 있었어.

by 이은희 시인

불량 통조림 수거기(收去記)

이은희


그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5년이었어. 아직 만 3년이 덜 된 채로 악취가 풍기는 통조림을 우리는 정말 뜻하지 않게 발견했지. 통조림 속 덜 익힌 고깃덩이와 잘못된 염장법으로 어긋난 나트륨의 비율이 원인이었을까? 뭔가 슴슴한 것이 소금은 많이 아껴서 어디에 빼돌린 거지? 겉은 멀쩡했지. 아니 상표 라벨은 금장까지 박힌 블랙라벨이었어. 어딘가에 미세하게 실금이 갔던 모양이야. 음습하고 탁한 공기가 스멀스멀 깡통의 틈새로 침투했겠지. 통조림은 속으로 깊이 갈수록 더 부패해 있었어. 코를 뚫고 들어오는 지독한 악취가 폐부까지 침투해서 정신이 혼미했지. 겨울의 초입, 어느 날 우리는 썩은 통조림 속 악취의 절정을 맛봤지. 그날은 살짝 눈이 내렸어. 초겨울 어쩌면 그게 첫눈이었을까? 아니 첫눈이 그날 내렸다면 억울했을 거야. 스멀스멀 광대하게 퍼져나간 썩은 열기에 하늘에서 얼어있던 순백의 눈은 우리의 어깨에 닿았을 땐 이미 질펀한 회색 진눈깨비가 되어 있었어. 그날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커다랗고 육중한 통조림 깡통을 향해 돌진했지. 날카로운 철 뚜껑에 베여서 쓰라렸고, 틈새로 흘러나온 국물과 부스러진 썩은 살점이 손가락 사이사이에 덕지덕지 붙어 곤욕을 치렀지. 후각이 다 마비돼 갈 무렵 우리는 그럼에도 그 밤, 불량 통조림을 수거하는데 일단은 성공했지. 뭐 완벽한 분리수거는 두고두고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말이야.





- 이 詩의 초고는 2025년 6월 11일 썼다.

길고 긴 지루한 시간이 아직도 지나고 있다. 분리수거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종류의 쓰레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제는 판도라의 상자(폰)까지 열렸으니 더 이상 무엇으로도 덧대어서 땜질을 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더 오래도록 이 분리수거의 과정은 이루어지는 걸까?

그럼에도 완벽한 수거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힘을 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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