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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Mar 02. 2022

방망이 깎는 꽃집

글쓰는 플로리르스트 열 두번재 이야기

알아요, 번아웃


  번아웃이 왔다. 이제 오픈 1주년 행사도 준비하고 해야 하는데,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진 건 물론이고 하루가 끝나면 고장난 컴퓨터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활동이 멈춰버린다. 가족에게 짜증은 심해지고 아주 작은 일 하나도 버거워진다. 세상에 '번아웃'이라는 말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답답하고 억울한 상태에 그래도 이름을 붙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꽃집을 열기 한참 전, 짝꿍에게 번아웃이 왔었다. 매일 밤을 새고 감정을 많이 쓰는 일을 하더니 어느날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평소같으면 익숙하게 몇 시간이고 하던 일을 10분 이상 지속하기 힘들다고 했다. 출근길엔 심장이 두근거려 돌아오기도 했다. 걱정은 됐지만, 그땐 그냥 그러고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짝꿍은 튼튼한 사람니까. 그래서 그런지 곧 일이 좀 줄어들어서 그런지, 짝꿍의 번아웃은 그렇게 어느 시절을 태워버리고 지나갔다.


그런데 내 번아웃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두 달 전부터, 나는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말 그대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플로리스트 학원에 주말 강의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가끔 쉬던 일요일도 없어졌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덜컥 시작한 일이 내 임계치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딱 두 달을 보내자 몸이 저항을 시작했다. 내 욕심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건 내 욕심때문이다.


  매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버겁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상품 제작이다. 이제 곧 1주년을 맞이하는데 도무지 수월해지지가 않는다. 꽃다발도 꽃바구니도 만들 때마다 전전긍긍한다. 물론 그렇다고 결과물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니 시간이 갈수록 손님들은 늘어가고 상품이 된 내 작품에 진심으로 고마워하신다. 행복한 일이다.

내가 만들었지만 예쁜 프러포즈 꽃다발


  문제는 과정이다. 다른 꽃집 사장님이 놀러왔다가 내가 꽃다발 만드는 걸 보고 깜짝 놀라신 적이 있다. 나는 예약 주문의 경우에는 최소 픽업 한 시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하는데, 사장님은 꽃다발 하나에 15분 이상 쓰지 않는다며 놀라워하셨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나도 워크인 손님이 와서 주문해주시면 15분 안에는 만들어드려야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핸드타이를 잡고 또 잡는다. 그나마 손이 차가운 편이라 그 시간동안 꽃대가 상하지 않아 다행이랄까. 마음에 안들어서 인상을 쓰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돌려가며 잡았다 풀었다 내렸다 올렸다 반복한다. 거울 앞에 다시 든다. 좌절감이 밀려온다. 왜이렇게 못하는 걸까. 불안감도 엄습한다. 손님이 마음에 안 들어하시면 어떡하나.


방망이 깎는 노인은 번아웃이 안 왔을까?


  중학교였나, 국어 교과서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이라는 수필을 본 적이 있다. 아내에게 선물할 다듬이용 방망이를 역전 노상에서 주문했는데 그 자리에서 노인이 방망이를 하염없이 끝도없이 깎아대 마음이 조급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다듬이 방망이를 조금 대충 깎아 주어도 크게 모자랄 일도 없거니와 받는 사람은 마음이 급하지 않아 좋고 주는 사람은 다음 장사를 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좋은 일일텐데, 그 노인은 그렇게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방망이를 깎아댔더랬다.


  그 노인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잡고 또잡고 잡고 또잡고. 한숨을 푹푹 쉬며 계속 꽃다발을 수정하는 나를 보다보면 그 차분한 짝꿍도 안절부절해한다. 그만하면 되지 않을까? 충분히 예쁜데? 그러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농담인지 진담인지 놀린다. 아니...플로리스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간 것도 아니고...너무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사실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는 일인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는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게 돼 영광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선물을 만들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하면서, 그렇게까지 매번 진심일 필요는 없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일에 몸만 갈아넣고 시간을 축내면서 결국 돈을 벌 수는 있긴 한 걸까. 다만 그렇게 만들어나가는 일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만은 이제 잘 알고 있다. 조금은 '상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 걸까.


  조금은 편해지고 싶다. 이렇게 깎아대다가 방망이가 없어지는 건 아닐지. 기다리다 지친 손님이 떠나버리진 않을지. 아니면 그전에 나 스스로 방망이 깎는 일을 그만두게 되는 건 아닐지. 고민이 깊어지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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