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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넬 Aug 14. 2024

텐션 잡던 미캐닉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패러디

벌써 몇 년 전이다. 

내가 갓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알루차로 자출사 번개에 다닐 때다. 


행주국수벙 모임장소인 안합으로 가려면 일단 당산 나들목을 지나쳐야 했다. 

당산철교 아래 길가에 허름한 자전거 포가 있었다. 

내 R500 뒷 휠이 흔들리는 것 같아 텐션이나 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공임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알루휠 림정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잡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미캐닉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잡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스포크 렌치로 휙휙 돌리는 것 같더니, 이리 돌려 보고 저리 째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림돌이를 돌리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번개 모임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잡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탈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잡는다는 말이오? 미캐닉, 외고집이시구먼. 번개 시간이 다됐다니까요."


미캐닉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잡으시우. 난 안 잡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번개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추노라도 해야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잡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찌그러지고 오버텐션 된다니까. 평균 텐션까지 제대로 잡아야지, 잡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잡던 휠을 내려 놓고 태연스럽게 아이코스에 필터를 꽂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휠을 들고 이리저리 손가락을 튕겨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휠이다.



자기소개를 놓치고 추노를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미캐닉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미캐닉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건너편 킥보드 매장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미캐닉다워 보였다. 캄파놀로 모자와 파크툴 앞치마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미캐닉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국수집에 와서 휠을 돌렸더니 벙짱은 예쁘게 잡았다고 야단이다. 전에 봤을 때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상태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벙짱의 설명을 들어 보니, 무작정 조이기만 하면 스포크에 오버텐션이 잡히고 변형이 일어나며, 장력이 너무 약하면 금방 다시 틀어지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게 잡는 이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미캐닉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전 튜블러타이어는 보통 본딩으로 작업해서 도통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 튜블러타이어는 다운힐하다가 밀렸다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예전에는 림과 타이어 양쪽에 본드를 붙이고 말렸다가 하는 과정을 이틀쯤 반복하고 비로소 충분한 양의 본드가 균일하게 칠해졌을 때 다시 본드질을 하여 휠에 타이어를 붙인다. 센터를 잡은 후 다시 12시간 이상을 건조시키고 나야 주행을 할 수 있어, 보통 본딩에만 사흘씩 걸리곤 했다. 

그러나 요새는 림테이프를 써서 바로 붙인다. 30분 만에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눈에 띄지도 않는 본딩을 며칠씩 걸려 가며 타이어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휠도 그런 심정에서 잡았을 것이다. 나는 그 미캐닉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미캐닉이 나 같은 자린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정성들인 정비를 받을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미캐닉을 찾아가서 아아에 소금빵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정서진 번개에 가는 길로 그 자전거 포를 찾았다. 그러나 그 자전거 포가 있던 자리엔 휴대폰 가게가 들어서 있지 않은가. 나는 그 자전거포가 있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 미캐닉의 시선이 닿아 있던 맞은편 전기 킥보드 샵을 바라보았다. 노 헬멧에 한 대에 두 명씩 탄 킥보드 유저들이 유유히 도로를 가로질러 매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미캐닉은 저 킥보드 유저들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텐션을 잡다가 유연히 킥보드 샵을 바라보던 미캐닉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는 아이곤(我以困)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남산 벙에 갔더니 너도나도 디스크에 카본 스포크 휠셋을 달고 나왔다. 

전에 레이놀즈 휠에 브레이크 잡을 때마다 나던 휘파람 소리가 생각이 난다. 

림브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림브 브레이크 잡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알루삼대장이니 내짚마련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년 전 텐션 잡던 미캐닉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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