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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May 26. 2023

그날, 이 가을

 엄마의 사모곡

 홍시를 좋아하시던 엄마!     

 엄마의 입맛을 닮은 막내딸은 한옥마을 최명희 문학관, 뒤뜰 수시감나무 아래에서 달큼한 홍시 냄새를 맡으며 엄마를 불러봅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날처럼 올해도 가을햇살을 고스란히 담아낸 홍시가 장독대 옆 감나무를 붉게 밝히고 있겠지요. 노란 벼이삭의 충만한 춤사위도 가을바람을 타고 앞뜰을 흥겹게 물들이고, 봉황산을 하얗게 수놓던 구절초 향기도 가을을 배부르게 채우고 있겠지요. 이렇게 그 가을은 다시 왔는데 엄마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디를 헤매고 계실까요. 엄마의 기운 빠진 발소리가 시리게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1929년 안동 권 씨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엄마. 공부 욕심이 강했던 엄마는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소학교를 다니셨다지요. 장마철이면 외할아버지 등에 업히어 물을 건너고 재 너머까지 외할아버지의 배웅과 마중을 받으며 다니셨지요. 열여섯 살, 소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해방이 되었으나 어떻게든 도회지로 나가 공부를 하려던 꿈이 좌절되어 골방에서 몇 날 며칠을 울었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무 살에 꽃가마 타고 말공구리재를 넘어 시집온 날부터 인생이 역전되었다 하셨지요.               

 전주  전매청에 다니는 청년이 있으니 그리로 시집가라는 외할아버지 말씀 따라 군말 없이 시집오셨다는 엄마. 전주에 살 줄 알았던 엄마는 곧바로 두메산골 진안에 있는 시댁으로 들어가 살게 되셨다지요.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엄마는 예상치 못한 결혼생활이었지만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시부모님. 시동생들 모시며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리잠직한 모습으로 수를 놓거나 뜨개를 하며 거친 일은 한 번도 하지 않던 엄마는 시댁으로 들어오자마자 삼을 삼아 베를 짜고 돼지나 염소까지도 키워야 했지요. 봉황산은 물론 알미산이나 단지골 골짝까지 나무를 하러 가시고 봄이면 고사리 끊어 내다 팔고 여름 내내 누에 키워 자식들 등록금 준비하시느라 새벽달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엄마.      

 바쁜 와중에도 여름밤이면 대청마루에 앉아 내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 주고 당신 손톱에도 무명실로 감아가며 봉숭아물들이기를 즐기셨던 낭만적인 엄마. 월랑 이 씨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시집오셔서 청실홍실 수놓던 그 손이 우둘투둘 갈라진 논바닥처럼 얼고 터지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요? 자존심이 강하셔서 그 누구에게도 힘들다 하지 않으시고 삼대독자 집안을 사남사녀 자손으로 번성시켰으며 논밭도 남부럽지 않게 불려 놓은 억척 엄마.          

 여든넷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는

“먼저 좋은 데 가시우. 내 첫 증손주 보면 안아보고 따라가리라”하시면서 담담히 눈을 감겨주시던 강한 엄마!

 그날도 오늘처럼 가을바람에서 구절초 향기가 그윽했었지요.

위암 2기, 수술만 하면 다 나을 거라던 큰 오빠가 간암으로까지 고생하시다 우리 곁을 떠나시던 날,

"큰애야, 큰애야, 이 에미가 먼저 가는 게 맞지. 왜 니가 앞서는 거냐. 그 멀고 먼 길을 어찌 가려고 니가 앞에 가. 에미가 먼저 가서 훗날 니가 올 때 그 길을 밝혀주려 했더니만 왜 에미 가슴에 이리 큰 못을 박느냐, 왜 그리 훌쩍 가버렸느냐!"

 목 놓아 우시던 엄마,         

 오빠가 우리 곁을 떠난 후, 엄마는 홍시의 맛을 잃어버렸지요. 아버지 좋아하시던 명태국을 드실 때는 추억을 되새기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던 엄마께서 이젠 오빠가 좋아하던 것들은 모두 외면해 버리십니다. 오빠가 즐겨 먹던 명태 전이나 홍어회는 상에서 사라지고 좋은 옷도 꽃구경도 모두 덮어 놓으십니다. 지난 추석 때 창호지를 새로 바르셨던 당신은 단풍나뭇잎과 코스모스 꽃잎으로 장식하시던 그 작업을 마다하셨지요. 오빠가 좋아하던 풍경이라서 오빠가 더 생각난다고, 봐줄 사람도 없다면서 하얀 창호지로만 말끔히 붙여두었습니다.               

 꿈에서조차 만나 볼 수 없다며 그리움에 눈이 짓무른 엄마,

 지난 오빠의 기일에 엄마께서 갑자기 안 보이셨지요.

 "큰 아야, 큰 아야"

 소쩍새 쉰 소리보다 더 애절하게 부르며 노루목 고개를 넘어가셨다는 이장님의 전갈을 받고서 우리도 뛰는 가슴 달래며 허겁지겁 뛰어갔습니다. 오빠가 묻혀있는 단지골로 갔을 때 엄마의 가슴에 구절초가 한아름 안겨 있었지요. 행여 구절초 향기 따라 오빠의 넋이라도 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겠지요.     

  이제 엄마에게도 다시 풍성한 가을이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장손인 오빠의 빈자리를 다 채울 수는 없겠지만 엄마를 닮아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를 좋아하고 구절초 꽃잎 따다 편지 쓰기 좋아했던 막내가 엄마의 가을을 다시 물들이고 싶답니다.

엄마의 그리움을 담은 가을바람이 오빠가 머무는 하늘에 가 닿아서 오늘은 엄마의 꿈속에 오빠가 찾아올 듯하네요.


 오늘도 하염없이 먼산바라기 하실 엄마!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아흔다섯의 꽃송이를 함께 만들어가기로 해요. 엄마의 애통함과 그리움도 이제는 곱게 익어 갔으면 좋겠어요. 이곳 꽃심을 지닌 전주, 오빠의  추억들을 안고 사는 전주에서 오빠의 건강한 시절의 향연을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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