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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May 10. 2023

시집가는 날

딸이 시집가는 날

 2021년 10월 2일 10시 30분!

  딸이 시집가는 날이다. 잡아 놓은 날은 빨리 온다더니 요즘 말로 순삭이다. 우리는 별다르게 준비한 것 없이 맞이한 결혼식 날이다. 본인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결혼식장에 건강하고 예쁘게 앉아만 있어 주어도 감사하다고 했다. 상견례를 하면서 결혼 날짜를 정하고 약식이긴 하나 애교함이 오가며 새 보금자리에 들어갈 살림살이까지 둘이 알아서 준비했다. 백화점에 가서 이부자리나 그릇 등을 살 때는 함께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그것마저도 둘이 알아서 했다. 우리는 뒤에서 약간의 지원금을 주며 응원만 하면 됐다. 참으로 신경 쓸 일이 없어서 딸을 시집보내는 건지 사위가 장가를 오는 건지 감각이 없었는데 당일이라니.


  이른 새벽 5시 30분까지 결혼 예식 전문 업체인 마리힌에 도착하여 화장을 하고 머리를 올린 후 한복을 갖춰 입고 팔복동에 있는 더 메이 호텔로 가면 된다. 한 시간 먼저 출발한 딸은 화장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쁜 건 쁜 거다. 보내기 아깝다는 생각이 스멀거린다. 결혼준비 하느라 빠진 건지 일부러 더 뺀 건지 턱 선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누가  봐도 한 번 더 바라볼 미모다. 도현 군도 화장을 해서인지 더 잘 생긴 모습으로 신부를 기다리고 있다.  차분하고 진지한 모습, 너그럽고 자상한 도현 군의 모습을 보니 정 많고 여리디 여린 딸을 맡기기에 믿음직스럽다. 특히 둘에게서 느껴지는 사랑의 파장이 강해서 안심이 되었다.


 아, 오늘부터는 이제 저 도현 군이 우리 딸의 보호자가 되는구나. 이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먹여 출근시키려고 서두를 일도 없겠다. 피자나 달콤한 빵 대신에 야채나 과일 위주의 건강식을 먹으라고 잔소리할 일도 없겠지. 귀갓길에 서성일 일도, 딸 위주로 흘렀던 시간을 이제 나를 위한 루틴으로 만들어도 되겠는걸. 편해지겠는데 왜 허전함이 밀려오는 걸까. 모임에 나가기 전에 이 옷이 어울릴까? 저 신발은 어때? 자문을 구할 수도 없으리라. 직장에서 속상한 일들이나 재미있었던 일들도 저 청년과 나누겠구나  생각하니 딸이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든다. 콧등이 시큰해지며 내 의지와 다르게 눈에서는  또르르 눈물이 흐른다. 화장을 하기 전이라서 다행이다 싶다. 딸이 알아채기 전에 얼른 고개를 돌린다. 눈물을 훔쳐낸다. 남편이 말없이 어깨를 다독인다. 사흘 전부터 딸과 한 이불 덮고 자면서 예행연습을 했었다. 결혼식장에서는 절대 울지 말자고, 미리 다 울어놓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다 울고 웃으며 날을 새우곤 했다.  화장이 엉망이 되고 검은 눈물을 흘리는 불상사는 만들지 말자고 코맹맹이 우는 소리로 우리 둘은 다짐했었다. 그렇게 예쁜 얼굴을 위해 약속을 했었는데 내가 먼저 울다니 주책이다


  나는 담담함을 선택한다. 부러 생각을 안 하려 한다. 못해주고 아쉬웠던 일들은 묻어 두자. 사춘기와 갱년기가 만나서 오지게 싸웠던 일들이나 진로를 놓고 대립이 심해 서로 담을 쌓았던 일들도 잊자. 결혼해서 좋은 점만 떠올리기로, 웃어야 더 복이 많이 온다고 믿고 활짝 웃자. 많이 웃을수록 좋은 일이 생겨날 거라고 애써 웃을 항목을 찾아본다. 딸을 보낸다는 실감이 나지 않도록.  오히려 한근심 덜었다고 최면을 걸어보자. 영혼은 21그램이라는데 행복은 몇 그램일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자. 주책맞게 눈물이 나오면 안 되니까.


 이십 분을 달려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정면 스크린에 딸과 사위의 영상이 연이어 나온다. 효자동에 있는 황강서원에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은 사극을 보는 듯하다. 청사초롱을 들고 예스러운 주택 대문 앞에 서 있는 신랑과 신부의 고풍스러운 모습, 벚꽃 아래서의 화사한 부부, 유럽풍의 건축물 앞에서의 세련된 둘의 모습들이 들어서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여기저기서 탄성들이 터진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예쁘죠? 제 딸이에요. 오늘 시집간답니다.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 마음속의 말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느라 애쓴다.


 신부 대기실에서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사진을 찍는 딸을 보고 있는데 안사돈이 들어오신다. 나를 살그머니 이끌고 한쪽으로 안내하신다. 뭔가 조심스럽게 꺼내서 내 손을 붙잡으시더니 손가락을 펼쳐서 약지에 끼우신다. 반짝이는 금반지다.

  "이거 약소하지만 제 마음이에요. 받아주세요. 사돈과 제가 쌍가락지를 나누어서 끼려고 준비했어요. 지금 마음처럼  서로 변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기로 해요. 우리."

 울컥하며 감동이 밀려온다. 어? 울지 않기로 했는데 가슴이 요동을 친다. 서로 간소하게 하자고 합의된 터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하늘에서 안겨 준 선물, 딸을 뺏긴 것이 아니라 사위를 비롯한 사돈들까지 내 편이 많아졌음을 알게 해주는 순간이다. 사돈의 사랑이 손가락 끝에 걸려있다. 나에게로 오는 순간, 5.625그램의 선물은 무한한 가치로 내 마음을 빛내주고 있다. 반짝반짝.


  요즘 결혼 양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며 실리적으로 변화되면서 간소화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문은 사돈에게 받은 이런 감동적인 의식을 추가하고 싶다. 금 한 돈 반, 5.625그램의 사랑을, 무게로 잴 수 없는 사랑의 의식을 우리 집 풍속으로 전해지게 하고 싶다. 아들이 결혼을 할 때는 내가 준비해서 사돈의 손에 담아 드리리라. 또 주변에도 알려서  흘러가 퍼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리하여 결혼을 시키는 많은 부모들이 더욱 흐뭇해지기를 그 흐뭇함이 다시 자녀들에게로 흘러가서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햇살 가득 쏟아내기를 빈다.


 결혼식 내내 안사돈이 건넨 감동에 젖어서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우리 사위 도현이가 이런 성품의 부모 밑에서 자란 아들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리라. 안사돈과 둘이 손잡고 화촉을 밝히러 들어갈 땐 보조를 맞추어 하나, 둘, 하나, 둘 걸었다. 천천히. 아이들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을 담아 꾹꾹 다져가며 걸었다. 이런 인품을 가진 분들을 어버이로 모시고 살아갈 딸의 앞날이 보인다. 따스한 가정에서 행복 충만할 거란 예감으로 걸음이 날개를 단 듯 사뿐거린다. 절제시킨다. 하나, 둘, 하나, 둘.  잘 가라 딸아, 잘 왔다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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