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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령 Jun 12. 2023

백수간호사 일기

이제 그만 죄송할래요.



신규 간호사로 발령받아 일을 시작한 후부터 휴직하기 직전까지 6년 간 셀 수 없을 만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해왔다.

마치 내 몸에 버튼이 있어서 쿡 찌르기만 해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죄송하다는 말이 향했던 대상은 간호사의 실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환자와 보호자가 아닌 같이 일하는 의료인이자 동료/선후배였다.


신규 생활을 보내고 3년 차가 될 때까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해야 할 대상이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라는 것을.

죄송하지 않아도 될 일에서조차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내뱉고 있는 내 모습을.

인지를 한 이후에는 이미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습관이 된 뻐꾸기가 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았을 때 가장 억울한 건 몰라서 물어본 것과 익숙하지 않아 서툴렀던 행동에 죄송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했고, 혹여나 그 마음을 말로 전하지 못했을 때엔

‘일을 왜 저렇게 하는 거야’, ‘싹수없다’, ‘인성이 못됐다’, ‘인사성이 없다’라는 온갖 욕을 들어야 했다.

물론 일을 하면서 나의 실수로 인해 동료, 선후배 간호사 또는 의료진들에게 피해가 되었을 때나 환자와 보호자에게 불편감을 주었을 때는 당연히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맞다.

하지만 모르는 걸 물어볼 때는 ‘그것도 모르냐’라는 말로 매도당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했어야 했으며, 서툴러도 도와주고 싶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때 마저 ‘모르면 건들지 마라. 제대로 할 거 아니면 손대지 마라’ 라며 핀잔을 들었던 것이 과연 맞는 걸까?


로봇이 하는 일도 고장이 나기 마련인데, 사람 손을 거쳐 행해지는 간호를 할 때 어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

너도 나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때가 있으니 환자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정도의 실수는 합당한 방식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적어도 사람으로서, 같은 의료진이자 간호사로서, 혹 선배라면, 감정은 잠깐 눌러두고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도 않았을까.

나쁜 악습은 끊어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


1년 간의 휴직을 하고 다시 임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이전보다 더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간호 업무를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내가 모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에 대해 알려준 선생님께는 죄송함 대신 감사함을 마음껏 표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요청이 들어올 때는 상대에게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얘기하여 해결을 한 후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죄송하지 않은 일에도 쉽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내뱉는 건 스스로 나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며,

상대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하는 죄송하다는 말은 상대에게 나를 낮추어 볼 기회를 손에 쥐어 주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 나를 채찍질하고 혼내면서도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이다.

(나의 친구, 애인 그리고 자식은 엄연히 따지고 보면 제삼자가 아닌가)

아무리 나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한테 듣는 쓴소리가 다른 이로부터 듣는 잔소리보다 나를 다시 일으키는데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나는 이미 경험하였다. 나 스스로 존중하는 데서 오는 힘을 믿는다.


이제 그만 죄송해하자.

꼭 필요할 때에만 죄송한 마음 꾹꾹 눌러 담아 전하고, 감사함을 덤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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