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중심의 스타트업 생태계 변화와 이에 따른 HR 전략
2024년 원티드 HR 컨퍼런스에서 인상 깊었던 강연 중 하나를 정리해보려 한다.
이 글에서는 소풍벤처스 최경희 파트너님의 강연을 다룰 것이다. 최경희 파트너님의 강연 주제는 ‘벤처 캐피털 관점에서 본 스타트업 HR’이었다. 핵심 메시지는 '앞으로 스타트업의 HR 문화는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주목받은 한국 스타트업들은 주로 IT 앱 기반 회사였다. 토스,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사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독특한 HR 문화와 조직문화로도 주목받았다. 직급 없는 수평적 조직문화, 업무 자율성과 책임 부여, 유연한 평가·보상 제도 등 기존의 한국의 경직된 인사제도와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이러한 IT 스타트업의 HR은 ‘선진적’이고 ‘트렌디’한 사례로 여겨졌고, HRer들의 흥미를 얻으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어 왔다.
"처음으로 깔끔한 오피스가 아닌 공장에서 진행된 주주총회에 참석해 보았다"
최강희 파트너님의 강연에 따르면 IT 중심이었던 스타트업 투자 경향이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항공, 수송, 로봇, 원자력, 모빌리티, 2차 전지 등 제조업 기반 산업 분야에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스타트업하면 세련되고 특색 있는 사무실이나, 깔끔한 공유 오피스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공장에서 진행된 주주총회 사진을 강연에서 보니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산업 분야가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되면, 스타트업의 HR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과거 IT 스타트업들은 구글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HR을 벤치마킹하고,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을 바이블로 삼아왔다.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면,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불협화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의 스타트업 HR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제조업 스타트업에게는 어떠한 HR이 필요할까?
IT 스타트업은 수평적 문화를 지향했다. 업무 외에 사적으로도 가까운 관계를 가지며, 사내 동아리나 퇴근 후 동료 간 모임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일단 창업자들의 연령대도 낮은 편이며, 회사의 주축이 30대의 젊은 또래 직원들로 구성되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 같은 문화가 형성된다.
반면, 제조업 스타트업은 40대, 50대 교수 출신 창업자가 많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다 보니 IT 스타트업보다 수직적인 문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창업자가 권위적인 성향이 아니더라도, 연령대의 차이에서 오는 근본적인 공감대의 차이가 발생한다. '스타트업'하면 떠오르는 환상 때문에 억지로 수평적 문화를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직원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 교수님과의 회식 자리에 억지로 끌려온 대학원생 같은 분위기를 피해야 한다.
제조업과 IT 업종의 채용 방향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뛰어난 선반공은 보통 선반공보다 몇 배 가치가 있지만,
뛰어난 개발자는 보통 개발자의 10,000 배가 넘는 가치가 있다"
빌 게이츠의 말은 IT 산업에서 인재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IT 스타트업은 한 명의 개발자가 압도적인 가치를 창출해 낸다. 뛰어난 개발자는 단순히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는데 그치지 않고, 팀 전체의 역량을 높이고 회사의 경쟁우위를 이끌어내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IT 스타트업은 '한 명의 슈퍼스타'를 채용하는 데에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반면, 제조업 스타트업은 다소 다른 채용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제조업에서는 개개인보다도 프로세스의 최적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재를 채용하더라도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면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모든 직원이 최고의 역량을 갖추지 않더라도 조직 단위의 협업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IT 스타트업은 인건비가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A급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에, 시장 선도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개발자 업무특성상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센티브보다는 기본급 위주의 보상 구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제조업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제조업의 초기 자본 투자는 주로 설비 도입, 생산 시설 확장 등에 사용되며 상대적으로 인건비에 대한 투자 비중이 낮다. 또한 성과에 대한 정량적인 측정이 가능하여 수익, 생산성, 프로세스 개선 등의 다양한 기준으로 성과 기반 인센티브를 지급할 수 있다.
IT 스타트업은 마사지 의자, 사내 카페, 맥주 기계 등의 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복지를 시도한다. 사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복지가 직원들의 성과에 직접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IT 스타트업들이 이러한 복지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A급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우리 회사는 자유롭고 흥미로운 문화를 가진 곳'이라는 브랜딩을 하는 것이다. 인재경쟁이 치열한 IT 산업에서는 이러한 복지가 채용에 우위를 점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반면, 제조업 스타트업의 복지는 보다 실용적이고 생산성을 직접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근로 환경 개선과 안전 조치 강화에 보다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작업자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인간공학적 설비 개선, 작업 환경의 온도/습도/소음 등의 관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IT에서 제조업으로 업종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고유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현재의 상태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매출/고객수의 측면에서 J자형 커브를 그리는 폭발적인 Scale-up을 목표로 한다. 차근차근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매출/고객수의 성장에 따라 직원수 또한 Scale-up 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따라서 스타트업에서는 당장 직원수가 10명에 불과하더라도 30명, 100명, 300명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각 단계에 맞는 적합한 HR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IT 스타트업에도, 제조 스타트업에도 적용될 수 있는 HR 전략은 다음과 같다.
조직문화: 체계가 잡히기 전에 직원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로 인해 정해진 규칙보다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업무를 찾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채용: 급증하는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채용이 HR의 주요 역할을 차지한다. 특히, 장기 육성보다는 즉시 전력으로 활용 가능한 경력직 위주로 채용이 이루어진다.
보상: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서 엑싯(exit)을 통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한다. Stock Option 제공을 통해 직원들에게 소유감을 심어주는 전략은 여전히 효과적이다.
복지: 대기업이 광범위한 복지를 제공하는 반면, 스타트업은 제한된 자원으로 실질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혜택에 집중해야 한다. 식대, 음료 등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IT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의 전환은 한국 스타트업 HR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스타트업 HR의 본질은 업종에 관계없이 동일하다. 스타트업은 항상 빠른 성장을 목표로 하며, 그 과정에서 조직 문화, 채용, 보상, 복지가 그들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핵심 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제조업 특유의 구조와 요구에 맞춘 새로운 스타트업 HR 전략이 필요하다. IT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를 교훈으로 삼되, 제조업의 특수성을 반영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산업에 속해 있는가와 상관없이, HR 전략은 각 기업의 현실과 상황에 맞게 최적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진출처-
1. 이재훈 https://brunch.co.kr/@dldyfm/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