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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위 Feb 18. 2022

어쩌다 보니 대만

본투비 내향인의 이민 스토리

저요? 대만에서 살고 있어요. 이 한 마디의 말로 내가 특별해지는 희한한 경험을 한다. '돈암동에 살고 있어요'보다는 '타이베이에 살고 있어요'라는 말이 타인에게 기억되기 조금 더 쉬우니 말이다. 사는 곳의 특별함으로 보잘것없는 나를 포장해 보고 싶었던 어린 나는 어떻게 하면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살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돈암동의 내가 아닌, 뉴욕의 혹은 홍콩에서 살고 있는 내가 되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나를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희소성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희소성은 살아가는 데 꽤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 다수로 살면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모국어가 제공하는 편리한 삶은 무시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언어의 장벽을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외에서 살면서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인터넷 창에 가끔 다른 나라의 도시를 검색해 보는 당신도. 하지만 어디에서부터 준비할지 감이 안 올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 글을 써 본다. 이 글을 보는 해외 생활을 꿈꾸는 당신에게 '이 사람은 이렇게 해외에서 살게 되었구나' 정도의 가볍지만 조금은 도움이 되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우선 왜 하필이면 대만에 살게 되었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극도로 현실적인 나와 한때 꽤나 말랑말랑했던 감성을 가졌던 20대의 나,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의 합작품이다. 인문학부로 입학해서 국문과를 선택했지만 첫 수업으로 소설 비평을 듣고 난 후, 나는 순수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수업은 나름 흥미로웠으나 돈벌이가 되는 직업을 찾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20대의 나는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겠냐는 회의감이 들었다.


국문과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진 내가 차선책으로 듣게 된 수업은 바로 중문과 수업이었다. 당시 그러니까 2010년대 초반, 중국 열풍이 한창 불어서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를 찍었을 때였다. 앞으로 전망이 있다는 말에 귀가 얇은 나는 부전공이나 할 생각으로 중문과 수업을 자주 기웃거렸다. 중문과 수업을 들으러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생선을 훔치려고 들어온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교실 맨 뒤에 앉아서 수업을 듣다가 수업이 끝나면 쏜살같이 빠져나가곤 했다. 


하지만 중문과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성조를 가진 언어의 매력에 점점 빠져버리게 되었다. 부전공이나 할까 하던 중문과 수업은 본의 아니게 너무 많이 들어버려서 복수전공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국문과 수업 성적보다 중문과 성적이 더 좋았고 국문과 중문 복수전공을 하게 되면 졸업 논문을 2편이나 써야 했지만 그 귀찮음을 감수할 정도로 중국어가 좋았다. 그리고 나름 원대한 결심을 했다. 자고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며 홀홀단신 중국 베이징으로 유학을 가기로 한 것.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에 유학을 갔는데 난생처음 가 본 대륙의 스케일에 압도당했다. 땅이 넓은 건 둘째 치고, 사람까지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나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진다고 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개인으로서의 나란 존재가 희미한 도시였다. 여기서는 못 살겠다 싶었다. 그래도 중국 여행은 좋아하게 되어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가히 내 인생 최고의 방랑자 시절이었다. 북쪽, 동쪽, 중부 지역 할 거 없이 닥치는 대로 다니다가 어느새 중국의 남쪽 지역이, 그리고 어떤 섬이 눈에 들어왔다. 대만.      


대만 영화 <청설>의 포스터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지역에 대한 여행책과 블로그 여행기를 싹 다 읽어보고 다큐멘터리와 영화까지 보는 오타쿠적 기질이 다분한 대학생이었는데 대만도 똑같은 순서를 밟다가 그만 대만 영화에 치이고 말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청설',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 지금은 고전이 된 대만 영화들을 말랑말랑한 감성의 20대가 보면 엄청난 화학 작용이 일어난다. 대만 영화는 왜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청춘을 자극하며, 쓸데없이 달달하며, 아찔할 정도로 아련한지. 대만이라는 나라가 주는 분위기에 취한 나는 결국 여행이 아니라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아직 학생이니 교환 학생이라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대만은 한국과 학기제가 달라 교환 학생을 갔다 오면 졸업이 1년이나 늦어지지만 상관없었다. 졸업 까짓 거 좀 늦게 하면 되지.


결국 나는 교환 학생으로 다시 대만에 가게 되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환 학생이란 제도는 대학생이라면 꼭 경험해야 할 좋은 혜택이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그 나라의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현지에서 살아볼 수 있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좋은 기회다. 가성비의 끝판왕이다. 나는 대만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위해 개설된 중국어 수업을 듣거나 현지 한국어과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대만 현지 회사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대만 사람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보기도 했다. 틈틈이 여행도 했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윤곽선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가면 바로 졸업 학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한국에서 직장을 구할지 아니면 중국이나 대만에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지 고민을 하는 시기였다. 사실 베이징 유학을 떠날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중국어 교육을 하든, 한국어 교육을 하든 상관없으니 어쨌든 외국어 교육을 하고 싶었다. 문학에 대한 재능보다 교육에 대한 재능이 그나마 더 나았고 국문과 중문을 복수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도출된 결과였다.  


내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무엇을 가르칠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살지였다. 나는 주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내가 살 곳을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거주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하는 일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내가 살아갈 곳을 먼저 정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는 게 맞는 순서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선택한 곳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바꿔도 늦지 않는다. 자 그렇다면 내가 정착할 나라를 찾아보자.  


홍콩의 섹 오(Shek O) 반도를 걷는 드래곤스 백(Dragon's Back) 트레킹, 사진 제공 : Joe Chen


내가 앞으로 살 곳을 선택하는 일은 대학 시절 다녔던 여행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양한 도시를 여행하면서 천천히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원형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너무 큰 도시는 싫다. 지하철을 환승할 때마다 한 지하철 역 안에서 30분을 걸어야 하는 베이징에서의 기억은 끔찍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도시도 싫다. 기차역에서 끼여 죽을 뻔했던 천진에서의 기억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미술관과 공원은 많았으면 좋겠다. 미술관의 매력에 처음 빠지게 된 상하이는 아직도 짝사랑 중이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으면 좋겠다. 번잡한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얼마 안 가면 나오는 숨겨진 보물 같은 홍콩의 아름다운 자연이 좋았다. 홍콩 외곽 지역의 드래곤스 백(Dragon's Back) 은 내가 갔던 최고의 트레킹 코스 중 하나였다.


대만에서 1년 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훗날 대만에서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해 봤다. 베이징 때와는 달리 대만에서 생활하는 나의 모습은 쉽게 그릴 수 있었다. 해외 이민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별거 아닌 조언은 이민 생활에 대해 얼마나 예측 가능한지를 먼저 따져 보라는 것이다. 물론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0에서부터 도전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성격상 예측 불가능한 것에 시간을 쓰기는 싫었다. 만약 내가 살아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에 대해 상상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곳에서 살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기 때문이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는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다. 타이베이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혹은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지하철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 베이징 하나의 역에서 다른 역으로 환승하기 위해 걸어야 하는 시간과 같다. 도시 규모 체크. 사람도 적당하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인구 260만. 한국으로 따지자면 인구 290만의 인천과 비슷하다. 인구 체크. 도시 곳곳에 공원과 미술관, 체육관, 도서관 등등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공간이 있다. 생활 기반 시설 체크. 도심 가까운 곳에 산과 바다가 있어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도피할 수 있다. 자연환경 체크. 한국 문화에 대해 호의적이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한국어 교육 기관은 부족하다. 밥벌이 체크. 


그렇다. 다른 곳에 있는 나보다 대만에서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하기 쉬웠다. 그래서 대만에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집요하게 준비를 했다. 2012년 1년간의 대만 교환학생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가 졸업논문을 썼고, 졸업을 했다. 중국어 교육 전공 대만 대학원 준비를 시작했고 대만 정부 장학금에도 지원했다. 혹시 대만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도 있으니 서울대에서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도 들어 두었다. 생활비도 벌어야 하니 과외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촘촘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결국 1년 만인 2013년, 대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대만에서 살아왔다. 


무서울 정도로 계획적이고 계산적이며 집요하고 괴팍한 나의 성격을 남들에게 들키기 싫어 농담 삼아 '어쩌다 보니 대만에서 살게 되었네요.'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이런 가벼운 말 한마디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이민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생전 처음 밟아 본 이국 땅에다가 내 몸뚱이 누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뼈 빠지게 노력했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친구를 사귀기 위해 본투비 내향인이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 했다. 또 여기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꾸준히 커리어를 쌓았다. 중간에 여러 일들로 인해 떠나려 했고 떠날 준비도 했으며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제는 떠나기 힘들게 되었다. 


남쪽의 작은 섬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시간들이 이제는 떠나지 못하게 나를 꽉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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