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25일 그리고 그림책이 남았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멍해질 때가 있다.
‘내가 뭘 해왔지?’ 하고 생각하다 보면 딱히 정리하기 어려운 경력들이 눈앞에 흐릿하게 떠오른다.
10년 넘게 자영업을 했고, 그 사이에 자격증 몇 개를 따놓긴 했다.
하지만 뭐 하나 뚜렷하게 남아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 문득, 묻혀 있던 그림들을 다시 보게 됐고 내가 만들었던 그림책도 읽어보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삶은 더 팍팍해졌다. 2022년 그 즈음 “이모티콘 만들면 돈 된다”는 말을 듣고
큰 기대도 없이 아이패드를 덜컥 샀다.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었지만, 무작정 이모티콘을 만들었다.
의외로 재미가 붙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SNS에도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서관 그림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진심을 담아 그림책 한 권을 완성했지만, 완성과 동시에 열정이 식어버렸다.
그렇게 2023년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2024년은 개인적으로 참 힘든 해였다.
가게를 정리했고, 행정적인 문제도 있었고, 파산 직전까지 갔다.
그렇게 내 마음도 많이 무너져 버렸다.
2025년이 되었을 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고, 그래서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로 했다.
돌아보면 그렇게 마음을 추슬러보기로 한 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 후 지원서를 내보기도 했고, 면접도 한 번 봤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다지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 일들을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날선 질문들이 와닿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지원서를 냈던 거였다.
열정, 관심, 좋아함 같은 말보다 나는 그냥 생존을 선택했다.
만약 안 되면, 그만인 거였다.
그러다 한참을 방치해 둔 인스타그램에 다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곳엔 나름 바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림들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만들었던 그림책도 다시 꺼내봤다.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나의 기록들. 그걸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나의 경력이지 않을까?'
그래서 처음으로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보기로 했고, 작가들이 한다는 ‘투고’도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불과 1년~2년동안 나는 정말 진심을 담아 그렸다.
그리고 그림책 한 권을 완성했다. 그 시간도 결국 나의 역사였다.
예전에 내 그림을 보고 “밝고 행복해지는 그림이에요”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음에도 왜 나는 ‘촌스럽다’, ‘날티 난다’는 이유로 스스로 내 그림을 밀어내버렸을까.
지금은 다시 해보고 싶다.
과거의 기록들이 잠자고 있던 나를 조용히 깨웠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본 그림들은 어색하지만 애틋하고, 부족하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심을 다시 한 번 꺼내보기로 했다.